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모친 야스코로부터 받은 돈을 정치 헌금으로 둔갑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 ||
하토야마의 위장 헌금 사건이 처음으로 논란이 된 것은 자신의 돈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한 뒤 사망자 이름까지 도용해 마치 헌금을 받은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24일 위장 정치헌금 사건으로 가쓰바 게이지 전 공설 제1비서(59)는 불구속 기소, 하가 다이스케 전 정책비서(55)는 약식기소됐다. 이날 하토야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비서가) 자금조달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위장 동기였다고 해명했다. 검찰이 조사한 위장 헌금의 액수는 하토야마 정치자금 관리단체의 2005∼2008년 정치헌금 중 사망자 등 90명의 이름을 도용한 2177만 엔(약 2억 5000만 원)과 2004∼2008년 정치자금수지보고서 중 익명 헌금 등 2억 엔(약 26억 원)이다. 헌금의 출처는 모두 하토야마의 자산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검찰조사 중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더 밝혀졌다. 총리의 모친인 재벌가 장녀 하토야마 야스코(87·브리지스톤 창업자의 딸)가 2002년부터 주기적으로 총리에게 명분을 알 수 없는 ‘용돈’을 보내왔던 것이다. 한 달에 1500만 엔(약 2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7년간에 걸쳐 보낸 것이 총 12억 6000만 엔(약 1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돈이 전달된 방법은 현금을 직접 전달하거나, 은행을 통해 송금하기도 했다. 가쓰바와 하가 두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하토야마가의 자산관리회사의 간부가 야스코로부터 은행의 서류에 야스코의 서명을 받아 출금해오면 그녀가 유키오(총리)나 구니오(총리의 동생·법무대신)의 비서에게 전달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정치자금이 부족하자 총리 스스로 정치자금을 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모자라 2002년부터 모친인 야스코로부터 자금을 받기 시작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 모친 야스코(왼쪽)과 부인 미유키. | ||
부인 미유키는 하토야마와 마키와의 관계를 보도를 통해서야 알게 됐고 그의 카드를 모두 압수했다. 그러자 야스코는 아들이 안쓰러웠던지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야스코는 미유키에게 남편을 두둔하는 인터뷰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 후 미유키는 “만약 남편의 스캔들이 사실이라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온다. 처자와 멀리 떨어져 얼마나 쓸쓸했으면 그랬을까”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녀의 의외의 발언에 스캔들은 순식간에 하토야마와 미유키의 ‘사랑 재확인’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가 마키와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하토야마가 선거출마를 위해 미유키 부인을 도쿄에 남겨둔 채, 홋카이도로 혼자 떠나오면서부터였다. 1984년 모로란에서 새로 오픈한 클럽의 작은 마담으로 일하고 있던 마키를 하토야마는 동창으로부터 소개받는다. 마키가 1991년 독립해 자신의 클럽을 경영하게 된 것도 연인 사이로 발전한 하토야마의 원조 덕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하토야마는 미유키 부인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둘은 거의 부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다림질과 요리뿐 아니라 그의 고민까지 상담해주는 말 그대로 ‘현지처’였다. 마키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의 말에 따르면 “하토야마는 마키에게 ‘딸을 낳아줬으면 좋겠어. 딸과 마키가 날 기다리고 있는 집에서 생활하고 싶어’라든가 정치적인 고민이나 야망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했다”고 전한다.
스캔들이 터진 직후 마키는 하토야마 사무실의 비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11년간의 만남에 대해 침묵할 것을 정중히 부탁하는 전화였다. 그녀는 대가로 2000만 엔(약 2억 5000만 원)을 요구했지만 받은 돈은 1300만 엔(약 1억 7000만 원)이었다. 가게경영에 실패하고 도박에 빠져 1억 엔(약 12억 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던 그녀에게는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결국 스캔들이 일어난 그 다음해에 그녀는 모로란에서 행방을 감췄다.
애처가의 이미지를 간직했던 하토야마가 내연녀와의 문제 때문에 ‘용돈’을 받아왔다는 의혹이 일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지금 일본에서 노모의 자금지원 없이는 연애도, 정치도 제대로 안 되는 ‘마마보이’로 비춰지고 있는 듯하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