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본사 사옥. 박정훈 기자
차량용 축전지를 생산하는 한국타이어그룹의 계열사 아트라스BX는 지난해 3월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유는 소액주주들이 반발이 거셌기 때문.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기업은 대주주와 자사주 지분을 합쳐 95%를 확보하면 상장폐지를 신청할 수 있다. 이에 아트라스BX는 회사 돈을 투입해 지난해 3월과 5월 두 차례 공개매수를 통해 자사주 매집에 나섰지만 총 58.43%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최대주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 31.13%와 합쳐도 총 89.56%로 95%에 미치지 못했다.
소액주주들은 당시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5만 원이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저가라고 지적하며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아트라스BX의 상장폐지 길이 열렸다. 그 실마리는 한국거래소에서 제공했다. 지난 6월 14일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가 올린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일부개정 승인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소액주주의 범위를 규정한 제28조 11항에서 5호 ‘자기주식을 취득한 당해 법인’이 삭제됐다. 이에 따라 자사주는 더 이상 소액주주에 포함되지 않게 됐다. 시행시기는 1년간 유예기간을 갖고 오는 2019년(12월 상장법인 기준)부터다.
상폐 가능 근거는 주식분산 요건이다. 규정상 소액주주의 보유 주식수가 유동 주식수의 20% 미만이면 회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또한 1년 안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업은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아트라스BX의 경우 소액주주 10.4%에 자사주 58.4%를 합쳐 68.8%로 지분분산 요건 기준 20%를 상회했다. 하지만 바뀐 규정을 적용하면 자사주가 빠지면서 소액주주 비율이 10.4%로 대폭 축소된다.
따라서 현 주식 지분 구도가 유지된다면 아트라스BX는 오는 2019년 4월 관리종목으로 지정, 오는 2020년 4월 상장폐지가 예상된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굳이 95%의 지분을 확보하지 않고도 현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상장폐지가 되는 것이다.
특히 아트라스BX가 ‘자진 상폐’를 선언한 마당에 관리종목으로까지 지정되면 당연히 주식가치는 더 떨어진다. 뒤늦게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매각하려 해도 기존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5만 원 수준이나, 오히려 더 싼 가격에 정리매매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밸류파트너스운용 등 주주들은 거래소가 왜 소액주주 범위에 자사주를 포함하지 않는 규정 개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트라스BX를 위한 ‘맞춤형’ 개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거래소와 일부 언론 등은 이번 규정 변경으로 아트라스BX뿐만 아니라 에이스침대,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기업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맞춤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밸류파트너스운용 관계자는 “에이스침대와 이베스트투자증권의 경우 상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반면 아트라스는 상장폐지를 원하는 기업으로, 이번 규정 변경으로 대주주는 큰 이익을, 소액주주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밸류파트너스운용은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약 670억 원에서 1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관계자는 “자사주는 회사 자금으로 매입한 주식인 만큼 대주주의 것도, 소액주주의 것도 아닌 공유재산”이라며 “이를 대주주의 것으로 해석하는 건 투자자의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거래소의 역할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액주주 강 아무개 씨는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금융위원회에 이번 거래소의 규정 개정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8월 “이번 규정 개정은 특정 주주의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서도 “강 씨 주장과 같이 규정 개정으로 자진 상장폐지 추진 기업의 소액주주가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다. 개정에 따른 새로운 소액주주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정의 효력발생 유예기간(2019년 3월) 내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니 양해해 달라”고 답변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규정 개정으로 아트라스BX의 경우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어느 정도 인지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규정을 개정한 한국거래소는 소액주주들의 민원제기가 많이 있었지만,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아트라스BX의 상황은 거래소의 규정 개정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거래소는 기업의 경영에 개입할 수 없다. 회사와 주주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규정 개정안이 의결되면 보통은 바로 시행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은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아트라스BX의 이번 임시 주주총회도 서로간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아트라스BX가 지난해부터 자진 상폐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한국타이어그룹의 승계, 인수합병 등 향후 경영전략과 맞물려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현재 조양래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회장 이후 오너 3세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총괄부회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형제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다.
아트라스BX의 대주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조양래 회장이 23.59%,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19.32%, 차남 조현범 사장이 19.31%, 장녀 조희경 씨 0.83%, 차녀 조희원 씨 10.82% 등 오너 일가의 지분만 73.92%에 달한다.
이에 대주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아트라스BX 상폐 후 합병을 통해 현금을 확보, 신사업을 확장해 경영권 승계 구도를 다지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사위이기도 하다.
한국타이어그룹 관계자는 “아트라스BX의 상장폐지는 계속 추진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진행된 두 차례 공개매수 이후 따로 준비하거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며 “또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와의 합병 등 상장폐지 이후 계획 역시 따로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아트라스BX의 임시주주총회가 오는 27일 개최된다. 이번 임시주총은 사 측이 소액주주들의 소집 요구에 응하지 않아, 법정 분쟁까지 갈 위기 속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날 주총에는 1주당 액면가격 1000원을 100원으로 주식분할을 위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과 자사주 소각 후 코스닥 상장폐지 및 유가증권시장(코스피)로 상장하자는 의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 두 안건은 모두 아트라스BX 소액주주들의 제안으로 상정됐다. 이에 따라 이번 임시주총에서 어떤 논의가 오가고,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