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 ||
일본은 지금 주부들 사이에서는 ‘리카쓰(이혼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사전활동을 한다는 뜻)’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중에는 인터넷에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며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일본사회의 새 유행 ‘리카쓰’를 뜯어봤다.
일본에서 2009년 핫키워드로 떠오른 ‘곤카쓰(혼인활동을 뜻하는 일본어로 취업활동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기 위해 벌이는 맞선 등을 뜻한다)’가 싱글인 남녀를 대상으로 유행한 말이라면 기혼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신조어는 따로 있다. 바로 리카쓰다.
일본은 2002년 사상 최고인 28만 9836쌍이 이혼한 뒤 점차 감소해 2009년에는 25만 4832쌍의 부부가 헤어졌다. 그런데 이혼율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에서는 ‘리카쓰’가 유행하고 있다. 주로 이 활동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몇 개월간의 시간을 투자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이혼을 하려는 것이다. 특히 40대 전후의 ‘아라포세대(around 40을 일본식으로 줄인 신조어. around 30은 아라사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이혼해야 겠다”며 자녀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그 외에도 혼자가 됐을 때 수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치밀하게 준비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그럼 이렇게 이혼을 원하는 아라포 주부들이 급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 사회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경기불황’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렇지 않아도 가정보다는 회사를 중요하게 여겼던 남편들이 가족과 대화가 줄어들며 서로 간에 관계가 소원해진 데다 가장의 권력이었던 ‘경제력’마저 흔들리는 경우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부들이 늘고 그중에 차라리 이혼 위자료로 새출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인터넷상에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게시판에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남편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모집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녀들은 “빨리 남편이 죽어 보험금이나 탔으면 좋겠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오히려 더 잘됐다”, “남편과 살이 닿기만 해도 죽고 싶을 만큼 싫다”라는 극단적인 글들을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실제로 한 여성은 “아이와 내가 먹을 것과 남편이 먹을 것을 구별해 둔다. 남편이 먹는 요리에는 일부러 가격이 저렴한 달걀과 고기를 준비해 기름이나 소금을 필요 이상으로 써서 조리한다.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을 먹이고 생명보험에 잔뜩 가입한다든가 보험금을 올리기도 한다”며 남편이 하루빨리 죽을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른 여성들도 ‘어떻게 죽어야 얼마를 탈 수 있다’라든가, 친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 양육비 문제, 재산분배, 이혼의 절차와 이혼 뒤를 위해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20년 전에 이혼한 한 어패럴계 회사 사장(55·남)은 주부고콘에 참가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젊은 독신 여성들과 많은 만남을 가졌다. 젊은 여성들은 보통 사귀다보면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고, 지금 당장 진지한 관계를 갖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러던 중, 친구 소개로 주부고콘에 참여하게 됐다”며 “주부고콘은 ‘리카쓰’ 중이라 밝히는 기혼여성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녀들도 현재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깊은 관계를 원하지도 않아 좋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내가 ‘리카쓰’ 중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 일본의 가정문제 전문가는 부부 사이에 다툼이 없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다툼이 줄었다면 부인이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지 먼저 의심하라고 충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툼이 줄면 남편은 부부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인이 상대와 거리감을 두고 있거나 관심이 없어져 싸움조차 일어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생각을 남편이 모를 것이라는 미안한 마음에 친절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충고했다.
또한 외모에 갑자기 변화가 찾아오는 것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머리 스타일이 바뀌거나, 화장이 짙어졌거나, 손톱을 정리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면 일단 심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외출이 잦아지거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모임이 늘어났다면 이혼 뒤의 사회적인 활동을 대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가장 확실한 것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도 반사적으로 몸이 닿지 않으려고 피한다거나. 같은 타올을 쓰려고 하지 않고, 남편이 남긴 밥을 먹지 않게 됐다면 부인이 남편을 생각하는 감정이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가정문제 전문가는 “보통 여자들이 남편의 냄새도 맡기 싫고, 목소리도 듣기 싫고, 남편의 속옷을 세탁하는 것마저 고통으로 느껴진다면, 즉 가장 일상적이고 생리적인 문제로 남편을 미워한다면 부부관계는 끝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인에게 미움 받지 않을까. 또 다른 연애·결혼전문 상담가인 하시모토 씨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상대가 기뻐할 일을 해야 한다. 항상 무리하라는 게 아니라 가끔은 꽃다발이나 와인,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좋으니 상대방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또한 바쁜 부부 생활 속에서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분담’하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서로의 일을 나누다 보면 상대방이 하지 않은 일이나 게으름을 피우는 것에 대해 더욱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가 협력해 일을 나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서로 간에 “이 부분은 내가 혼자서 하기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다보면 부탁을 받은 사람도, 부탁을 해서 승낙을 얻은 사람도 기분 좋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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