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발생한 신안 섬마을 70대 할머니 살인 사건에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숨겨진 또 다른 범인이 있었단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이 인물이 할머니 살해 주범을 최초 범행 현장으로 끌어들인 사실이 포착됐다. 사진은 신안군 신의면 한 염전의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연합뉴스
현재 신안 할머니 살인 사건과 관련해 두 건의 재판이 각기 진행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먼저 지난 8월 피해 할머니 이 아무개 씨(77)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A 씨(30)는 현재 강간 및 살인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A 씨 범행 당일 그보다 먼저 이 씨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하고 달아난 B 씨(28)의 재판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진행 중이다. 경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B 씨의 존재는 A 씨를 수사하던 검찰에 의해 드러났다. 이들은 같은 마을에 살며 평소에도 자주 어울려 다니는 동네 선후배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실제 이 씨를 살해한 A 씨를 최초 범행 현장으로 끌어들인 게 뒤늦게 검찰에 붙잡힌 B 씨의 소행으로 밝혀져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B 씨가 먼저 이 씨를 범행 대상으로 특정한 것은 물론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A 씨를 범행에 끌어들인 뒤 협박까지 한 사실이 포착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B 씨 공소장에 따르면, B 씨는 지난 8월 15일 저녁 A 씨에게 “좋은 데가 있다”고 말하며 그를 데리고 같은 마을에 사는 피해자 이 씨 집으로 향했다. 평소 이 씨와 이웃에 살고 안면이 있는 A 씨가 집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자 B 씨는 칼로 위협, 그를 데리고 이 씨를 강간할 목적으로 집 부엌문으로 침입했다.
당시 이 씨는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상황으로 집에 침입한 B 씨와 A 씨를 보고 놀라 “너희 엄마 아빠한테 말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A 씨는 이 씨의 말을 듣고 놀라 부엌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B 씨는 “방 밖에서 망을 보라”고 지시했고 A 씨는 B 씨의 위협이 무서워 그의 지시에 따라 안방 문 앞에서 망을 보기 시작했다. 그 뒤 B 씨는 “살려 주세요”라고 수차례 소리 지르며 저항하는 이 씨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가 방바닥 이불 위에 눕히고 성폭행을 저지른 뒤 현장을 떠났다.
검찰은 B 씨의 범행 이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 씨의 상황을 A 씨가 알고 다시 찾아가서 이 씨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유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 씨의 아들 박 아무개 씨(51)는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으니 답답한 마음뿐”이라며 “경찰은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년 전 경찰이 똑바로 수사만 했어도 어머니는 안 돌아가셨을 테고 이번에도 검찰이 B를 잡은 것 아닌가. 경찰은 이후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B 씨가 3년 전 똑같은 강간·살인을 저지른 A 씨의 전력을 알고도 그를 범행으로 끌어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박 씨는 “서로 자주 어울려 다녔고 ‘좋은 데가 있다’고 하고 성폭행을 저지른 것을 보니 저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며 “이번에도 사실상 B가 범행 모의를 계획하고 지시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A와 B가 같은 마을에 사는 동네 선후배 관계로 서로 잘 아는 사이는 맞지만 자세한 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유족들은 지난 1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열린 B 씨의 재판에 참석해 처음 그를 대면했다. 박 씨는 “그동안엔 이것저것 경비 때문에 A 재판에만 가다가 B 재판은 이번에 처음 가봤다”며 “B는 같은 동네 출신 변호사까지 선임했더라. 범행 사실을 계속 부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형이 길게 떨어질 거라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