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정우는 웬만해선 쉬지 않는다. 지난 1년 6개월도 영화 작업으로 꽉 채웠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가 20일 개봉한 <신과함께>와 일주일 뒤인 27일 공개되는 <1987>이다. 공교롭게도 두 편은 같은 시기 개봉하면서 주연배우인 그의 어깨는 더 무겁기만 하다. 아무리 ‘티켓파워’를 과시하는 톱스타라 해도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을, 그것도 영화계 빅시즌인 12월에 동시에 공개하기는 이례적이다.
하정우는 “개인적으로만 본다면 핫시즌에 영화를 내놓을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 행운”이라고 했지만 “혹시 나를 지겨워하지 않을까, 과열경쟁으로 영화들이 저평가되지 않을까 고민”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하정우는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춘 1년 6개월 동안 네 편의 영화를 찍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정우가 참여한 두 영화는 다행히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가 맡은 인물도 다르다. 개봉 첫 날부터 40만 관객을 모은 <신과함께>에서는 저승의 세계에서 재판을 이끄는 차사로 나선다. 엄혹한 1980년대를 배경 삼은 <1987>에서는 양심을 지킨 검사로 관객을 찾아간다. 하정우는 “둘 다 소신이 강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신과함께>에서는 굉장히 절제했다. 김용화 감독님으로부터 나서지 말라는 주문도 받았다. 반면 <1987>은 다들 심각하고 긴장해 있었고, 나 혼자서 마치 생태교란종처럼 풀어져 있다. 마음껏 연기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먹는 연기’는 하정우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다. 이번 두 영화에서도 그의 먹는 모습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두 편에서 모두 하정우는 뭔가를 먹으면서 처음 등장한다. “일종의 보너스트랙 아니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미지의 세계, 극적인 상황을 영화로 경험하는 일은 하정우를 자극하는 에너지다. 특히 <신과함께>의 경험은 특별했다.
“지옥 촬영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미션 클리어’의 기분을 맛봤다. 아무래도 그린매트 앞에서 연기하는 일은 힘들었다. 허공에 삽질하는 느낌이랄까? 민망하다. 하하! 그런데 앞으론 배우가 그린매트에서 연기할 일이 더 많아질 테니 우리가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두 영화를 마치고 하정우는 11월까지 또 다른 작품 <PMC>를 찍었다. 내년 여름 개봉하는 <신과함께> 2편까지 더하면 네 편을 쉼 없이 완성한 셈이다. “디톡스가 필요했다”는 그는 이달 초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하와이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신과함께>를 함께한 동료 주지훈과 동행했다.
“12월 1일부터 열흘간 하와이에서 지냈다. 하루에 10시간씩, 250km를 걸었다. 디톡스엔 역시 걷기다. 하하! 하와이에 가지 못할 땐 한강 둔치로 간다. 걷다보면 뭔가 씻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주 맑아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 조금 나은 결정과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정우는 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 <577프로젝트>를 계기로 걷기에 빠졌다. 앞서 한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서울에서 땅 끝까지 걷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실제 수상하면서 약속을 지키려고 서울부터 해남까지 3주간 걸었다. 공효진, 김성균 등 동료 배우들이 함께했고 그 과정을 담은 영화가 <577프로젝트>이다.
“해남까지 걸으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뭔가 엄청난 감동과 깨달음이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더라. 집에 돌아가 며칠 지나고부터 소위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일 3주 동안 걸으며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는데 나는 그걸 미처 감지하지 못한 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결정을 할 때 이전과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그때 걷기에 대한 어마어마한 위력을 알게 됐다. 이젠 틈만 나면 걷는다.”
하정우는 지난해에서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정우성, 이정재와 영화 제작도 본격 시작했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정우는 정우성, 이정재와 지난해부터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다. 한국영화를 대표할 만한 빅3 배우가 한 곳에 모여 더욱 주목받는다.
“(정)우성 형과 (이)정재 형의 부지런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데뷔하고 지금까지,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겠지만 건강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이 굉장히 존경스럽다. 영화 <암살>을 찍으면서 정재 형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주 건강하고 건전한 형들이라는 걸 알았다. 또 나처럼 심심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소소하다는 단어가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셋 다 성향이 워낙 달라 오히려 잘 맞는다고 했다. 하정우는 정우성을 “아버지”에, 이정재를 “어머니”에 비유했다.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댈 때 좀 더 확률이 높은 결정을 할 수 있다. 다들 대척점에 서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대척점에서 얘기하면 생각지 못한 것을 진단하고 내다볼 수 있는 것 같다.”
세 명은 영화 제작도 본격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은 ‘일 벌이기 좋아하는’ 하정우가 기획하고, 정우성이 제작 전반을 책임진 저예산영화 <트레이드러브>다. 이어 <PMC>를 합작했고 또 다른 영화 <남산>도 제작한다.
할 일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더 많은 하정우도 곧 마흔 살. 함께하는 ‘두 형님’이 그렇듯 결혼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결혼정보 업체에 등록할까 생각 중”이라는 그에게 진지한 답변을 요청했다.
“이제 마흔 살인데, 제니퍼 로렌스가 좋다. 키우는 강아지를 볼 때 ‘저게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도 하고. 타이밍이 있겠지. 아! 얼마 전 타로 점을 봤다. <PMC> 야외 촬영장 근처 작은 가게의 주인아주머니가 타로를 보더라. 애정운 딱 하나만 봤다.”
어떤 대답을 들었을까.
“내가 엄청난 나무를 짊어지고 가는 카드가 나왔다. 그 카드 한 구석에 작은 집이 있고. 지금 하는 일이 많아서 결혼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집이 나왔다는 건 어떤 고지가 보이는 거라고. 내년에 좋은 인연을 만나, 2~3년 뒤엔 결혼할 운이 있다더라. 하하!”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