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의 마크 코헨 역으로 유명한 앤서니 랩은 TV 시리즈 <스타트렉 - 디스커버리>의 스타멧 중위 역으로도 잘 알려진 배우였다. 그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30여 년 전 일을 꺼냈다.
케빈 스페이시의 추악한 과거에 대한 봉인이 풀리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어릴 적부터 연극 무대에 섰던 앤서니 랩은 브로드웨이에서 다른 연극에 출연 중이던 케빈 스페이시를 우연히 만났다. 그때가 1986년. 앤서니 랩은 15세, 스페이시는 27세였다. 얼굴을 익힌 뒤, 스페이시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열린 파티에 랩을 초대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랩은 파티가 너무 지루했고, 스페이시의 방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파티는 끝났고, 아파트엔 랩과 스페이시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이때 스페이시는, 마치 신랑이 신혼집에 신부를 안고 들어가듯, 랩을 번쩍 안아 들고 침실로 들어가려 했다. 취한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던 랩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마음을 진정시키던 그는 스페이시에게 집에 가겠다고 강하게 말했고, 다행히 험한 일을 당하진 않았다.
앤서니 랩의 폭로에 스페이시는 곧 자신의 트위터에 그때 일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만약 자신이 술에 취해서라도 그런 짓을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페이시는 갑작스레 커밍아웃을 했다. 사실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10여 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사생활을 철저히 숨긴 탓에 그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았던 상황. 그는 앤서니 랩의 폭로에 사실 자신은 오래전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와 로맨틱한 관계였지만 최근엔 게이로 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게이 커뮤니티의 비난이 쏟아졌다. 성 범죄의 전력을 덮기 위해 커밍아웃을 이용했다는 것.
하지만 스페이시의 뜻대로 덮어지진 않았다. 앤서니 랩의 발언은 도화선 역할을 했고, 일주일 만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증언을 쏟아냈다. 멕시코 배우인 로베르토 카바조스는 10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과거 런던의 올드 빅 씨어터에 있을 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스페이시는 11년 동안 그곳에 예술 감독으로 있었는데 이때 만난 카바조스를 애무하려 했다는 것. 이에 카바조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당했으며, 그들의 증언이 이어질 거라고 말했다.
예언은 적중했다. <죠스>(1975)로 유명하며 이후 <굿바이 걸>(1977)로 오스카를 수상한 리처드 드레이퍼스의 아들 해리 드레이퍼스는 18세 때 올드 빅 씨어터에서 아버지가 주연을 맡은 연극에 출연하고 있었다. 이때 만난 스페이시는 해리의 성기를 만지고 애무했고, 2008년 이 일이 일어났는데 이후 긴 세월 동안 아버지에게 감추고 있었다.
런던 시절 그는 인근 단골 술집의 직원들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크리스 닉슨이라는 바텐더를 파티에 초대해 사타구니를 더듬다가 거부당했다. 익명의 바텐더는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올드 빅 씨어터는 자체 조사를 벌였고, 약 20명 정도에게 증언을 받았다.
10월 31일엔 대니얼 빌이라는 남자가 <더 선>과 인터뷰를 했다. 2010년 웨스트 서섹스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할 당시 그는 호텔 밖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스페이시가 다가와 지퍼를 내리고 페니스를 꺼내는 노출을 했다는 것이다. 스페이시는 그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입을 닫는 대가로 비싼 시계를 그에게 선물했다.
1995년 <아웃브레이크>를 촬영할 땐 군사 관련 컨설턴트였던 마크 에벤호크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심각한 건 미성년자 대상 범죄가 더 있다는 것이다. 앤서니 랩만 당한 게 아니었다. 이름을 ‘존’이라고 밝힌 한 남자는 17살이었던 1984년 스페이시의 아파트에서 부적절한 일을 겪었다. 저스틴 도스라는 극장 안내원은 16살 때 파티에 초대 받았는데, 스페이시는 칵테일을 준 뒤 포르노그래피를 틀었다고 했다. 아역 배우 출신인 어느 화가는 14살 때부터 약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스페이시의 성적 대상이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익명의 저널리스트는 2000년대 초 인터뷰 때문에 만났다가 함께 클럽에 갔고, 그곳에서 스페이시가 강제로 성기를 만지면서 성적 관계를 요구했다고 했다. 힘들게 기사를 작성하긴 했지만, 잡지에 실을 땐 자신의 이름을 뺐다고 밝혔다. 케빈 스페이시가 주인공인 TV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로덕션 어시스턴트는 스페이시가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스페이시는 언제부터 이런 일을 저질렀던 걸까? 젊은 시절 무명 배우였던 앤디 홀츠먼의 증언에 의하면 적어도 1981년부터 있었던 일이니, 스페이시는 꽤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범죄적 욕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셈이다.
그리고 11월 8일 보스턴 TV의 앵커였던 헤더 언루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6년 어느 바에서 스페이시가 당시 18세였던 자신의 아들을 성추행했다며 엄정한 경찰 조사를 촉구했다.
스페이시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검사와 치료를 받겠다고 밝혔지만, 그렇게 끝날 일은 아니었다. 결국 <하우스 오브 카드> 마지막 시즌은 에피소드를 13개에서 8개로 줄여야 했고, 스페이시는 캐스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배역을 바꿔 재촬영을 해야 했으며, 스페이시를 염두에 두었던 여러 프로젝트들이 수정돼야 했다. 그는 소속사인 CAA로부터 계약을 파기당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죗값을 모두 치렀다고 할 수 있을까? 다음 호엔 왕년의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