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사옥.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티시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시스템 통합 관리 등을 하는 업체로, 계열사에 IT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김상조 위원장도 2017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할 수 있을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도서보급은 상품권업체로 이 전 회장이 51%, 아들 현준 씨가 49%의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다. 티시스 역시 이 전 회장 부자와 가족들이 지분 100%를 가진 회사다. 이 전 회장 지분을 20% 미만으로 줄여야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실리는 후계구도=티시스와 한국도서보급은 모두 주요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한국도서보급으로 계열사 지분을 모으면 이 전 회장 가족회사가 지배하는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가 탄생한다.
이호진 전 회장의 숙제는 그룹 최대 계열사인 태광산업에 대한 지배력이다. 현재 현준 씨 사촌들의 지분율이 무려 8%나 된다. 이 전 회장은 이미 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 타계 후 외가와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남매들 사이에도 재산을 둘러싼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전 회장의 건강이 문제다. 1962년 생으로 아직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지만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서는 현준 씨에게 현재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지배력을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물려줘야 한다. 지분을 직접 상속 또는 증여할 경우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현준 씨가 49%의 지분을 가진 한국도서보급에 지분을 몰아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도서보급, 실질적 지주사로=우선 이 전 회장이 보유한 태광산업 지분을 한국도서보급에 현물출자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도서보급은 자기자본이 1000억 원도 안 되는 규모지만, 티시스의 투자사업부문을 합병하면 덩치가 배 가까이 불어난다. 이 전 회장이 보유한 태광산업 지분 가치는 약 2300억 원이다. 이 전 회장이 이를 한국도서보급에 현물출자하고 신주를 받으면 발행주식 수가 약 2배로 늘어난다. 하지만 상장 등으로 이를 유동화하면 지배력을 유지한 채 막대한 현금까지 손에 쥘 수 있다.
▶불안한 태광산업…‘양날의 검’ 자사주=지주회사 전환을 택한다면 태광산업을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한 후 지주회사를 한국도서보급과 합병하는 방법도 있다. 태광산업의 자사주는 27만여 주로 발행주식 수(111만 주)의 24%가 넘는다.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자사주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이 자사주는 태광산업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쪽의 지분이다. 만에 하나 경영권 분쟁이 벌어져 이사회 장악력이 떨어진다면 자사주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이 전 회장 남매들은 막강한 처가 인맥을 자랑한다.
1994년 세상을 떠난 둘째형 이영진 씨는 1976년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의 막내딸 장옥빈 씨와 결혼했다. 이 전 회장의 부인 신유나 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조카이자 신 총괄회장의 동생 신선호 일본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이다. 큰누이 이경훈 씨는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의 막내아들 허승조 전 GS리테일의 대표와 결혼했다.
▶금융계열사 정리도=태광그룹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흥국생명은 이 전 회장이 무려 56%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 전 회장은 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6개월형을 받았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 집행 완료 후 5년간 금융회사 최대주주 자격이 제한된다. 지분율 20% 초과보유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제한될 수도 있다. 이 전 회장 조카들의 흥국생명 지분율은 22%나 된다. 대한화섬의 지분율 10.43%가 유지돼야 30% 이상의 안정적 지분율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주사로 전환되면 대한화섬은 흥국생명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결국 이 전 회장 본인 또는 대한화섬이 보유한 지분을 현준 씨에게 넘기는 방법이 필요하다.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세화고 재단, 지배구조 변수로=이호진 전 회장은 이번 지배구조 개선방안에서 1000억 원 규모의 티시스 사업회사 지분 무상증여를 약속했다. 태광그룹 측은 아직 무상증여의 대상이나 방법 등은 확정되지 않았고 합병 전까지 법적 검토 등을 통해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태광그룹에는 일주세화학원·일주학술문화재단·세화예술문화재단 등이 있다. 세화고등학교·세화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일주세화학원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지분 5%를 보유 중이다.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1년 이후에도 이사직을 맡고 있는 유일한 법인이다.
재계에서는 증여 상대방으로 결국 공익재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최근 정부가 지배구조 편법 강화에 기여해 온 공익재단에 대한 현미경 점검에 나선 만큼 그룹 내 재단을 통한 지배구조 강화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은 관망… 향후 주가전망은=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선방안이 발표된 직후 증시에서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상승폭을 거의 반납하며 주가는 다시 잠잠해졌다. 지배구조 개선방안에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개선시키는 내용이 담기지 않아서다.
최근 이 전 회장 부자가 110억 원이 넘는 개인자금을 들여 대한화섬 지분을 추가 매입했다. 1000억 원 남짓한 매출에 순익 200억 원이 채 안 되는 대한화섬의 시가총액은 1500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부 유보로 쌓인 이익잉여금은 3500억 원이 넘는다. 이 전 회장 부자와 이들 가족이 지배하는 회사의 대한화섬 지분율은 61%에 달한다. 배당을 통해 후계자금을 마련할 만하다.
익명의 한 펀드매니저는 “현 정부 아래에서 돈 안 들이고 후계구도를 완성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시총 1조 4000억 원이 조금 넘는 태광산업의 이익잉여금은 2조 7000억 원이 넘는다. 이처럼 내부유보가 많은 기업에서 총수 일가의 후계구도에 쓰일 자금은 결국 배당으로 마련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후계구도 과정에서 배당확대 정책이 이뤄질지 여부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