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8일 실종됐다고 알려졌던 고준희 양(5)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진=전주 덕진경찰서
경찰은 초기부터 미심쩍은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섣불리 보호자들을 의심할 수는 없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석연치 않은 아동 실종 사건에서 보호자들은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보호자를 의심하는 것에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 초기에는 용의자가 아닌 피해자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부모에게 범죄 혐의점 등과 관련한 민감한 질문을 묻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고 씨 등에 따르면 준희 양이 실제로 사라진 것은 2017년 11월 18일. 미숙아로 태어났고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아 또래보다 덩치가 작고 발달이 늦던 준희 양은 친부모의 별거로 2017년 1월부터 아버지 고 씨에게 맡겨졌었다고 한다.
고 씨는 부인과 별거 직후인 2016년 11월부터 동거녀인 이 씨를 자신의 사택에 불러 함께 동거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준희 양이 자주 이 씨의 아들(6)과 심하게 다투자 3개월 뒤인 4월부터 준희 양을 이 씨의 어머니 김 씨의 집에 맡기게 됐다.
아직 이혼하고 정식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동거 상태’로 사실상 친족 관계로 볼 수 없는 손녀가 생긴 것을 김 씨 역시 탐탁지 않아 한 것으로 보인다. 고 씨는 김 씨에게 양육비 명목으로 월 60만~70만 원 상당의 돈을 보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김 씨가 준희 양을 잘 키우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 역시 준희 양을 방임했다. 출근 후 퇴근까지 10시간이 넘도록 준희 양 혼자 집 안에 덩그러니 남겨지는 경우도 잦았다. 김 씨는 “준희는 원래 혼자 잘 놀고 잘 지낸다”는 말로 방임을 포장했다.
준희 양이 사라졌다는 2017년 11월 18일은 아침부터 동거녀 이 씨와 친부 고 씨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이 씨의 전화를 받고 데리러 갔던 어머니 김 씨가 딸과 함께 집에 돌아와 보니 준희가 없었고, 아침의 말다툼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고 씨가 아이를 데려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고 밝혔다.
김 씨 모녀는 준희 양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도 고 씨에게 행방을 묻지 않았고, 고 씨 역시 그들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사라진 다섯 살배기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20여 일 동안 은폐돼야만 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후에도 이들의 태도는 미심쩍었다. ‘실종됐다’고 주장한 일자로부터 20일이 넘은 시점에 경찰에 신고한 것도 그랬지만, 아이를 찾기 위한 경찰의 조치를 모두 거부한 것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서 8개월 만에 발견된 준희 양의 시신. 연합뉴스
정확한 아이의 실종 시점을 찾기 위해 경찰은 고 씨와 김 씨 모녀에게 법최면검사를 제안했다. 이미 상당히 시일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이 왜곡됐을 수 있어 무의식상태에서 기억을 불러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강하게 거부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경찰의 협조 요청에도 자신을 범인 취급한다며 완강히 거부하며 오히려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가운데 고 씨와 김 씨 모녀의 휴대전화가 모두 실종신고 직전 교체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준희 양이 실종됐다는 2017년 11월 이전에 이웃 가운데 누구도 준희 양과 고 씨 등이 함께 외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도 이어졌다. 친모와 함께 살 때는 지병으로 병원의 진료를 꼬박꼬박 받아왔던 것과 달리 2017년 3월 19일 이후부터는 진료내역이 전무했다.
고 씨와 김 씨 모녀가 준희 양이 사용했다고 주장한 칫솔이나 물건 등에서도 준희 양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 필요한 생필품 구매내역도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발견할 수 있어야 할 생활반응이 전혀 포착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친부 고 씨의 자택에서 사람의 혈흔으로 추정되는 자국이 발견되면서 경찰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단순 실종 사건이 강력 사건으로 전환될 수 있는 터닝 포인트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이 혈흔은 사람의 체내에서 나온 피였으며, 친부 고 씨, 동거녀 이 씨, 그리고 준희 양의 DNA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
준희 양 실종 이후 석연치 않은 이들의 태도, 혈흔, 잃어버린 딸을 찾는 모든 과정에 일절 협조하지 않은 행태 등은 수사의 칼날을 그들에게 향하게 했다.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추적하면서 경찰은 친부 고 씨와 동거녀의 어머니 김 씨가 함께 군산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포착됐다. 이를 토대로 추궁하자 결국 고 씨가 2017년 12월 28일 오후 8시, 경찰 조사에서 시신 유기 사실을 자백했다. 전북 군산 매초동의 한 야산에 김 씨와 함께 준희 양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
다만 살해나 학대한 것이 아니라 장시간 집을 비우고 돌아오니 준희 양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2017년 4월 27일 새벽, 김 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준희 양은 토사물이 목에 걸려 사망한 지 2시간이 지나 있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사망 사실을 숨긴 이유에 대해서 고 씨는 “부인과의 이혼 소송이나 양육비 지급 등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야간 수색 끝에 12월 29일 오전 4시께 보자기에 덮인 준희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8개월 동안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었다. 일말의 속죄였는지 준희 양의 시신 곁에는 아이가 생전에 가지고 놀던 인형이 함께 발견됐다.
준희 양의 시신은 곧바로 국과수로 보내졌다. 이미 사망 후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시신의 훼손 상태가 상당했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국과수 정밀 감식을 통해 준희 양이 사망하기 전 학대가 있었는지,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른 것인지 여부를 가린다는 방침이다.
2016년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의 경우는 친부가 딸의 시신을 집안에 건조하게 보존했기 때문에 사망 후 11개월이 지나도 신체조직의 일부가 남아있었고, 이를 통해 국과수가 학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준희 양의 경우는 시신이 유기된 곳이 야산이었으며 매장 깊이도 3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범죄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고 씨와 김 씨를 긴급 체포해 사체유기 혐의와 함께 아동학대치사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폭넓게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준희 양은 이미 숨지기 전 2017년 2~3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이마와 머리에 창상(외력으로 찢어진 상처)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긴 했으나 담당 의사는 학대신고를 하지 않았다. 학대로 인한 것인지 고 씨의 주장대로 휴지걸이, 책상에 부딪쳐 생긴 상처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병원 치료 이후 3월 30일부터 어린이집을 퇴소한 점, 퇴소 이유로 “준희의 상태가 나빠져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고 밝혔음에도 아이를 맡은 2017년 1월부터 단 한 번도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학대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거녀 이 씨는 아직까지 뚜렷한 범죄 혐의점이 없어 임의동행해 참고인으로 조사 중이다. 고 씨와 김 씨는 “이 씨는 범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씨 역시 준희 양의 실종 또는 사망을 인지했고 고 씨 등과 말을 맞춰 허위로 실종신고를 낸 점 등이 인정되면 피의자 전환으로 수사가 가능하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지역 커뮤니티 발칵…동거녀 “여아용 완구 사겠다” 의아 준희 양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북 전주의 지역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다. 대부분 준희 양의 친부 고 씨와 동거녀 이 씨를 알던 사람들이었다. 고 씨는 직접 만든 로봇 모형으로 유명했고, 이 씨는 아토피를 앓던 아들을 끔찍하게 위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준희 양의 친모 A 씨 역시 이 씨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만난 고 씨와 이 씨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은 2015년 10월 즈음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전까지 고 씨는 부인 A 씨와의 금슬을 자랑하며 세 아이의 아빠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씨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A 씨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 씨, A 씨와 함께 활동하던 커뮤니티에서 고 씨의 활동이 줄어든 것도 이 즈음이다. 고 씨와 A 씨가 이혼소송에 들어가자 이 씨는 2016년 11월 초부터 고 씨의 사택으로 이사해 동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고 씨의 세 자녀는 당시 A 씨가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사택에서는 고 씨와 이 씨, 이 씨의 아들 셋 만이 거주했다. 그러나 A 씨가 준희 양을 보내면서 이 씨의 아들과 자주 다투자, 준희 양을 이 씨의 어머니 김 씨 집에 보내면서 이 같은 참담한 결말에 이르게 됐다. 2017년 4월 27일 새벽 준희 양의 사망을 확인한 고 씨와 김 씨는 시신을 땅에 묻으면서 사건의 진실도 함께 은폐하기로 했다. 먼저 김 씨는 준희 양의 생일인 7월 22일이 되자 미역국을 끓여 가족들에게 나눠줬다. 외출을 하더라도 “집에 아이가 기다린다”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죽은 아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친부 고 씨와 동거녀 이 씨의 태도도 비슷했다. 고 씨는 아이를 야산에 묻고 온 다음 날, 자신이 제작한 로봇 ‘건담’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4월부터 10월까지 실종된 아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의 SNS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SNS만 본다면 누구도 아이가 실종된 아버지라고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나마 준희를 ‘막둥이 공주님’으로 부르며 아이의 사진이나 근황을 올렸던 블로그는 모두 폐쇄됐다. 다음 블로그의 경우는 2017년 10월 29일,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는 2017년 12월 8일 폐쇄된 것으로 확인된다. 12월 8일은 고 씨 등이 경찰에 준희 양의 실종신고를 한 날이다. 이 씨는 한 달에 적어도 네다섯 번가량 글을 올리던 커뮤니티에 유독 2017년 4월에는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무료나눔이나 상품 판매 게시글에 열을 올렸다. 9월에는 자신의 아이와 관계없는 여아용 완구를 사겠다는 글을 올려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10월에는 6~7세 여아용으로 추정되는 겉옷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아이가 실종됐다고 주장했던 11월 18일 글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씨와 거래했던 커뮤니티 회원들도 많이 놀랐다. 이 씨와 거래했다는 한 회원은 “전주 어딘가에서 사건이 난 줄만 알았지 같은 커뮤니티 회원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끔찍해서 거래한 물건도 버리고 싶을 정도”라며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