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티오피아 역사상 첫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인 로벨 테클레마리암. 크로스컨트리 선수인 그는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서 롤러 스키를 타고 연습한다. 로이터/뉴시스 | ||
▲콰메 은크루마 아쳄퐁(가나·35)=‘설원의 표범(Snow Leopard)’이라는 별명처럼 새하얀 슬로프를 힘차게 내려오는 그의 모습을 보면 한 마리 표범이 떠오른다. 독특한 표범 무늬 스키복을 입고 질주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프리카의 표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나 최초의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인 그는 흑인이라는 점 때문에 이미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알파인 스키선수로 회전 및 대회전에 출전했지만 스스로 메달은커녕 꼴찌를 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사실 그에게는 이번 올림픽 출전이 매우 뜻 깊은 의미를 지닌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 출전하려다가 악천후와 비행기 고장으로 아깝게 예선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꿈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을 벼르고 있었던 그는 그동안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등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왔다.
하지만 코치나 스폰서도 없이 홀로 뛰는 그가 첨단장비와 세계 최고의 실력으로 무장한 유럽 선수들을 뛰어넘기란 벅찬 것이 사실.
스키에 빠지기 전까지 사파리 공원에서 가이드로 일했던 그가 처음 자연설을 구경한 것은 불과 5년 전이었다.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눈 구경도 한번 못했던 그가 처음 스키를 접했던 곳도 인공눈이 쌓인 실내 스키장이었다. 영국의 한 실내스키장에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스키에 재미를 붙인 그는 점차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꿈까지 꾸게 됐다.
코치 겸 스폰서, 그리고 선수까지 1인 3역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는 훈련 비용을 벌기 위해서 여름에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겨울에는 이탈리아에서 훈련에 몰두해왔다.
사실 그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다. 앞으로 가나에서 스키 꿈나무들을 육성하는 한편 가나 최초로 인공 스키장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진짜 목표다. 얼마 전 가나 스키협회를 창설한 그는“아이들에게 잔디 스키를 가르치거나 생선 냉동고에 들어가서 추위가 뭔지를 가르쳐주는 등 후진 양성에 힘 쏟고 있다”라고 말한다.
▲로벨 테클레마리암(에티오피아·35)=크로스컨트리 선수인 그는 이번 대회에 코치나 선수단 없이 혈혈단신으로 출전했다. 에티오피아 역사상 최초의 동계올림픽 선수인 그는 이미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도 참가했던 경력이 있다. 당시 성적은 99명 중 84위인 최하위권이었다.
연평균 기온이 9~28도인 눈이 내리지 않는 아디스아바바에서 스키 연습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그의 연습방법은 롤러 스키를 이용해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가끔 형편이 나아지면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9세 때 뉴욕으로 이민을 갔던 그가 스키에 빠진 것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했던 케냐 최초의 흑인 스키선수인 필립 보이트 때문이었다. TV 화면을 통해 흑인 선수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그는 이때부터 스키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스키 장학생으로 뉴햄프셔대에 진학했던 그는 마침내 토리노 올림픽에 출전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현재 고향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 스키협회를 창설하는 등 언젠가 에티오피아가 동계스포츠 강국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 (왼쪽부터)콰메 은쿠르마 아쳄퐁, 이란의 알파인 스키선수 마르얀 칼호르. 자메이카의 스키크로스 선수인 에롤 케르. 로이터/뉴시스 | ||
알파인 스키선수인 그에게 이번 밴쿠버 올림픽은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슈퍼대회전에 출전해 55위를 기록했다.
▲마르얀 칼호르(이란·21)=엄격한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가 스키를 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세계의 쟁쟁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올림픽이라니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뛰어넘고 당당하게 이란 국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칼호르는 중동국가 출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됐다.
알파인 스키선수인 그녀에게 기록을 단축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일은 스키복을 입는 것이었다. 몸에 꼭 맞는 스키복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반대하는 이슬람 율법학자와 신도들 때문이었다. 한 이슬람 율법학자는 “여자들은 스키를 타선 안 된다. 무릎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운동이 아니라 춤을 추는 것 같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주장에 반박하면서 “스키복은 온몸을 감싸기 때문에 살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이슬람 복장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슬로프에서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스키복과 고글, 헬멧을 쓰지만 선수촌에서나 일상생활에서는 히잡을 두르는 등 철저하게 이슬람 규정에 맞는 복장을 하고 다닌다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4세 때부터 스키를 배운 그녀는 11세에 이란 유소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어릴 때부터 남다른 실력을 발휘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보면서 스키선수인 오빠에게 “왜 여자들은 동계올림픽에 나가면 안 되는데?”라고 물었던 그녀는 만일 다음 올림픽에서 여자가 출전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반드시 자신이 첫 번째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현재 이란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인 오빠 밑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그녀의 다음 목표는 2011년 아시안 동계올림픽이다. 물론 조국이 허락한다면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출전하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후베르투스 폰 호엔로헤 왕자(멕시코·51)=이번 올림픽에 ‘왕자’도 출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멕시코 유일의 선수이자 독일왕조의 후손인 그는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멕시코에서 태어난 멕시코 국민이다.
알파인 스키 회전 및 대회전에 참가한 50대의 노장선수인 그에게 스키는 여러 가지 직업 중 하나다. 평소에는 사진작가, 사업가 혹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멕시코스키협회를 창설하는 등 스키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는 그는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멕시코 선수로는 처음으로 출전했으며, 1984년 사라예보, 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 1994년 릴레함메르 등에 계속 출전해왔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멕시코올림픽위원회가 단일 선수 출전을 허락하지 않아 아쉽게 출전하지 못한 바 있다.
메달권과는 먼 데도 이렇게 계속해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국적인 스키 선수들(겨울스포츠가 낯선 나라 출신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서다”라고 말한다.
▲에롤 케르(자메이카·23)=자메이카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이번 대회에 처음 선보인 스키크로스에 출전했다. ‘스키계의 우사인 볼트’라고 불릴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처음에는 미국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됐지만 곧 생각을 바꿔 자메이카 대표로 출전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유는 아버지와 조국인 자메이카를 위해서였다. 4세 때부터 스키를 시작했으며, 데뷔 무대였던 2008년 월드컵에서 12위, 2009년 일본 스키크로스대회에서 10위를 차지하는 등 백인 선수들 못지 않은 실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 (왼쪽부터)샤니 데이비스, 라미네 기예, 보네타 플라워스. AP/연합 | ||
‘블랙 파워’ 겨울 접수 시동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흑인 스키선수는 세네갈의 라미네 기예였다. 현재 세네갈 스키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을 시작으로 1992년 알베르빌,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등 모두 세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다.
흑인선수로서 최초로 메달을 목에 걸었던 것은 미국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데비 토머스였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던 그녀는 흑인 최초의 월드챔피언에까지 오르면서 ‘은반 위의 흑진주’로 불렸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출전해서 화제가 됐던 자메이카 팀은 할리우드 영화 <쿨러닝>의 소재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봅슬레이 썰매가 없어 다른 나라의 썰매를 빌려 탔던 이들은 결국 결승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걸어서 통과할 정도의 형편 없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흑인선수는 미국의 보네타 플라워스였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여성 2인조 봅슬레이 선수로 출전했던 그녀는 질 바켄 선수와 한 조를 이루어서 환상의 경기를 펼쳤다.
반면 개인종목에서 흑인 최초로 금메달을 딴 선수는 미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스타인 샤니 데이비스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1000m와 1500m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주종목인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o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