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10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상 축하 연회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와 아내 미셸. 로이터/뉴시스 | ||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책 <게임 체인지(Game Change)>는 정치인들의 이면에 숨겨진 이런 비화를 폭로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08년 미 대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이 책은 정치전문기자인 <뉴욕 매거진>의 존 헤일만과 <타임>의 마크 핼퍼린이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300명이 넘는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하고 있다. 과연 2008년 대선 당시 민주당과 공화당 깊숙한 곳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 오바마와 바이든은 서로를 못 믿었다?
대선 당시 오바마와 그의 러닝메이트였던 조 바이든의 관계는 여느 정치인들보다 훨씬 친밀하고 돈독해 보였다. 오바마는 자신의 짧은 정치경력을 염려하는 유권자를 의식해서 연륜이 많은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둘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환상의 커플’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사실은 모두 ‘연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사실은 서로 말도 잘 안 할 정도로 서먹한 사이인 데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돌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이든의 ‘가벼운 입’이었다. 2008년 9월 어느 날, 바이든은 취재기자들을 향해 “러닝메이트(오바마)보다 내가 대통령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오바마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 후에도 바이든은 몇 차례 더 기자들에게 자신이 오바마보다 더 자격이 있다고 말하곤 했으며, 한번은 “세상은 존 F 케네디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바마에게도 취임 6개월 안에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오바마의 ‘복수’는 교묘하게 진행됐다. 말이 너무 많은 바이든이 행여 말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오바마 진영은 바이든에게 내부 회의 일정을 알리지 않은 채 단독으로 회의를 진행시켰고, 대신 고위급 보좌관 두 명으로 하여금 바이든과 정기 회의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바이든을 철저히 견제하는 동시에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 2004년 대통령 출마를 고민했던 힐러리. 그때 만약 출마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연합뉴스 | ||
힐러리 클린턴은 2004년 대선 당시 마지막 순간까지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당시 재선을 노리고 있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에 맞설 적임자로서 이미 힐러리는 민주당 내에서 든든한 지원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힐러리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홀로 결정을 내려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몇몇 측근들과 남편 빌 클린턴, 딸 첼시가 모인 자리에서 투표를 통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모두가 출마를 찬성했지만 단 한 명, 첼시만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첼시는 “적어도 상원의원으로서의 임기는 마쳐야 한다. 그것이 엄마를 믿고 뽑아준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힐러리는 결국 출마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책의 저자들은 “만일 그때 힐러리가 출마를 했다면 존 케리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당시 전당대회에서 인상적인 기조연설로 스타로 떠오른 오바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 케네디 가문이 오바마를 지지한 진짜 이유는?
민주당 경선 당시 최대의 관심사 중에 하나는 ‘과연 정치명문인 케네디 가문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오바마의 승리였다.
민주당 원로였던 에드워드 케네디에 이어 캐롤린 케네디까지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하자 힐러리 진영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다. 케네디 가문은 누가 봐도 자신들 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네디 가문이 이렇게 변심 아닌 변심을 한 것은 클린턴 부부의 무성의하고 거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힐러리를 마음속으로 낙점하고 있었던 캐롤린은 힐러리 선거캠프에 아이오와에서 유세를 벌이겠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도 힐러리는 캐롤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지 않았다. 대신 참모들을 시켜 전화를 걸도록 했고, 이에 마음이 상한 캐롤린은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
결국 아이오와에서 오바마에게 밀려 3위로 밀려나자 다급해진 클린턴은 아내를 대신해서 에드워드 케네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원사격을 해달라는 뜻에서 건 전화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바마를 깔보는 듯한 클린턴의 태도가 문제였다. 당시 클린턴은 “이 친구(오바마)는 몇 년 전만 해도 우리한테 커피 심부름이나 했을 텐데”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기분이 상해서 클린턴에 대한 마음을 접고 말았다.
# 힐러리에게 클린턴은 앞길을 막는 골칫덩이다?
당시 힐러리의 민주당 선거캠프에는 선거상황실을 뜻하는 ‘워룸’ 안에 또 다른 ‘워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남편인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대비하기 위한 상황실이었다. 세 명의 참모진으로 구성됐던 이 ‘워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클린턴의 스캔들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책의 저자들은 실제 경선 기간 동안 클린턴이 또 한 차례 외도를 했으며, 시시한 하룻밤 정사가 아닌 심각하고 진지한 관계였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상대 여성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오바마로부터 국무장관직을 수락할 때에도 힐러리는 남편 때문에 끝까지 고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제의를 거절했던 힐러리는 오바마가 두 번째로 전화를 걸어 다시 설득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지막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무슨 뜻인지 알지 않느냐?” 이어 그녀는 “내 남편 얘기다. 내가 국무장관직에 오르면 아마 구경거리가 될 것”이라며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내 남편을 통제할 수가 없다. 언젠가 한번은 남편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사진 위부터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 부부. 민주당 경선 후보 존 에드워즈 부부. 존 매케인과 러닝메이트였던 세라 페일린. | ||
마땅한 러닝메이트를 찾지 못하고 있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전당대회가 열리기 5일 전에야 비로소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였던 세라 페일린에 대한 검증을 마치고 후보에 지명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튀겨 먹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부에서도 ‘잘못된 선택’이라는 비난이 대세를 이루었다. 깜짝 놀라는 수준을 넘어서 경멸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딕 체니 부통령은 “페일린은 고위직을 맡을 준비가 전혀 안 된 인물”이라고 반대하는 한편 “신중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탐탁지 않게 여기긴 마찬가지였다. 백악관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 지명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던 그는 처음에는 페일린의 이름을 미네소타 주지사였던 ‘팀 폴렌티’인 줄로 착각했다. 그는 혼잣말로 “재미있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 ‘폴렌티’가 아니라 ‘페일린’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리둥절해했으며, “대체 무슨 생각들인 거야?”라고 말했다.
비록 본인이 지명을 하긴 했지만 매케인 역시 페일린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애처럼 심통을 부리거나 뚱하게 말을 안 하는 태도도 영 불만이었다. 결국 매케인 진영에서는 “만일 매케인이 급사라도 할 경우, 미국을 페일린에게 맡길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이에 대비해서 당선이 되면 즉시 부통령의 역할을 명예직으로 강등시킬 방안도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페일린의 무식함도 문제였다. 페일린은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왜 남한과 북한이 갈라졌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며, 9·11 테러의 배후에 빈 라덴이 아닌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조 바이든과의 첫 번째 TV 토론회에서 페일린이 도중에 “그냥 ‘조’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물었던 것에 대한 일화도 공개됐다. 습관적으로 페일린은 바이든을 ‘오바이든(O’Biden)’이라고 잘못 불렀다. 보좌관들이 사전 연습 때 이 발음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지만 헛수고였고, 결국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그냥 ‘조’라고 부르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페일린은 토론 당시 한 차례 ‘오바이든’라고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 매케인 부부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존 매케인과 신디 매케인 부부는 선거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보좌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곤 했다. 소규모 미팅이나 대규모 행사장이건 가리지 않고 크게 말싸움을 하는 통에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신디가 욕을 하면 매케인이 받아치고, 그러다가 신디가 울기 시작하면 매케인이 사과를 하는 식의 싸움이 반복됐다. 신디는 “난 당신이 대선에 출마하길 바란 적이 없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 모두 당신 탓”이라고 고함을 치곤했다.
한번은 머리끝까지 화가 폭발한 매케인이 신디의 얼굴에 대고 양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큰 소리로 욕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런 까닭에 선거홍보동영상을 촬영하던 스태프들은 매케인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잡기 위해서 늘 애를 먹어야 했다. 몇 시간 동안 촬영해야 겨우 한두 장면 건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 선거 기간 중에 바람난 신디 매케인?
신디에게 내연남이 있다는 소문은 2007년 봄에 처음 불거졌다. 애리조나에서 신디가 한 남성과 함께 야구장을 찾은 모습이 목격됐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처음 전해들은 매케인의 참모들은 이 소문이 공론화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를 벌였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소문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론에서 이 문제를 크게 다루진 않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빌 클린턴 정도 되면 모를까, 후보의 배우자 문제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타블로이드 잡지인 <내셔널인콰이어러>에서 이 소문을 다룰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보좌관들은 매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매케인은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던 매케인은 신디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유세를 하러 더 같이 자주 돌아다녀야겠다. 사람들 앞에서 우리 둘이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
# 엘리자베스 에드워즈는 현모양처 아닌 악처?
지금까지 존 에드워즈 민주당 경선 후보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에드워즈에 대한 여론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유방암 투병 중에도 남편을 위해 내조에 전념하는 모습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게다가 남편의 외도 스캔들이 터졌을 때에도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며, 단 한 번도 ‘이혼’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묵묵히 남편 곁을 지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된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아니었다. 책에서 저자들은 “세상은 그녀를 용감하고 단호한 성품의 영웅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부와 가까운 사람들의 말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공격적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내뱉는 편집증적인 사람이다. 많은 지인들이 그녀를 잘난 체하는 정신 나간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사석에서의 모습과 공개적인 이미지는 매우 상충된다. 에드워즈 측근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다.
심지어 어떤 보좌관들은 자신들이 엘리자베스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 엘리자베스는 한 보좌관을 가리며 ‘바보(idiot)’라고 부르는 등 막말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대선 때에는 자신의 선거 스케줄에 대해서 설명하는 보좌관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빌어먹을! 대체 왜 내가 월마트 밖에 서서 전단지를 나눠줘야 하는데?”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남편의 섹스 스캔들이 <내셔널인콰이어러>를 통해 보도되자 화가 폭발한 그녀는 롤리 공항의 주차장에서 입고 있던 블라우스를 찢어 유방 절제 수술 부위를 보여주면서 “나를 봐요”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