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조사’ 청문회에서 ‘위증 논란’에 휘말렸던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그는 1년이 지난 지금 “당시엔 억울했지만 ‘최순실 태블릿PC’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이 두려워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최준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일조했다. 심경이 어땠나.
“바라던 일이었는데, 굉장히 뭉클했다.”
―그 이후 본인의 삶에 변화가 있다면.
“최순실 씨가 있던 K스포츠재단이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생계가 달린 나의 입장에선 한 순간에 직장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 어디서 나 같은 사람(내부고발자)를 받아주겠나. 공채로 채용은 영원히 어려울 것 같다.”
―지난해 12월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위증 논란’에 휘말렸다.
“청문회 전후로 고영태 전 더블루K이사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나에게 위증 의혹을 뒤집어 씌웠는데, 이 때문에 아직도 억울한 부분이 많다. 두 사람은 나를 궁지에 몰리게 만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나.
“4차 청문회가 열리는 지난해 12월 15일보다 이틀 전인 13일, 고영태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모 의원이 ‘최순실 씨와 일하며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박헌영 과장이 ‘고영태 씨가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한번은 태블릿PC 충전기를 구해오라고도 했다’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 인터뷰 기사는 청문회 이틀 뒤인 17일에 보도됐다.”
―고영태는 왜 뒤집어 씌웠다고 생각하나.
“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이 위험해질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지금 고영태와 관련해 드러난 ‘인천본부세관장 인사 개입’ ‘뒷돈 수수’ 등을 보라. 내가 말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이 일파만파 커지니 겁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8~9월엔 연락을 끊고 돌연 외국으로 잠적하지 않았나.”
―노승일은 어떻게 위증 의혹을 씌웠나.
“노승일은 19일 <중앙일보>에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정동춘 이사장에게 위증을 제안했고, 정동춘 이사장은 나에게 위증시켰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그 기사는 나갔는데, 이는 실제 사실과는 다르다.”
―사실은 무엇인가.
“어느날 정동춘 이사장이 나를 방으로 불러 ‘이완영 의원 만나고 왔는데, 너 인터뷰 하라고 그러더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인터뷰 하지 않고 청문회 가서 다 진술하겠다’며 거부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방에서 나왔는데 노승일과 마주쳤다. 노승일이 ‘정동춘 이사장과 무슨 얘기를 나눴냐’고 묻기에 나는 있었던 대화를 사실대로 전했다. 그러자 노승일은 <중앙일보> 인터뷰에 ‘새누리당 모 의원이 정동춘 이사장을 통해 박헌영에게 위증교사를 했다’고 기사를 낸 것이다. 나는 인터뷰를 해보라고 하길래 안 한다고 한 건데, 이를 들은 노승일은 ‘박헌영이 의원과 위증 모의를 했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다.”
―노승일에게 반박은 했었나.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말을 더듬으면서 동문서답을 하더라. 이 녹취록도 내가 가지고 있다.”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은 “고영태와 노승일이 나에게 위증 의혹을 뒤집어 씌웠다”고 밝혔다. 최준필 기자
“청문회라는 곳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에게 발언 기회가 오지도 않았고, 온다 해도 의원들이 묻는 질문에 답만 했어야 했다. 12월 22일 5차 오전 청문회에서 이완영 의원은 ‘위증교사 의혹 풀자’고 주장했지만, 야당은 ‘우병우-조여옥 청문회’라고 맞서며 정쟁만 이어갔다. 그리고 오후 청문회에서는 백승주 여당 간사가 들어와서 엉뚱한 북한 얘기만 해대는 통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언론에 접촉해 결백을 주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22일 청문회가 끝나고 나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노승일·고영태 가만 두지 않는다. 죽여 버릴 것’이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기자들이 몰려들더라. 그래서 나는 노승일과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다음날 오전 10시에 공개하겠다고 말하고 기자들과 약속했다. 하지만 다음날 생각이 바뀌었다.”
―왜 생각이 바뀌었나.
“녹취록을 공개했을 경우 시나리오를 생각해봤다. 이를 공개하면 여론은 ‘태블릿PC가 어쩌구저쩌구’ 할 테고 ‘최순실의 태블릿PC 소유 여부’가 아니라 ‘박헌영 대 고영태·노승일’이 돼 본질이 흐려질 것 같았다. 물론 녹취록을 공개하면 나의 위증 혐의는 벗을 수 있겠지만, 이 사건 전체를 뒤흔들고 물타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새누리당)이 이를 악용할 것이 뻔해서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위증 의혹으로 비난을 많이 받았다.
“국민적 욕받이가 됐었다. SNS에 메시지로 ‘죽여 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성 욕설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 당시 굉장히 힘들었다. ‘박헌영은 처음엔 거짓말 했지만 나중엔 옳은 말 했으니 봐주자’는 반응도 많았다. 고영태·노승일은 우상화됐지만, 나는 오명으로 억울할 뿐이다. 가족들이 뉴스를 매일 보는데 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었다.”
―위증 의혹 이외에 힘든 것이 있었나.
“기자들의 취재 윤리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기자들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고영태와 노승일 입장을 실은 기사가 나왔지만, 그 전에 내 입장은 묻질 않았다. 물론 묻는 기자도 있었다. ‘나는 위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기사 작성 마감시간이 다 됐다는 이유로 내 주장은 묵살됐다. 그렇게 보도가 나갔고 나는 위증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당시 어떤 기자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내 집에 찾아와 수시로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아프신데,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벨을 눌러 아버지가 걱정됐다. 나중에 그 기자에게 그만 해달라고 사정했더니 기자는 ‘내일부터 박 과장님 집 앞에 기자들 20~30명씩 대기시키게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협박하기도 했다.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다급했던 기자들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최순실은 뭐라고 했나.
“최순실이 구속된 후의 일이었다. 한 번은 내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로 나섰는데, 내 맞은편에 여자 교도관이 걸어 나오더라.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최순실이 옆에 있을 것이라고. 그러더니 진짜로 최순실이 바로 따라 나왔고, 이를 본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다시 검사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땐 정말 놀랐고 무서웠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부제보실천운동에 소속돼 있다. (이런 역할을 하고나서 보니) 내부제보를 하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고 회사에서 잘리고 왕따가 되고 월급을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더라. 우리나라에 내부제보자들을 위한 보호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활동을 현재 이 단체에서 하고 있다. 내부제보에 대해 알리고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