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기본인식이 후진적인 것도 모자라 관리감독에 나서야 할 관할 지자체마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용한 살인자’라는 별칭이 붙은 석면은 석면폐증, 폐암 및 중피종을 유발하는 무서운 물질이다. 이러한 질병은 진단하기도 힘들고 치료조차 불가능하다고 학계에 보고돼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석면의 피해가 심각한 위험수준에 이르자 석면안전관리법을 제정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건설업자들의 손익에 발목이 잡혀 국민의 건강이 석면에 노출돼 있는 현실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일부 몰지각한 건설업자들의 상혼이 국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방재시설도 없이 도로변에 방치된 석면의 모습.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곳은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지난 2013년 3월 발주한 하동-화개 국도건설공사 주택철거현장이다. 해당 현장에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구 보건지소 창고 지붕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면 함유 슬레이트가 무더기로 나왔다.
폐석면이 자리한 곳은 국도 19호선인 하동-화개 국도 인근이다. 교통량이 많은 곳으로 철거 작업 당시 인근을 지나간 운전자나 지역민들이 석면에 노출될 개연성이 매우 농후하다.
문제는 석면이 발견된 후 취한 시공사 남해종합건설의 태도다. 석면이 발견되면 모든 철거작업을 중단하고 노동부에 신고한 후, 관련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후 안전성이 확보되면 작업을 재개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남해종합건설은 주택철거 과정에서 노동부에 폐석면 발견신고를 하지 않았다. 특히 폐석면을 일반폐기물과 혼합해 배출하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또한 폐기물 관리법에 의해 비산먼지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재시설인 덮개도 덮지 않아, 지정폐기물인 석면가루가 대기 중에 얼마나 방사됐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다.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기본적인 규정도 지키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폐기물 관리가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지는지 엿볼 수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안일한 보관·수거방법으로 인해 지정폐기물로 처리해야 할 슬레이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2차 오염이 발생할 개연성마저 높은 상태다. 사람에게나 동·식물을 오염시켜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차단할 의지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동군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보건지소가 있었던 창고 안에 슬레이트가 있었던 것 같다. 석면 지장물 조사에서 누락돼 있었지만 석면이 발견되면 즉시 철거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 “법률 검토 후 행정조치를 취해야 할지 여부는 애매하다”고 말해 어중간한 입장을 취했다.
하동군의 이 같은 모습은 석면과 관련한 정부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것이어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해종합건설 관계자는 “석면은 철거에서 나온 게 아니라 땅속에 묻혀 있었다. 아직 선별작업 중이다”면서 “일주일 전부터 철거에 들어갔고 작업 중에 발견돼 중지하고 감리단에 보고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지역주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주민 김 아무개 씨는 “공사업체와 하동군, 국토관리청 등은 들키면 갖가지 변명을 늘어놓고 거짓말을 일삼는다. 다들 한통속인지는 몰라도 올바로 행정조치를 취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서 “주민들의 피해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공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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