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어떤 존재일까. 초기 변호사 시절 대법관 등 전관출신들이 훌륭해 보였다. 그러다 전직 대통령과 그들에게 뇌물을 준 재벌총수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그 누구라도 기소가 되어 법정에 서면 피고인이라 불리는 게 법이다. 고위직의 전관 변호사는 법정에서 “제가 감히 어찌 대통령 각하를 피고인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라며 울먹였다. 울먹이는 그의 사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얼음같이 차기로 유명한 검사였다.
휴정시간이었다. 모 재벌회장이 소변기 앞에서 다리 하나를 건들거리면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 옆에서 차렷 자세로 서서 “네, 회장님”하고 군기가 바짝 든 변호사가 있었다. 사법부의 고위직에 있던 분이었다. 그들은 권력과 돈에 잘 길들여진 개와 같았다. 한일 변호사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일본 변호사 단체의 대표인 우츠노미야 변호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사채업을 하는 야쿠자들과 맞서온 변호사였다. 야쿠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서민에게 씌워진 사채의 굴레를 벗겨온 인물이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탈세나 편법상속을 연구하는 변호사들을 저는 법비(法匪)라고 부릅니다. 도둑놈이란 소리죠. 저는 일본 전체의 변호사 대표로 대부분의 시간을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일본의회로 가는 길거리에서 투쟁으로 보냈어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변호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역 노숙자 합숙소나 탑골공원 뒷골목에 나타나는 젊은 ‘거리의 변호사’들이다. 그들은 길바닥에서 노숙자들과 눈높이를 맞춘 채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뒷골목에서 ‘거리의 변호사’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거리로 나섰다. 그는 선배격인 내게 이렇게 물었다.
“이 나라 최고 로펌의 변호사들이 룸살롱에서 재벌3세에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자기가 얻어맞고도 침묵하는 그들이 어떻게 변호를 할 수 있을까요? 뒷골목 바닥에 앉아 노숙자나 노인들을 상담해 보니까 제일 중요한 게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겁니다. 영혼 없는 엘리트들의 머리에 돈 없는 사람들의 얘기가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요? 그들이 정말 남의 아픔을 공감할 능력이 있을까요? 대한변협회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밥그릇 뺏겼다고 삭발하는 변협회장에게 세상이 과연 얼마나 공감해 줄까요? 먼저 세상에 대해 헌신하고 수고해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아닐까요?”
‘거리의 변호사’의 질타였다. 변호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변호사법 제1조 같이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위해야 소명을 다하는 게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