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만삭스 출신이 워싱턴 정가에 진출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아 ‘회전문식 인사’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사진은 골드만삭스 회전문 입구. 로이터/뉴시스 | ||
하지만 골드만삭스를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골드만삭스가 지난 연말 수백억 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인다는 소식에 미국인들은 “국민들 세금으로 가까스로 살아나더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지난 한 해를 정리하면서 금융위기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골드만삭스에 대해 심도 있게 보도했다. 골드만삭스는 어떤 곳이며, ‘세계의 진정한 주인은 골드만삭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그 막강한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뉴욕 브로드 스트리트 85번지 30층 건물 앞에는 번지수를 나타내는 ‘85’라는 숫자 외에는 어떠한 간판이나 표지판도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처음 뉴욕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회사인지 모른 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뉴요커를 비롯한 미국인에게 이곳은 전혀 낯선 곳이 아니다. 전 세계 직원 3만 1000여 명을 거느린 막강한 금융기업이자 수백억 달러를 주무르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바로 골드만삭스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힘은 위기에서 더욱 빛났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당시 골드만삭스는 다른 대형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이미지를 구겨야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7월 일찌감치 공적자금을 모두 상환하면서 월가 최고의 승자임을 다시 한번 세상에 각인시켰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독일연방재정의 세 배에 달하는 1조 달러(약 1100조 원)를 운용하고 있으며, 현금 1600억 달러(약 182조 원)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자금 규모가 나라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이다 보니 “골드만삭스가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금융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55)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인물’로 뽑히면서 한층 더 주가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걸까. 지난 연말 골드만삭스는 3만 1000여 명들의 임직원들에게 총 230억 달러(약 26조 원)의 현금보너스를 지급하겠노라고 발표했다. 직원 한 명당 평균 50만 달러(약 5억 7000만 원)의 보너스를 챙겨가게 되는 셈이다. 이는 월가 역사상 최고 액수인 것은 물론,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지난 2007년 지급됐던 202억 달러(약 22조 원)보다 많은 것이었다. 당시 블랭크페인은 월가 CEO 중 최고 액수인 6850만 달러(약 780억 원)의 보너스를 받았으며, 이는 골드만삭스 순이익의 0.6%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골드만삭스의 보너스 잔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리는 만무했다. 국민의 혈세를 받아서 죽다가 살아난 주제에 반성은커녕 뻔뻔하게 또 다시 과거의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주재한 금융사 대표 회동에 블랭크페인이 불참하자 이런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안개 때문에 워싱턴행 비행기가 연착됐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사람들은 골드만삭스가 더 이상 백악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블랭크페인의 말 실수까지 터졌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를 통해 고액 보너스에 대해 해명하던 그는 “기업들은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받고, 이윤을 창출한다. 또한 기업이 성장하면 자연히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부를 창출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신(神)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블랭크페인이 이처럼 은행가들을 신에 비유하자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선택된 사람들’인 양 우쭐대는 태도에 어이가 없다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넘었고,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이에 경제전문지 <포천>은 ‘올해 가장 기가 막힌 순간’ 1위로 블랭크페인의 발언을 꼽았으며, 또한 <포브스>는 ‘올해 최악의 CEO 10인’ 가운데 블랭크페인을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블랭크페인은 뒤늦게 자신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끓어오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최고 임원 30명에 대한 보너스를 현금 대신 주식으로 지급하겠노라고 발표했다. 이 주식은 5년 동안 매각이 금지된 제한적인 주식이었으며, 블랭크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블랭크페인은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를 일으킨 데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과한다”며 뒤늦게 머리를 조아렸다.
비난과 질타에도 불구하고 골드만삭스는 여전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꿈의 직장임에 틀림없다. 미국 내 최고의 연봉을 자랑하는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전 세계 직원들에게 160억 달러(약 18조 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직원 한 명당 평균 5000만 원의 월급을 받아갔던 셈이다.
▲ 올해부터 입주하는 골드만삭스 신사옥. | ||
물론 철저한 심사를 거쳐 원하는 인재를 뽑으려는 의도이긴 하지만 골드만삭스가 이렇게 ‘마라톤식 면접’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 바로 골드만삭스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가치인 ‘협동정신’ 즉 ‘팀워크’ 때문이다. 수십 번에 걸친 면접을 통과하면서 지원자들은 자연히 여러 부서의 직원과 친분을 쌓게 되고, 또 어떤 동료들과 일하게 될지,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를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골드만삭스의 이런 팀워크 정신은 월가의 다른 경쟁사에서는 볼 수 없는 골드만삭스 특유의 기업문화다. 이는 유대인 창업주인 마르쿠스 골드만과 그의 사위인 새뮤얼 삭스의 영향이 크다. 유대인 특유의 근면함과 협동심으로 회사를 창업했던 이들은 무엇보다도 직원 간의 유대감과 희생정신을 중요시했다. 이런 까닭에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는 ‘나(I)’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우리(We)’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런 팀워크 정신에 대해서 정치인 출신으로 16년 전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존 로저스는 “우리는 양키스 팀과 같다. 다른 팀들의 유니폼에는 선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양키스의 유니폼에는 팀로고와 선수들의 등번호만 적혀 있다”고 비유했다.
골드만삭스의 팀워크 정신은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투자은행과 달리 골드만삭스는 직원의 개인성과에 따라서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다. 대신 은행의 전체성과에 따라서 일괄적으로 지급한다.
팀워크를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직원 간에도 끈끈한 동료애가 생겨났다. 뉴욕 본부의 골드만삭스 직원은 다른 은행의 직원보다 서로 어울리길 좋아하며, 퇴근 후에는 근처 바에 들러서 술 한잔을 기울이고 가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주말에는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열거나 일부러 자녀를 같은 사립학교에 보내는가 하면, 같은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거나 일부는 일정을 맞춰 휴가를 가기도 한다.
마치 회원제 클럽과 같은 골드만삭스 직원 간의 끈끈한 동료애는 회사 밖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골드만삭스와 워싱턴의 커넥션’이다. “골드만삭스에서 은퇴하면 워싱턴으로 간다”는 말이 정설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실제 지금까지 골드만삭스 출신이 워싱턴 정가에 진출한 경우는 부지기수였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골드만삭스가 미국 경제를 이끈다”는 말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이를 빗대어 ‘회전문식 인사’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월가에서 워싱턴으로 갔다가 다시 월가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실제 역대 미국의 대통령들이 골드만삭스 출신을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사례는 많았다. 가령 부시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은 골드만삭스 회장과 CEO를 겸했던 인물이다. 블랭크페인의 전임자였던 그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AIG까지 파산 위기에 놓이자 일주일 동안 블랭크페인에게 무려 24번이나 전화를 걸었을 정도로 블랭크페인과는 아주 막역한 사이다.
이밖에 클린턴 정권 당시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이나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조슈아 볼튼, 스티븐 프리드먼 국가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연봉 1달러만 받겠습니다!”를 외치며 뉴저지주 주지사에 당선됐던 존 코자인,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총재, 존 테인 뉴욕증권거래소 사장 등도 모두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현재 오바마 정부의 실세인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역시 골드만삭스의 고문을 지낸 ‘골드만삭스 사람’이다.
이처럼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상관없이 골드만삭스와 정부와의 유착관계는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거버먼트 삭스(Government Sachs)’라는 단어가 월가에서 유명해진지는 이미 오래다.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이렇게 워싱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인맥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먼저 워싱턴에 둥지를 튼 실세들이 차기 장관이나 주요 직책에 골드만삭스 출신을 추천하거나 막강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이번 금융위기에서 빠른 속도로 회복된 것 역시 정부와의 결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령 골드만삭스가 AIG에 투자한 거금을 보호해주기 위해 정부가 AIG의 구제금융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구제금융을 통해 골드만삭스는 AIG에 물려있던 돈 130억 달러(약 14조 원)를 전부 회수할 수 있었다.
골드만삭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 대해서 월가의 한 직원은 “답은 둘 중 하나다. 골드만삭스 직원들이 정말 뛰어나게 영리하거나 아니면 정부와 결탁된 부패한 카지노 시스템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모든 카드패와 게임 참가자에 대해서 꿰뚫고 있기 때문에 항상 돈을 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골드만삭스가 정부와의 끈끈한 유대관계로 가치 있는 정보를 독점적으로 제공받거나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와 워싱턴의 유대관계가 오히려 정부와 더 나아가 미국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존 로저스는 “금융위기 당시 백악관을 비롯한 각 정치분야에는 금융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위기를 더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금융업계의, 그리고 그 한가운데 우뚝 선 골드만삭스의 앞으로의 행보에 전 세계 경제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누구
뒷문으로 입장… 정상까지 우뚝
▲ 로이드 블랭크페인 | ||
영리한 두뇌로 하버드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던 그는 로스쿨을 졸업한 후 작은 로펌에서 일했다. 1980년대 초 투자은행에서 일할 꿈을 품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에 지원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 후 원자재 투자회사인 ‘J. 아론’에 입사해 금을 판매하는 업무를 보다가 1982년 회사가 골드만삭스에 합병되자 소위 말해 ‘뒷문’으로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2006년 CEO로 발탁되면서 그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다. 리스크 관리에 뛰어난 그의 동물적인 투자감각으로 회사의 매출 속도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정상화시킨 데 대한 공을 인정받았던 그는 지난해 3분기에는 전년대비 세 배가량의 수익을 내면서 명실상부한 ‘월가의 승자’로 이름을 날렸다.
막대한 보너스와 연봉으로 종종 도마 위에 올랐던 그는 2007년 6850만 달러(약 780억 원)의 기록적인 보너스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월가 CEO 중 최고액이었다.
블랭크페인은 “훌륭한 금융인이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좋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좋은 결정’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또한 골드만삭스의 기업 이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비록 블랭크페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블랭크페인의 시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