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가 흐름을 주도한 5대 예능은 ‘지식’과 ‘관찰’, ‘연애’와 ‘오디션’ 그리고 ‘힐링’이다. 한동안 예능의 문제로 지적돼온 자극적인 설정,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상황 연출은 줄어들고, 점차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저마다 공감 지수를 높였다. 예능의 인기는 2018년에도 이어질 전망. 2017년 인기를 얻은 예능들이 활발하게 시즌2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 지식예능·관찰예능…막강 영향력
2017년 예능프로그램은 단순한 재미와 웃음을 넘어 생활 속에서 활용할 만한 지혜와 전문 지식을 제공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기폭제는 케이블채널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사진=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홈페이지
사실 예능을 통해 정보를 얻기 시작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젠 그 정보의 범위가 인문학 등으로 넓어졌고, 당장 생활에서 써먹을 방법을 제시하는 세밀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사평론가(유시민), 과학자(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소설가(김영하) 등이 모여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쏟아낸 <알쓸신잡>은 지식예능의 전성기를 알린 신호탄으로 통한다. 몰라도 크게 문제없지만 알아두면 두고두고 요긴하게 써먹을 만한, 다방면 지식으로 꽉 찬 예능으로 2017년 방송가 트렌드를 주도했다. 시즌1의 성공은 최근 종영한 시즌2로 이어졌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나영석 PD는 “편하게 보면 <알쓸신잡>은 지식예능보다 일종의 여행프로그램에 가깝기도 하다”며 “각 분야 전문가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예측할 수 없어, 시청자들이 심각하지 않게 봐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뒤를 따르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채널A가 방송하는 <거인의 어깨> 역시 인문학을 중심으로 생활 속 지혜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지식은 실천을 유도하기도 한다. 또 다른 메가히트 예능으로 꼽히는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재테크 노하우를 소개하면서 참여형 예능으로 각광받았다. 김생민에게 내 신용카드 영수증을 내밀고 ‘씀씀이 진단’을 받고 싶은 욕구를 마구 자극하기도 했다.
온라인 팟캐스트 방송으로 시작한 <김생민의 영수증>은 11월 26일부터 KBS 2TV를 통해 매주 일요일 오전 방송하고 있다. 예능의 열풍 속에 온라인 방송의 지상파 편성이라는 이례적인 기록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지식예능과 더불어 관찰예능은 요즘 방송가에서 빼놓기 어려운 키워드. 사실 몇 년째 계속된 인기가 2017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누군가를 관찰하는 방식은 그 범위가 날로 확장되고 있다. 결혼적령기를 한참이나 넘긴 ‘노총각 연예인’의 일상을 지켜보는 SBS <미운 우리 새끼>, 휴양지에 식당을 차려 손님을 맞는 스타들을 엿보는 tvN <윤식당>, 유명 연예인이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MBC <나 혼자 산다>,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 곳곳을 비추는 프로그램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까지 그 소재와 범위의 팽창도 빠르다.
사진=tvN ‘윤식당’ 홈페이지
# 연애·위로·오디션…일반인을 스타로
예능프로그램의 전성기는 일반인 출연자까지 스타로 만들어낸다. 이른바 연애예능에 속한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채널A의 시청률 지형도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하트시그널>을 중심으로 엠넷의 <내 사람친구의 연애>, 현재 방송 중인 SBS <잔혹하고 아름다운 연애도시> 등이다. 보는 입장에선 마치 내가 연애하는 듯한 기분을 맛보기도 하면서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물론 남의 연애를 훔쳐보는 것 같은 짜릿함은 연애예능이 가진 또 다른 매력. 일부에선 관음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제작 움직임은 꾸준하다. 당장 <하트시그널>은 내년 시즌2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알쓸신잡>과 더불어 2017년 예능 히트작에서 JTBC <효리네 민박>을 빼놓기 어렵다. 가수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의 제주도 집을 민박집으로 설정해 일반인 참여자들에 숙식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관찰하는 내용이다. 제주도라는 공간이 주는 힐링의 분위기, 여유롭게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이효리 부부의 모습이 시청자를 사로잡으면서 동시기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이 연일 매진되는 기현상까지 빚었다. 사실 이런 힐링예능의 인기는 각박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대중의 열망을 대변한다. 매일 학교로, 직장으로, 혹은 가사일로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위안과 위로를 안기는 내용으로 방송 내내 높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시청자가 전달받는 힐링의 기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효리 부부는 최근 <효리네 민박> 시즌2 기획에 착수했다. 처음 방송 직후 이들 부부는 자신의 제주도 집 주변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든 탓에 불편함과 고통을 여러 차례 호소하기도 했다. 때문에 시즌2 제작 결정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 제작 관계자는 “관광객이 몰려와 겪는 불편함보다는 민박집을 찾아오는 투숙객과 나눈 각별한 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 시즌2 제작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예능은 때로 어마어마한 ‘매출’로 이어진다. 오디션 예능이 그렇다. 엠넷이 방송한 <프로듀스101>이 배출한 그룹 워너원은 2017년 연예계를 강타한 신드롬으로 통한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수만 명의 누나 팬들로 가득 채웠고, 데뷔 앨범을 100만 장 넘게 팔아치우는 저력까지 과시했다.
워너원을 배출한 <프로듀스101>이 거둔 유·무형의 수익도 상당하다. 다른 방송사들이 이를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KBS는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을 론칭했고 JTBC 역시 <믹스나인> 등을 제작해 현재 방송하고 있다. SBS도 내년 방송을 목표로 오디션 예능 준비를 시작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