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티 대지진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칠레에서 규모 8.8의 강진이 발생하자 전세계가 절망에 휩싸였다. 로이터/뉴시스 | ||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최근호에서 두 명의 미국 기자들의 색다른 주장을 소개했다. <누가 살아남는가?>의 벤 셰어우드와 <서바이브>의 아만다 리플리는 자신들의 책에서 “대재앙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다시 말해서 우연이나 운명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대재앙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73층에 있었던 엘리아 체데노는 순간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후 위험을 느낀 동료들이 “어서 건물에서 나가야 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비상구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책상으로 달려가서는 소지품과 평소 좋아하던 범죄소설 한 권을 챙긴 후에야 뛰어 나갔다. 다행히 그녀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히 살아 나왔다.
놀라운 것은 당시 그녀처럼 행동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아비규환 속에서도 자신의 컴퓨터를 들고 나오는 데 성공한 사람은 무려 1000명가량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탈출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평균 6분이 걸렸다는 것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이처럼 여유(?)를 부린다니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실. 하지만 아만다 리플리는 이런 태도, 즉 ‘수동적인 태도’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비명을 지르거나 호들갑을 떠는 재난 영화와 달리 실제 상황에서는 오히려 느긋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비슷한 다른 예를 보자. 1994년 9월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여객선 ‘에스토니아’호가 강한 바람과 파도로 인해 핀란드 인근 바다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망자 수는 전체 탑승객 1178명 가운데 무려 852명이었다. 불행히도 강풍과 파도로 인해 구조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고, 구조작업이 시작된 지 10시간 후에야 전체 인원의 27.6%인 326명이 구조됐다.
그런데 생존자였던 폴 바니의 말에 따르면 당시 참사 현장에서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니는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곧 영화 속에서 본 것처럼 울부짖거나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로 배 안이 아수라장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남자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들거나 구명보트에 먼저 올라타기 위해서 주먹다짐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니는 “모두들 누군가 나서서 자신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재난 발생시 이런 ‘수동적인 태도’는 바람직한 걸까. 이에 대해 리플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고 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이기 때문에 노력만 하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포에 빠져 우왕좌왕하다가 화를 당하기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제때 행동을 하지 않아 화를 당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리플리는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불행은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가령 ‘에스토니아’호의 승객들이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구조요원이 던져주는 구명조끼를 허겁지겁 낚아채지 않았던 이유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호들갑을 떨면 겁쟁이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머리속으로 비상사태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람들이 수동적이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기 시작하는 건 위험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눈으로 보거나 느끼는 순간부터이며, 그 전까지는 ‘설마’하는 마음에 바로 행동을 취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1977년 신시내티의 대형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했던 화재 사건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당시 클럽 안에는 1200명 가량의 손님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화재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사람은 웨이터 한 명뿐이었다. 그가 즉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바깥으로 즉시 대피하라”고 소리쳤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직원들 역시 즉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결국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165명의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질식사하거나 불에 타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와 관련 심리학자인 존 리치는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분류한다. 첫째, 처음부터 아예 가망이 없는 사람들(가령 세계무역센터의 꼭대기 층이나 에스토니아호 선박의 가장 아래칸에 있던 사람들), 둘째 확실하게 구출될 수 있는 사람들, 셋째 올바르게 행동했으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도 아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 등이다. 마지막 세 번째 경우의 사람들이 바로 수동적인 자세로 화를 당한 경우에 속한다.
이밖에도 리치는 참사가 발생할 경우 보통 10%만이 이성적으로 사태를 침착하게 파악하며, 80%는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워하고, 나머지 10%는 당황해서 실수를 저지른다고 말한다.
한편 리플리는 낯선 상황에 처하면 당황해서 발이 떨어지지 않고 얼어붙는 것 역시 화를 자초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신 평소에도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재난이 발생할 경우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또한 리플리는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고, 신경질적인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가령 미국의 경찰관인 키스 넬슨 보더스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근무 도중에 10차례 총을 맞아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운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긍정적인 자세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노력하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곤 한다. “나는 지금 머리에 총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앞으로는 뜻밖에 벌어진 대참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다음의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것’, ‘나는 아니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은 버릴 것’,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가질 것’.
상황별 대피 요령
군중 속에선 버티지 말고 몸을 맡겨라
▲ 화재 발생했을 때
불을 끄기 위해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즉시 바깥으로 대피한다.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는 대부분 연기로 인한 질식사다. 연기를 마시지 않도록 입을 막고 가능한 바닥을 향해 몸을 낮추면서 비상구로 향한다. 화재 발생 후 약 5~8분이 지나면 폭발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므로 신속하게 빠져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 물속에 빠졌을 때
물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추위로 인한 쇼크다. 또한 호흡이 가빠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호흡을 진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숨을 너무 크게 들이마시면 자칫 물이 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물에 빠진 후 10분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직 물속에서 헤엄을 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이므로 가능한 10분 안에 탈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음에 빠졌을 때에는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얼음 위에 팔을 올려놓고 버티도록 한다. 보통 물에 빠진 후 40~60분이 지나면 동사하게 되므로 그 전에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군중에 갇혔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서로 밀고 밀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최선의 행동 요령은 가능한 힘으로 사람을 밀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가능한한 사람들 틈에서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좋다. 사람들에게 깔려서 죽는 것보다는 폐가 눌려서 숨을 못 쉬어서 죽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30초가 지나면 실신을 하게 되고, 6분이 지나면 뇌사 상태에 빠진다.
▲ 비행기사고 발생 땐
비행기 안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비행기 동체의 알루미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90초가량이다. 때문에 늦어도 90초가 지나기 전에 바깥으로 대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물론 가장 좋은 좌석은 출입문이나 비상문에서 가까운 곳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비행기에 탑승하면 무조건 자신의 좌석이 비상구에서 몇 번째 줄인지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시커먼 연기 속에서도 쉽게 비상구를 찾기 위해서다. 앞쪽이 안전한지 혹은 뒤쪽이 안전한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가 쪽보다는 복도 쪽 좌석이 더 안전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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