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채 수학자로 명성을 떨치던 김서인의 기밀유출 사건 전말과 그의 처형 사실이 7년만에 밝혀졌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김서인은 국내에선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북한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관계자들 사이에선 한 번 정도 들어봤음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서인은 북한 과학계 영(수)재교육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김서인은 당대 최고의 수학천재였다. 1980년대 김정일은 ‘20~30대 박사·준박사가 되자’는 구호로 북한 학계를 격려한 바 있다. 그 방침의 선구자가 바로 김서인이었다. 김서인은 당시 오영재, 김걸, 김준 등 20대에 준박사(석사) 학위를 받은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20대에 박사 학위를 처음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더군다나 북한의 학위 제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정원이 극히 한정돼 있으며, 취득 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며 그해 학위 수여자들이 <노동신문> 등 북한 주요 매체에 매년 공개되기까지 한다.
김서인은 그런 바늘구멍 같은 북한 학위 제도를 20대의 젊은 나이로 당당히 통과한 인물이었다. 중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수학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남들보다 2년 앞서 명문 리과대학 수학과(한국의 카이스트에 해당)에 입학했으며, 대학에서도 1년 월반했다. 또래에 비해 무려 3년이나 일찍 학부과정을 졸업한 셈이다.
애초부터 김서인의 가문은 과학자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김성일 박사는 북한 핵개발 전초기지인 영변핵연구기지 소속의 간부급 과학자였고, 그의 동생 김서룡 역시 리과대학에서 수학한 과학자였다.
필자는 1984년 7월 리과대학에 입학을 위한 시험을 쳤다. 당시 김서인의 친동생 김서룡과 우연이긴 하지만 2박 3일간 기숙사 룸메이트가 됐다. 당시 세 학년 위였던 김서인은 우리 방을 자주 찾았고, 필자는 자연스레 그 형제와 돈독한 친분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후 합격하여 김서룡의 형 김서인을 자연히 학교에서 자주 만나게 됐다. 무엇보다 김서인은 당시 과학도들은 물론 북한 사회 전반에서도 알아주는 유명 인사였기에 필자에게 있어선 영광이나 다름없었다.
필자는 졸업 이후 한국에 오고 그들과 연이 끊어졌지만, 2010년 11월 북한 국가과학원 수학연구소 실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서인과 그의 아버지 김성일 박사가 군사기밀유출 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당시 김정은은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보위부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때다.
필자는 7년 만인 최근에야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통해 그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은 2010년 3월 보위부가 한 통의 기밀문서를 입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문서에 등장하는 기밀유출 주동자는 김서인과 함께 국가과학원에 몸담고 있던 윤 아무개 연구사였다. 윤 연구사는 젊은(1974년생) 과학자로 김서인과 같은 리과대학을 졸업한 후배였다. 전공은 전자 및 자동학부를 수학하였으며 국가과학원 자료통보연구소 소속으로 있었다.
주목할 점은 윤 연구사의 집안 배경이다. 윤 연구사의 모친은 중국 출신이었다. 그의 외가 친척들 상당수는 여전히 중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특히 윤 연구사는 사촌형과 절친했는데, 그 사촌형은 중국 선양(瀋陽)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윤 연구사는 바로 이 사촌형을 통해 북한 내부 핵개발과 관련한 주요 연구 자료를 중국으로 빼돌렸다. 이 사촌형을 통해 유출된 해당 자료의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지만, 지금으로서는 중국 국가안전부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윤 연구사는 그 대가로 금품을 챙겼다는 것이 북한 보위부의 조사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 윤 연구사의 기밀유출 작업에 김서인 실장이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김서인은 북한 광명성 미사일 개발에 깊숙하게 관여한 인물이다. 특히 미사일 탄도를 연구하는 유체역학의 전문가로서 많은 기여를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서인은 자신의 연구 자료는 물론 아버지 김성일 박사로부터도 핵개발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중국과 연결된 후배 윤 연구사에게 넘긴 것이다. 김성일-김서인 부자 역시 주동자인 윤 연구사를 통해 대가성 금품을 받았다고 한다.
보위부는 바로 이 일련의 불법행위가 담긴 문서를 입수해 당사자들을 체포한 뒤 이들의 행각을 낱낱이 조사했다. 앞서 관계자에 따르면 김성일, 김서인 부자는 물론 필자의 동기이자 김서인의 동생인 김서룡까지 2010년 5월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고 한다. 김성일, 김서인 부자는 얼마 안 가 처형됐다고 한다. 다만 함께 수용소에 갇힌 김서룡의 생사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7년 만에 밝혀진 이 사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북한 과학기술 엘리트들의 기밀유출 행각이다. 구 소련 및 위성국들의 과학기술 엘리트들 역시 체제 위기가 도래한 뒤 기밀유출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이는 북한 체제의 현 상황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은 이를 의식한 듯 북한 과학기술자들을 ‘금방석’에 앉히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