이번 책도 응급실을 배경으로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가,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책 속 대부분의 글이 우울함을 담고 있지만, 코믹한 내용도 빠지지 않았다. 사실 그가 유명해진 계기도 많은 이에게 웃음을 준 ‘의사 훈련소 썰’이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자리를 옮겨 다시 한 번 ‘지옥’으로 들어간 그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겸 작가. 사진=최준필 기자
―‘만약은 없다’ 이후 몇 년 만인가.
“정확히 1년 만이다. 지난해 이맘 때 <만약은 없다>가 나왔고, 인터뷰를 했다.”
―1년 전과 달리 다시 응급실로 돌아가 근무하고 있다.
“실은 <만약은 없다>를 낼 때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았다. 병원에서 근무를 했던 일로 글을 썼고, 책이 나올 때는 소방본부라는 곳에서 환자를 보지 않고 근무를 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글을 직접 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번도 근무처를 숨긴 적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3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3달째 일해보니까 ‘맞다, 내가 쓰던 게 이런 얘기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지옥으로 돌아간 건가.
“진짜 지옥이구나. ‘여전히 지옥이 있지만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내가 첫 날 갔는데 3시간 만에 환자가 죽었다. 근데 나는 3년 만에 처음 환자를 보러 갔는데, 심정지가 들어왔으니까 살리고 싶었다.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죽었다. 안 돌아 오더라. 그래서 내가 ‘아, 살리고 싶었는데’라면서 덮었다. 그랬더니 옆에 간호사 분이 ‘의사가 환자 죽었는데 아쉽다고 얘기 하는 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약간 뜨끔해서 생각을 해봤다. 실은 이런 세계였던 거다. 심지어 나 조차도 환자가 죽으면서 아쉽다는 말을 뱉지 않았다. 물론 속으로 생각했지만, 늘 아쉽다고 할 수는 없지않나. 작가를 하다가 돌아가니까 그게 너무 아쉬운 거다. 아쉽다고는 했지만 실은 죽음이 당연한 세계로 돌아간 거였다. 내가 죽음이 당연한 이 세계로 돌아왔구나. 그때 그 느낌을 딱 받았다.”
―읽다보면 울적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울적한 글을 쓰시는 목적이 있나.
“우리가 고전 이라고 얘기하는 작품은 대부분 비극이다. 희극이 거의 없다. 우울한 글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쓰려고 거의 20대 시기를 다 보냈다. 더군다나 병원에 왔더니 이렇게 울적함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환경도 그렇고, 하고 있는 일도 그렇고 글 쓰기에 대한 감정도 그렇고 울적한 글을 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책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상당 부분이 ‘힐링’에 집중돼 있다. 책 판매를 위해서는 노선 변경이 필요하지 않나.
“나는 어차피 책을 팔려고 쓰는 작가가 아니다. 본업을 놓지 않고 이어나갈 사람이다. 다른 전업작가보다는 확실히 그런 점에서 내가 유리한 면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쓸 수 있으니까. 반대로 말 하면 내가 쓰고 싶지 않으면 안 써도 된다. 진짜 시장을 보고, ‘책을 팔고 싶다’고 해서 트렌드에 맞춰 기획을 하고 문장들을 만들어 내고, 그런 글귀를 뿌려서 책을 만들면 판매에 있어서는 더 잘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시장에 먹힐 책을 내겠다는 생각이 최소한 당분간은 없다.”
―사실 초기 유명세를 타게 해준 글도 코믹한 ‘의사 훈련소 썰’이고 재밌는 글을 더 쓸 생각은 없나.
“우울한 글쓰기를 메인으로 생각하지만 옛날부터 텍스트로 남을 웃기는 것을 되게 좋아했다. 유명세를 탄 것도 웃기는 글 이었다. 텍스트로 반전을 줘서 그걸 읽다가 웃기게 만드는 글도 많이 읽고 좋아했다. 그래서 웃기는 얘기들을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에도 제법 실었다. 그런데 글쎄, 아예 웃기려고 작정하는 글을 출판을 하려면 소설을 써야할 것 같다. 소설 속 공간에 있는 사람이, 소설적인 상황을 겪고 마구 꼬아서 웃기는 식으로 써야할 것 같다.
―지난 <만약은 없다>는 몇 권이나 팔렸나.
“12쇄 3만 2000권 정도 팔렸다. 그런데 보통 작가들이 정확한 판매 부수를 이야기 하나? 나는 뭐 상관없긴 하다. (웃음)”
―방송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이유가 있나.
“내가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얼굴 자체를 공개를 안 했다. 그런데 글을 알리자는 출판 제의가 왔고 사람들이 날 찾으니까 얼굴 공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어떻게 말하는 사람인지를 궁금해 한다면 그걸 알려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준비를 하고 세상에 나갔다. 세상에 나가서 언론 인터뷰 몇 번 했는데 TV출연 제의가 왔다. 글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었고 또 나가서 선한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한다면 대중에게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들어 예능에도 출연하게 됐고 한 번 나가니까 여러가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정상회담>애서 언급한 고산병과 비아그라가 큰 화제를 모았다.
“설명하자면, <비정상회담> 대본에 없었다. 대본에 없던 얘긴데, 열심히 하려고 ‘애드립’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우연히 미국인 마크가 비아그라 얘기를 꺼내서, 내가 ‘다른 용도로 고산병 치료에도 사용한다. 사람들이 고산 간다고 해서 비아그라 달라고 해서 받아갔는데 진짜 고산에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농을 쳤다. 그런데 방송 이틀 뒤에 청와대에서 비아그라를 대량 구매한 사실이 보도됐다. 아주 우연의 일치로 터져서 이틀간 검색어 1위를 계속 오르내렸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겸 작가. 사진=최준필 기자
―<1대 100>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출연 전에는 ‘우승 절대 못한다’면서 ‘준비도 안 할 거다’라더니 우승하셨다.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준비를 안 할 수가 없더라..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도 실제로도 나올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하나도 안 나왔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지식을 쌓고 기출문제를 보다 보니까 감이 오더라. 그래서 감으로 풀었다. 일대백 우승 비법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자신의 상식으로 끼워맞추기도 어려워졌을 때는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출제자의 의중을 파악해서 찍어라’였다. 결국 감을 끌어올리고 원칙을 만들어 그대로 찍었더니 우승을 했다.”
―그렇게 맞춘 문제가 어떤 문제였나.
“예를 들면 이런 문제가 나왔다. 황진이 시조에서 ‘동지(冬至)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춘풍 니불아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에서 ‘서리서리’라는 뜻이 뭐냐를 물었다. 보기를 보면 1번, 조심스레 접어 천을 감싸놓은 모양. 2번, 구겨지지 않게 안쪽 깊숙이 집어넣은 모양. 3번, 헝클어지지 않도록 둥글게 포개어 감아놓은 모양이었다. 이건 모르겠지 않나. 그게 그거 같다. 이때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 하는 거다. 이 서리서리란 게 애매한 개념인데 결국은 황진이가 님을 그리워한다는 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나는 이 뜻을 모른다. 맥락상은 알고 있다. 맥락상 보면 님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이불을 눕힌 거예요. 그러면 1번, 2번이 황진이의 마음 같다. 1번은 조심스럽게 접어서, 2번은 구겨지지 않게 깊숙이 황진이 마음같다. 3번은 헝클어지지 않도록 둥글게 포개어 감다 이러면 마음 같지가 았다. 그래서 3번을 찍었다”
―왜인가.
“만약에 내가 출제자라면 3번이 답이었다면 1번, 2번 보기를 오답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결국은 가장 오답 같은 게 답이다. 3번이 답이면 이 답을 숨기기 위해 1번과 2번이라는 오답을 만들 거다. 그래서 답은 3번이라고 생각 했다. 이때 8명 있었는데, 이 문제에서 7명이 틀렸다. 마지막 문제는 내가 아는 문제라서 풀고 1등을 했다. 모르는 문제가 한 두 문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식을 만들어 놓았다. 모르는 문제 3지선다면 33%인데 얼추 70% 이상을 맞췄다. 그래서 모르는 문제를 맞추면 우승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SNS에 쓰는 글 중에서 정치적인 글은 없다. 이유가 있나.
“나도 무엇이 합리적인 정치라는 생각이 있다. 그런 얘기를 글로 조리 있게 쓰면 써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움 받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는 무조건 찬반이 생기고 호나 불호가 생기는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써서 어느 한 편의 미움을 받거나 제 글을 분분한 의견의 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정치 글을 안 쓴다.
―이번엔 낸 책은 얼마나 만족하나.
“실은 내색하지 못한 이야기인데 급하게 냈다는 생각은 있다. 시기도 그렇고, 원고도 좀 모아져 있어서 이래저래 낼 때가 됐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 2~3개월쯤 더 원고를 모아서 좀 더치열하게 내볼까 생가도 했다. 출판사에서는 이 정도 원고도 좋으니 이대로 그냥 가자고 해서 냈고 반응도 제법 좋은데 되게 아쉬움이 남는다. 급하게 써 버린건 아닌지, 내용을 더 잘 넣을 수도 있는데 못 넣은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반면 새로운 병원에서 겪은 일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새로운 병원으로 옮기면서 뭔가 한 분기를 정리하는 시점에서는 맞았다고도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문예지, 언론사 칼럼, <피키캐스트>에서도 글을 쓴다. 작업 시간이 얼마나 되나.
“꾸준히 쉬는 시간에는 놀지 않고 계속 글 쓰려고 한다. 하루에 마음 먹고 쓰면 하루 종일 글만 매달릴 때도 있고, 하루쯤 아무것도 안 쓰고 쉴 때도 있다. 글은 한번 쓰면 시간이 되게 빨리 간다. 긴 장편을 완성하려면 12시간 정도 쓰기도 한다.”
―12시간동안 몰입해서 쓰나.
“그렇긴 한데 글이라는 게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그냥 옮겨 적는다고 글이 되는 게 아니다. 생각을 하고 구조를 짜는 시간도 필요하다. 써 놓았다고 해서 다 쓴 게 아니다. 글이 돋보이도록 기술적으로 만져야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작업까지 다 하면 열두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보통 초고 쓰고, 1차 탈고, 2차, 3차 탈고를 거친다. 적어도 페이스북에 제법 긴 글이 올라왔다면 적어도 3차 탈고는 한 글이다.”
―금방 써지는 경우도 있나.
“초고는 한달음에 쓸 때도 있다. 가령 어떤 내용을 쓰고 싶은데 내 생각들이 완벽하게 안 나온다면 초고를 그냥 개차반으로 마구 쓴다. 그걸 1차, 2차 탈고 때 마구 헝클어서 완성된 문장으로 만들어나가는 작업도 한다.”
―기술적인 노하우를 배운적도 있나.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전혀 없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본 적도 한번도 없다. 그냥 책을 읽고 썼다. 문학하는 사람들과 교류했지만 그렇다고 배운 건 아니다. 글쓰기 책이라는 게 가장 쓸모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이면서 글을 쓴다. 책을 보면서 ‘나도 내 직업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나.
“정규 작가들 얘기 보다는 그런 얘기들이 훨씬 좋다. 나는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지만, 쓰는 걸 좋아했다. 글을 쓰고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었지만, 어쨌든 자기 직업적인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가 직업이 있으면 그 세계가 있다. 기자라면 글 쓰는 일에 대한 고충이 있을 수 있다. 편의점 알바니, 방직 공장 직원도 다 자기의 직업적 얘기를 담을 수 있다. 응급학과 의사라고 해도 다 같은 캐릭터가 아니다. 자기 캐릭터를 담아 쓸 수가 있다. 현실적인 조언을 하자면, 일단은 써야한다.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같은 얘기를 쓰다보면 다른 소재를 찾을 거다. 같은 표현밖에 못 해서 문장이 별로면 그럼 문장을 고민한다.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찾아보고 다른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면서 계속 어떻게 내가 하는 일을 잘 표현할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이 글쓰기를 잘 하는 과정이다. 이게 왕도다. 많이 써보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다음 책은 어떤 내용을 생각하고 있나.
“다음은 독서 일기를 쓰고 있다. 어떤 책이 좋아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해요? 이런 질문이 많이 했다. 그래서 아주 힘을 빼고 이렇게 읽고 쓰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식으로 느끼는구나를 가볍게 보여주는 책을 기획해서 쓰고 있다. 응급실이 아예 안나오는 그런 소소한 책이다.
―예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다. 언제쯤 소설을 볼 수 있나.
“독서일기까지 다 쓰면 출판 계약이 없어진다. 그 뒤에 가벼운 연재를 하면서 언어도 공부하고 놀기도 하면서 건반을 맡고 있는 밴드에서 음악도 집중하고 싶다. 그 전까지 해둔 소설 습작이 있지만 일을 다 끝내고 그 뒤에 새로운 소설의 문장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상당히 바빠보이는데 일상은 어떤가.
“병원 근무할 땐 병원 근무 하고, 의사로서 논문도 보고, 의사로서 공부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 한다. 일 외에는 사람도 만나고 언론 인터뷰 하고 ‘독자와의 만남’ 있을 땐 독자들 만나고, 방송 있을땐 방송하고, 촬영 있을 땐 촬영 하고, 나머지 시간엔 읽고 쓴다. 딱 그게 일상이다.
―노는 시간은 없나.
“놀려면 논다. 돈이 많이 드는 놀이는 별로 안 좋아한다. GTA라는 게임을 좋아해서 최신사양의 컴퓨터를 사서 해볼까도 했는데 마감하고 글 쓰는데 매달려 못 하고 있다.”
―시간이 없나.
“심지어 시간도 있다. 당장 그 전에 썼던 글로 메우고 1달간 마감을 안 하고 아무 글도 안 쓰고 놀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미 책은 두 권 나와서 팔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마음이 조여서 못하겠다.”
―마감이 있지도 않은데 무엇이 그렇게 조이나.
“내가 정해놓은 기준과 스스로의 마감에 쫓긴다. 내가 한자도 좋아하고 중국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중국어를 중국에서 살 정도까지 배우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HSK 4급 따고, 5급 준비하고 있는데 작가가 돼서 글 쓰느라 중국어 공부를 못했다. 진짜 한 달만 열심히 하면 5급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못한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 작가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했지만 달성 못한 게 스스로 죄책감이 되고 압박이 된다.”
―그럼 그런 작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닥치는 죄책감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고 의사가 되고 그런건가.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잘못해서 나온 결과에는 대범했다. 성적은 이미 나왔고 내가 못한 거니까. 내가 더 잘해야 되는거지 거기서 분통을 터뜨리고 울 건 아니지 않나.”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중점적으로 봤으면 하는 게 있다면.
“표지를 펼치면 이런 글귀가 있다.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내 책을 보기 전에는 ‘응급실이 그냥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가 보다’, ‘한 번 갔었는데 끔찍했다’ 정도의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이 뭐하는지는 몰랐다. 그렇게 안온한 하루를 보내는데, 그 하루가 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 지독한 하루였다. 그런 얘기들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구나.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구나’ 그런 걸 중점으로 봐줬으면 한다.”
―책 반응이 좋은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전작이 잘 팔렸지만 전작이 많이 팔린 책이라고 사람들이 두 번째 책을 나오자마자 사보고 그러진 않는다. 그동안 다른 책에서 느끼지 못 했던 감정을 느끼고, ‘어 이런 책이 있으면 또 읽겠어’라고 생각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저자 입장에서는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최근에 보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영하 작가 신간이라든지, 김애란 작가 신간이다. 다 베스트셀러들이다. 하루키 신간 기사단장 죽이기, 박준 신간 어차피 나는 다 봐야하는 책들이라 이미 다 봤다. 다 재밌게 읽었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단편 소설집은 명불허전이었고, 김애란은 역시 김애란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본 영화는 뭔가.
“<리얼>이다. 리얼은 리얼이었다. 개망작이다. 웃겼다. 리얼의 각본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그러니까 리얼의 콘셉트이나 리얼의 각본이 나쁘지 않다. 놀랍다. 그 다음에 이 각본이 한 편으로 완성됐을 때도 나쁘지 않다. 액션이나 비주얼적인 부분도 엄청나게 고려했다. 톱스타들도 잔뜩 나왔다. 그런데 이 좋은 요소를 감독이 망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감독의 편집이 엄청나게 잘못됐다. 연출이라는 게 촬영을 다 해놓고, 스토리를 자기가 이어 붙여서 만든 작업이다. 이 작업의 결과물이 불친절하다. 머리로 불친절한 게 아니라 ‘친절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해하고 보렴’ 정도의 애매한 불친절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가 없다. 볼 때는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장면이 계속 웃긴다. 영화를 보고 유추해볼 때 생략된 장면이 많아 보이는데 다른 흐름으로 다시 편집한다고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괜찮을 작품같다. 그래서 내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보는 그림으로 맞춘다고 생각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가장 큰 고민은 뭔가.
“두 번째 책을 썼는데 더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더 발전된 지점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잘 봐주실까. 그게 고민이다.”
―일대백 수입은 어떻게 썼나.
“통장에 그냥 있다. 한 푼도 안 썼다.”
―뭐 하실 생각인가.
“글쎄, 내가 돈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상금으로 컴퓨터를 바꿀까도 생각해봤다. 최신 컴퓨터를 써 본 적이 없다. 맨날 쓰고 작업하는 도구니까 한 백 만 원쯤 떼서 정말 좋은 컴퓨터를 사볼까라고 생각한지 7개월 됐다. 글 써야 되는데 프로그램 깔고 하는 게 귀찮아서 못 바꾸고 있다. 최근 스토리펀딩 쓰고 있는데 기부하게 되면 같이 기부하는 형식으로 할까 생각하고 있다.”
―돈을 많이 안 쓰나.
“그냥 통장에 있다. 정기 예금 넣는다. 의사 월급 통장에서 한 푼도 안 쓴지 1년이 넘었다. 작가로 버는 돈으로만 생활하고 있다”
―소비가 크지 않은가 보다.
“돈 많이 안 쓴다. 7년 전에 산 소나타 타고 다닌다. 차 욕심도 없다. 너무 비싼 것이 주변에 있으면 불편하고 차타고 다니면 책을 못 본다. 그래서 별로 안 좋아한다.”
―투자도 안하나.
“투자 별로 안 좋아한다. 투자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흔들려서 글도 안 써진다. 주식도 사 놓으면 계속 관찰해야해서 하지 않는다. 10년 전에 약 100만 원 정도 샀다가 팔아본 적 딱 한 번 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뭔가.
“목표는 좋은 글로 대작을 써내는 거다. 나 스스로 흡족할만한, 실망하지 않을만한 에세이든 소설이든 탄생시키는 게 목표다. 다른 목표는 없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