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곳은 법적으로 NH농협금융지주다. 하지만 2015년 국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을 만큼 ‘실질적’ 인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기에 농협중앙회의 입김을 무시하기 힘든 구조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장 선임 작업이 연기되면서 농협중앙회 입김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실제로 이미 구성된 임추위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추위는 이미 11월 20일 자회사 4곳(농협은행, 생명, 손보, 캐피탈)의 대표이사 선임 작업에 돌입했고, 27일 후보를 압축해 확정 지을 예정이었지만 돌연 일정이 연기됐다. 이어 지난 4일 다시 임추위를 열 예정이었지만 이마저도 갑작스럽게 일정이 취소되는 등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농협금융 측은 “은행을 포함해 다수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농협은행장 선임 과정에 변수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이 주목하는 쪽은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소유한 농협중앙회를 이끄는 김병원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이미 지난해 10월 중앙회 계열사 임원에게 일괄사표를 받으면서 농협금융 계열사 CEO의 사표도 함께 받으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금융권은 농협금융 계열사 수장들의 진퇴를 실제로는 법적으로 권한이 없는 중앙회가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받아들였다.
김병원 회장의 ‘입김’은 이미 12월 초 진행된 농협은행 임원 인사에서 실루엣을 드러냈다. 농협금융은 지난 6일 농협은행 임원 인사를 단행했는데, 이창호 농협중앙회 부산지역본부장 등 부행장 승진자 5명 중 3명이 농협중앙회 출신이다. 김용환 회장은 “이번 인사는 능력과 전문성, 성과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농협중앙회의 영향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차기 행장 후보군에 농협중앙회 지역본부장들이 가세했다는 점도 농협중앙회와의 관련성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전국에 단위조합을 가진 농협의 성격상 인사에서 지역 안배는 늘 중요하게 고려돼 왔다. 따라서 농협은행장 선임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차기 농협은행장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이대훈 전 농협상호금융 대표다. 이 전 대표는 농협대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이후 지역농협, 농협은행, 농협상호금융 등을 거쳐 33년째 농협에 몸담고 있는 정통 ‘농협맨’이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차기 농협은행장 유력 후보로 김병원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거론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 전 대표가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측 인사로 분류된다는 점도 유력한 차기 농협은행장 후보라는 평가에 무게감을 싣는다. 이 전 대표가 농협은행 서울영업본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상무급을 거치지 않고 곧장 농협상호금융 대표로 승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병원 회장의 지원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전 대표는 농협상호금융 대표이사직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둔 상태에서 지난 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농협중앙회가 공직 유관기관에 속하기 때문에 농협은행장이 되기 위해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포석이다. 회추위 일정이 연기된 것도 이 전 대표의 심사 일정을 감안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또 다른 유력 후보로는 고태순 NH농협캐피탈 대표가 꼽힌다. 고 대표는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으로, 역시 김 회장 측 인사로 분류된다. 1979년 농협대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했으며 농협은행 남대문기업금융지점 지점장, 서울영업부 부장, 전남영업본부 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5년 NH농협캐피탈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을 지냈고, 올해 1월에는 대표이사에 올랐다.
오병관 농협금융 부사장, 박규희 농협은행 부행장 등도 차기 농협은행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오 부사장은 충남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이후 농협중앙회 월평동지점장, 금융구조개편부장, 기획실장 등을 역임한 후 농협금융에서 기획조정부장, 재무관리본부장 등을 지냈다. 그는 농협 내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꼽힌다. 지금도 농협금융의 경영기획업무를 맡고 있다. 특히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 두 곳에서 모두 일한 경험이 있어 농협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조직원들 사이에서 덕장(德將)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박규희 부행장은 오병환 농협금융 부사장과 농협중앙회 입사 동기며, 이대훈 전 대표와는 농협대학교 동문이다. 농협중앙회 구미중앙지점 지점장, 농협중앙회 투자금융부장, 농협은행 기업고객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기업금융과 투자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농협은행은 12월 마지막 주쯤 차기 농협은행장 최종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 전 대표의 공직자윤리심사위원 심사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면서 “연말 전에 새로운 농협은행장이 취임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