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의 스킨헤드. | ||
회원들의 나이는 평균 12~25세로 보통 10대 청소년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어릴수록 설득하기 쉽고, 또 명령에 잘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규모로 집합해서 시위를 벌이는 날은 1년에 크게 세 번 정도다. 히틀러 생일인 4월 20일과 노동절인 5월 1일, 그리고 전승기념일인 5월 9일 이다. 이날을 전후해서는 유럽 각국 정부에 비상이 걸리며, 외국 대사관에는 “외국인들은 이 땅을 떠나라!”고 협박하는 이메일이 빗발친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날만큼은 외출을 삼가고 학생들은 등교를 하지 않으며, 심지어 유학생이 많은 학교의 경우에는 휴교까지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킨헤드란 명칭의 유래는 본래 인종혐오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스킨헤드는 1960년대 영국의 공장과 항구에서 일하는 젊은 영국인 노동자들과 자메이카 노동자들이 주로 하고 다니던 패션이나 스타일 등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공장 기계에 머리카락이 끼지 않고 머리에 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으며, 힘든 노동을 견디기 위해 청바지를 입거나 군화나 징 박힌 구두를 신고 다녔다. 이들의 이런 패션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런 이들의 문화를 가리켜 스킨헤드라고 불렀다.
당시 영국인 노동자들과 자메이카 노동자들은 함께 클럽을 찾아 레게나 소울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는 등 서로 잘 어울렸으며, 서로 간에 인종차별이나 정치적인 색채는 전혀 없었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영국에는 인도나 파키스탄 지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됐으며, 이로 인해 영국인들의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실직으로 고통받는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를 파고든 것이 바로 네오나치즘이었다. 모든 책임이 외국인에 있다고 선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젊은 노동자들에게 백인우월주의를 주입시켰으며,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인종혐오주의에 실어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점차 스킨헤드와 극우주의는 동일시됐으며, 오늘날 본 뜻과는 다르게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명칭이 됐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