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용 스커트를 판매하는 일본 온라인 쇼핑몰. | ||
일본 미혼여성의 60%가 스스로 “수컷화된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NEC(일본전기)가 25~35세의 미혼여성 5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
‘수컷화되고 있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는 ‘자주 있다’가 20%, ‘가끔 있다’가 43%였다. 자신보다 남자답지 못한 남성이 주위에 있냐는 질문에는 70%가 ‘있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수컷화되고 있다고 느낀 이유에 대해서는 “재채기를 아저씨처럼 큰 소리로 한다”(30세·인사 어시스턴트), “여자들끼리의 수다가 고통스럽다”(28세·영업)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한 일에 대해 묻자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술을 마신다”가 42%, “동성의 친구에게 ‘남자답다’라는 말을 듣는다”가 41%로 각각 두 명 중 한 명꼴이었다. 또한 “턱에 수염 같은 것이 자랐다”고 대답한 여성도 15%나 있었다.
한편, 여성스러움이 부족한가 묻는 질문에서는 ‘무척 그렇다’가 19%, ‘그렇다고 생각한다’가 50%로, 70%에 가깝게 자신의 여성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일본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남성이 먼저다. 일류대학을 졸업해, 사립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 다나카 씨(가명·30세)는 일주일에 한 번은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며 손톱도 정리하고 있다. 학생들 앞에 서야하는 직업이라 매니큐어는 칠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의 손톱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는 “눈에 잘 띄는 부분은 항상 신경 쓰고 있다. 머리스타일, 수염, 여드름, 코털, 귀속의 털 등 어느 것 하나라도 학생들에게 흠을 잡히면 다음날부터 ‘코털 선생’ 등의 별명이 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칠판에 글을 쓸 때도 손톱정리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 훨씬 좋다. 덕분에 교내에서 손톱 깨끗한 선생님 넘버원으로 뽑히기도 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시대가 변해 네일살롱이나 미용실, 피부관리실에 다니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최근 일본의 젊은 남성들이 전반적으로, 여자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식품 회사 인사부장인 미우라 씨(43)는 “젊은 남성들과 면접이나 상담을 통해 이야기를 해보면 지금의 남성들은 틀림없이 ‘암컷화’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에 젊은 남자사원들과 술자리에 가게 됐다. 그중 양반다리를 하지 않는 사원이 두 명이나 있었다. 여자처럼 다리를 한 쪽으로 모으고 앉아 있는 것이다. 주문하는 술들도 단맛이 나는 칵테일이나 소프트드링크였다”며 “담배도 피지 않고, 취하지도 않았는데 시끄러울 정도로 수다를 떠는 게 꼭 아줌마 같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젊은 남성들 상당수는 연예인 이야기, 만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디 백화점이 쇼핑하기에 쾌적하다든가 어느 카페의 디저트가 맛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또한 백화점 세일 때에는 회사를 쉬고서라도 백화점에 달려간다. 취미는 꽃꽂이다. 얼마 전 일본의 패션거리로 유명한 오모테산도에는 남성전용 스커트 전문점이 오픈했다. 사람들은 도쿄가 아무리 세계적인 패션도시라도 남자들이 스커트를 입을지 의아해 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특정상품은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여성들에게도 ‘수컷화’의 바람이 조용히 불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당당히 에로 소설을 읽는 여성들, 직장의 남자후배들에게 ‘세크하라’(성희롱의 이란 뜻 섹스 하라스먼트를 줄인 일본 신조어)가 섞인 농담을 건네는 오피스 레이디들이 그 예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 중인 한 여성(24)은 미용실보다 직장 근처의 이발소에 가는 편이 즐겁다고 한다. 그녀는 “얼굴에 난 털들을 확실히 면도해 주고, 마사지, 귀청소, 코털 정리까지 해준다. 미용실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대화도 미용실의 젊은 여성 스태프보다 이발소 아저씨와 하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수컷화’에 의해 생기는 문제점도 있다. 앞서 소개한 “턱에 수염이 자랐다”고 대답한 여성들 중 10% 정도가 수염으로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 한다. 32세의 한 직장여성은 인터넷의 한 투고사이트에서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볍게 면도했는데, 점점 그 자라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는 하루에 한 번씩 면도를 하지 않으면 턱 주위가 새까맣게 변한다”고 고백했다. 여성들은 행동양상이나 가치관뿐만 아니라 신체까지 ‘수컷화’되어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일본의 임상미용외과 원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이전보다 책임감은 무거워졌다. 그만큼 커진 스트레스가 여성의 성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직장환경이나 인간관계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된다. 상대적으로 남성호르몬의 수치는 높아져 남성특유의 신체현상인 수염 등이 나타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생리불순 등도 여성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아서 생기는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임상미용외과 원장은 “생활습관의 개선이 필요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도록 방치하지 않는 자기만의 회복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요리 등을 하며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취미를 갖거나, 의식적으로 외모에 신경을 쓰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등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며 “여성호르몬과 비슷한 움직임을 가졌다고 하는 인플라본을 다량 함유한 콩 제품을 섭취하는 것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