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근접 취재를 나갈 때마다 느낀 것은 문 대통령의 소탈함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손을 먼저 내밀고 미소를 건네주는가 하면, 사진 촬영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준다. 과거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런 행보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안감도 없지는 않다. 최저임금 인상분 정부 보전 등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재정 지출 시도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처를 둘러싼 논란은 이 정부에 대한 걱정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강릉 간 운행될 KTX 경강선 열차 내에서 ‘헬로우 평창’ 이벤트 당첨자들과 오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국민들에게 다가간 문재인 정부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취임사는 헛말이 아니었다. 그는 ‘불통 대통령’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시민들과 어울려 ‘셀카’ 사진을 찍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가서는 희생자 유족을 감싸 안기도 했다.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8월 16일에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직접 위로했다. 임기 초반 문 대통령의 행보는 글자 그대로 국민들과의 파격적인 소통이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를 두고 “국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왜 필요한지, 국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방향 제시가 굉장히 잘 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권위주의가 혁파돼서 친근한 우리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은 지난 정부, 과거 정부하고 가장 크게 변화된 점이 아닐까 한다”고 평가했다
근접 취재를 나갔을 때도 문 대통령의 행보는 한결 같았다. 그는 초등학교에 가면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얘기하고 어린이들과 대화할 때나 사진을 찍을 때는 과감하게 쪼그려 앉았다. 건성으로 악수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진 피해를 본 포항을 방문, 피해 주민들의 임시 거처였던 흥해 실내체육관에 들렀을 때 이강덕 포항시장의 상황 브리핑을 듣기 위해 그는 체육관 바닥에 아무렇게나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피해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며 여러 주민들의 하소연을 긴 시간 동안 듣기도 했다.
# 나라를 나라답게, 적폐 청산 드라이브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는 권력의 사유화와 부정부패 등 한국사회에 만연한 모순과 부조리를 없애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 연장성에서 나온 것이 적폐 청산이다. 파격적이라 불리는 인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드라이브의 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주도했던 서훈 전 국정원 차장을 내정하면서 국정농단의 온상으로 전락한 국정원부터 전면 개혁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다음날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진보 성향이 뚜렷한 법학자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취임 다음날 임명한 것이다. 개혁인사는 이어졌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에는 재벌 저격수로 유명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임명했다. 개혁인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임명을 통해 정점에 올랐다. 윤 지검장 인사 발표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와’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파격적이라는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맡았다가 좌천된 윤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 것은 적폐청산에 대한 이 정부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줬다.
‘놀랄 만한 인사’ 이후 각 기관의 쇄신방안이 잇따라 나왔다. 국가정보원은 국내 정치와의 절연을 선언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와 적폐청산TF는 국정원의 15대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 민간인까지 동원된 ‘사이버 외곽팀’이 조직적으로 운영됐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국정원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도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고리 3인방’ 중 구속을 피했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을 국정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정치공작의 몸통으로 알려진 추명호 국정원 국장도 구속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불공정 뿌리 뽑기에도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이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필요하면 전체 공공기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채용비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라”며 채용비리 근절 의지를 직접 밝혔다.
# 먹고 사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 있어서 가장 운이 좋은 점은 ‘경제 여건’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3분기 1.4% 성장하는 깜짝 실적을 냈다. 이는 2분기(0.6%)의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취임 첫해 당초 목표했던 3% 성장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4분기 성장률이 ‘제로(0)’에 그친다 하더라도 연간 성장률은 3.1%가 되고 -0.5%로 후퇴해도 연간 성장률 3.0%가 가능하다.
깜짝 성장은 2011년 1분기(6.4%) 이후 6년 반 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한 수출 덕분이었다. 세계 경기의 완연한 회복세가 수출 경기를 좋게 했고, 우리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반부터 ‘뛰는 집값 잡기’를 최우선적 경제 목표로 삼아왔다. 문 대통령은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각료 및 청와대 참모들에게 “집값을 잡는다면 한턱 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주택 가격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100일도 안 돼 두 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나온 6·19 대책은 서울과 경기·부산 일부 지역, 세종 등 청약조정지역을 대상으로 대출규제 등을 강화했다. 대책 발표에도 불구, 부동산 시장 안정이 잘 되지 않자 8·2 대책을 또 내놨다.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재개발·재건축 분양권 거래를 차단하는 한편, 다주택자의 대출에 제한을 가했다. 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8월 서울의 아파트 계약 건수는 모두 5136건으로 발표 직전인 7월(1만 4978건)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좋은 일자리 창출도 우선적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매일 점검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하지만 일자리 만들기 정책이 일자리 늘리기로 직결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15∼29세 청년실업률이 같은 달 기준으로 외환위기 여파가 있었던 199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는 등 일자리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 인사 문제 최대 오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고위 공직자 인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가장 큰 오점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모두 7명.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는 국회 표결결과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으며, 안경환 조대엽 박성진 전 장관 후보자들은 강제결혼·음주운전·종교관 문제 등으로 자진 사퇴했다.
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주식투자 논란, 박기영 전 과기혁신본부장은 황우석 사태 연루 논란,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신변 문제 등으로 낙마했다. 가장 늦게 인선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역시 낙마는 겨우 면했지만 재산 증여 논란 등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출범 6개월이 될 때까지 중소벤처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해 완전한 내각을 꾸리지 못할 정도로 내각 인선에 어려움을 겪자 “청와대의 인사·민정 라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나왔다. 최저임금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 대비 16.4%나 올린 7530원으로 확정 지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영세 사업자의 상황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반론도 거셌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 사업자를 상대로 일자리 안정자금을 한시적으로 지원할 방침이지만 민간업체의 임금을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논란을 키웠다. 서민들은 물론, 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전기값 인상 등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다 국회 논의를 배제한 채 법적인 근거가 없는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원전 중단 여부를 비전문가들이 결정하도록 했다는 야권의 비판도 쏟아졌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도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여당에서조차 걱정이 나왔다.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어 주먹구구식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경제 환경에서는 운이 좋았지만 외교·안보 환경은 최악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외교·안보 환경에서 출범하고 첫 해를 보냈다. 북한은 핵 개발을 가속화하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열을 올렸다. 중국은 우리의 사드 배치에 대해 ‘적대적 위협’이라며 강하게 압박해왔다. 동맹국인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통상 압박을 강화하면서 예전 같지 않은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펴면서도 대화 유도 등 대북 유화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기조를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때문에 미국과 엇박자를 나타낸다는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켰고 최근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해 또다시 분란을 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12월 19일 평창동계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보수 정당은 물론,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까지 나서 강하게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21일 한미군사훈련 연기 문제 검토에 대해 “외교 아마추어리즘이다. 연기가 확정되지도 않았고 논의 중인 사안을 언론을 통해 먼저 밝힌 것은 외교적인 결례를 넘어 절차적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