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시절 치즈케이크를 먹고 있는 빌 클린턴. 한때 그는 악명 높은 식습관으로 유명했다. 로이터/뉴시스 | ||
우선 고지방 및 고콜레스테롤 음식을 즐겨 먹는 클린턴의 식습관은 워싱턴 정가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특히 야채는 거의 먹지 않으면서 고기만 많이 먹거나 매끼 식사마다 달콤한 디저트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등 심장혈관에 결코 좋지 않은 식습관을 갖고 있다. 또한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대식가인 까닭에 자신 앞에 놓인 접시는 깨끗이 비워야 직성이 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악관에서도 수시로 도넛이나 햄버거 등을 사먹으러 나가곤 했던 그는 이미 아칸소주 주지사 시절부터 기름기 많은 음식을 즐겼다. 주지사 관저가 있던 리틀록에서 그가 가장 즐겨 찾던 식당들은 치즈버거, 시나몬 롤, 파이, 바비큐, 타코, 도넛, 스테이크 등 온통 기름진 음식을 파는 곳들이었다. 특히 치즈가 진하게 녹아있는 멕시코 요리를 좋아해 외출만 했다 하면 단골 식당에 들러서 치킨 엔칠라다, 텍스맥스, 칠리 콘 퀘소 등을 포장해서 사오곤 했다.
클린턴이 즐겨 찾았던 ‘심스 바비큐’ 레스토랑의 사장은 “클린턴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러서 돼지 바비큐 요리를 먹었다. 여기에 코울슬로, 구운 콩, 감자 샐러드, 고구마 파이 등도 곁들여 먹었는데 올 때마다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고 말했다.
또한 주지사 시절 일주일에 1~2회씩 조깅을 했던 클린턴은 조깅을 마친 후에는 꼭 ‘커뮤니티 베이커리’에 들러 커피 한 잔과 베이글이나 시나몬 롤 혹은 달콤한 도넛을 사가지고 가곤 했다. 계피가루가 얹어진 달콤한 빵인 시나몬 롤은 클린턴이 특히 좋아했던 간식으로 보통 타이어 휠캡처럼 커다란 크기의 빵에 마가린을 두껍게 발라 통째로 먹곤 했다.
반면 술은 잘 마시지 않았던 클린턴은 주로 무알코올 독일 맥주인 ‘클라우스탈러’를 즐겨 마셨으며, 술보다는 탄산음료나 아이스티를 마셨다.
남편의 이런 식습관을 아내인 힐러리가 좋아할 리는 만무했다. 힐러리는 1992년 대통령 당선인 시절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점은 남편이 먹는 걸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점은 남편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힐러리는 식단을 조절하기 위해서 아칸소 주지사 시절 가급적 외식을 자제하고 클린턴에게 집에서 식사를 하도록 종용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를 향한 클린턴의 고집은 막을 수 없었다. 클린턴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종종 힐러리 몰래 주지사 관저로 패스트푸드를 배달시켰다.
당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서 약물 치료를 시작했던 클린턴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자 곧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하지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결국 심장동맥이 막히는 다소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고, 급기야 인공 관상동맥을 이식하는 바이패스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상태가 좋았던 클린턴은 병상에 누워서 당시 대선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에게 90분가량 전화통화로 격려와 조언을 하는 등 빠른 속도로 원기를 회복했다.
수술 후 철저한 식이요법이 시작됐던 것은 물론이다. 저지방, 저염분 위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약물치료도 병행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패스트푸드도 거의 끊다시피 했다. 가끔 옛날의 습관을 버리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할 만한 식습관을 유지했다. 한 측근은 “예전보다는 분명히 건강하게 먹긴 하지만 가끔은 생선요리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등 예전의 습관이 나타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재수술이 식습관보다는 과도한 스트레스 탓이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몇 년간 무리한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심장에 무리가 왔다는 것이다. ABC 방송기자이자 클린턴 시절 백악관 홍보담당을 지냈던 조지 스테파노폴루스는 “클린턴은 지난 20년 동안 매일 20시간씩 일해 온 워커홀릭”이라고 말했다.
2008년 힐러리의 민주당 경선을 지척에서 도우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소 무리가 따랐던 데다 ‘클린턴 재단’을 설립한 후부터는 줄곧 재단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해왔다. 최근에는 아이티 강진 이후 유엔 특사로 임명되어 구호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여느 때보다 빡빡하고 강도 높은 스케줄로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랐다. 가슴의 통증을 호소한 날도 하루 일정으로 아이티를 다녀온 직후였다. 클린턴의 보좌관은 그가 근래 들어 늘 피로감에 젖어 있었으며, 며칠째 감기도 앓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심장전문의이자 클린턴의 수술을 집도한 뉴욕-프레스비테리언 병원의 앨런 슈워츠 박사는 “클린턴의 생활습관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린턴은 그동안 의사의 지시를 잘 따라왔다. 식이요법이나 운동도 꾸준히 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번 재수술은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즉 클린턴이 재수술을 받은 건 바이패스 수술을 받은 환자들 사이에서 간혹 일어나는 현상으로 클린턴 역시 2004년 수술했던 네 개의 바이패스 중 하나가 좁아져서 다시 혈관을 넓히는 수술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슈워츠 박사는 “보통 첫 번째 수술 후 5~6년 정도가 지나면 나타나는 증상으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증명하듯 클린턴은 수술 후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미국인들은 쉽게 염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 번 재발했는데 앞으로 또 재발하지 말란 법 있겠냐는 것이다.
아직 60대 초반의 창창한 나이란 점을 생각할 때 클린턴의 이런 잦은 병원행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여전히 활기차고 쌩쌩한 동갑내기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비교해볼 때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