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많은 말들이 오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옥은 죄를 짓지 않고는 가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무엇도 할 수 없는 곳이라 인식되는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믿을 법한 공간이기도 하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감옥이 자주 다뤄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이유다.
사진=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공식 홈페이지
# 고전(古典)도 사랑한 그곳
감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작자들이 사랑한 공간이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5년 쓴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1973년 개봉한 영화 <빠삐용>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작인 <더 록> 등에서 감옥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했다.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경우 미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드라마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도 감옥의 속살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2016년 초 개봉된 <검사외전>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검사가 법률 지식을 적극 활용해 실세로 자리매김하고 출소한 이들을 도구 삼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가는 과정을 그려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그 바통은 2017년 영화 <프리즌>과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이 이어받았다. <프리즌>은 장기 복역하며 감옥 내 우두머리로 군림한 남자가 수감된 범죄자 중 최고의 기술자들만 모아 외부에서 의뢰받은 사건을 대신 해결한 후 돈을 받는다는 설정이었다. 배우 한석규가 주연을 맡아 사실감 넘치는 연기로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은 <불한당> 역시 감옥을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 그곳에 잠입한 경찰이 출소를 앞둔 조직의 중간 보스의 마음을 사로잡아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감옥을 다룬 드라마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초 방송된 SBS <피고인>은 가족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지만 기억상실증 때문에 이를 기억하지 못한 채 수감된 검사가 주인공이었다. 현재는 과잉대응으로 상대방을 죽게 한 후 옥살이를 하게 된 야구선수의 이야기를 그린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탈옥 후 가짜 형사를 하는 사형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SBS <의문의 일승>에서 감옥살이를 엿볼 수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연출하는 신원호 PD는 “사전 취재를 하다 보니 생전 처음 듣는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교도소라는 극단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 ‘프리즌’ 홍보 스틸 컷
# 어디까지 사실일까?
감옥을 소재로 삼은 일련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어디인가?’이다. <프리즌>에서는 재소자들끼리 모여 회식을 하며 술을 마신다. 원할 때는 언제든 바깥나들이를 하며 내통하는 교도관들에게 수시로 현금을 상납한다. <불한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소자가 마음껏 담배를 피우고, 휴대폰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교도관이 제재를 가하려 하자 교도소 내에서 그동안 불법적 행동을 묵인했다는 점을 역이용해 압박한다.
그럴 듯한 설정 덕분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도는 높지만 실제 교도소 내에서 이 같은 행동은 불가능하다고 교정본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내부에서 크로스 체크가 가능하고, 수감 중에 특혜를 보지 못한 이들이 출소한 후 비리를 폭로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영화적 장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프리즌>을 연출한 나현 감독은 “이 영화는 기상천외한 설정이다. 그래서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1990년대 중반이 배경인데 대형사고가 많았고 부정부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던 시기”라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교도소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사회의 질서가 정연하면 교도소 내부도 잘 돌아가고, 반대로 사회의 질서가 엉망이면 교도소도 험악하다고 하더라”라며 스스로 ‘기상천외한 설정’을 넣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드라마 <피고인>에서 기결수와 미결수가 같은 방에 수감된 것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고증을 통해 최대한 현실성 있게 교도소 내부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 수감자가 항문 검사를 받고, 어떻게 배식을 받아 밥을 먹으며 생활하는지 등이 비교적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앞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각 시대를 고증하는 데 일가견을 드러냈던 신원호 PD는 “일련의 작품 속에서 감옥이 벗어나야 할 대상이나 옥죄는 구조적 기능을 하는 공간이라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디테일을 살리는 작품이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촬영할까?
감옥이나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촬영 역시 쉽지 않다. 일상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직접 세트를 짓거나 실제 교도소를 활용한다.
<프리즌>과 <피고인>을 촬영한 곳은 전남 장흥의 옛 장흥교도소다. 1975년부터 40년간 실제 범죄자들이 수감됐다.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해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반면 <불한당>과 <7번방의 비밀> 등을 촬영한 곳은 전북 익산 성당교도소세트장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소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자주 등장하고 근접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따로 세트장을 지었다.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세트보다 큰 규모”라며 “공들여 지었기 때문에 촬영을 마친 후 ‘이거 부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