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가격이 치솟으면서 가상화폐 채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인천에 위치한 한 채굴장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고성준 기자
가상화폐는 컴퓨터 CPU가 복잡한 연산을 해결하고 그 대가로 한 개의 코인을 받는 구조다. 개별 가정에서도 한두 개의 PC로 채굴 작업을 할 수 있지만, 통상 대규모 단위로 이뤄진다. 투자자들의 돈을 모은 기업에서 특정 장소에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대의 PC를 설치해 공장 단위로 가상화폐를 만들어 낸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에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한겨울에도 에어컨과 선풍기로 끊임없이 CPU에서 내뿜는 열을 빼내야 할 정도다.
문제는 대형 채굴공장들이 사용하는 전기에 빈틈이 있다는 점이다. 통상 전기세는 가정용이 가장 비싸고, 일반용-산업용-농업용 순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일부 채굴업자들은 가상화폐 채굴업에 대한 정부의 전기세 적용 기준이 모호한 점을 노려, 가장 저렴한 농업용 전기로 채굴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채굴업계 관계자는 “수백, 수천 대의 PC를 돌리려면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채굴업체들이 산업용 전기를 쓰는 산업단지에 들어가 있지만, 일부 채굴장은 논이나 밭이 있는 지역 한가운데 공장을 만들고 정부를 속여 가장 저렴한 농업용 전기를 끌어다가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이더리움’ 채굴기. 고성준 기자
정부도 이 같은 빈틈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채굴장에 대한 일제 단속에 나섰다. 한국전력은 최근 가상화폐를 대규모로 채굴하는 채굴장 리스트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는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전국에는 1050여 개에 달하는 대형 채굴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먼저 신고를 했거나 추정되는 곳을 리스트로 만들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채굴장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실제 앞선 채굴업계 관계자 역시 “보유한 공장 중 일부에만 한전 등에서 사람이 나와 현장 확인을 나왔고 나머지는 아직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을 감안할 때 채굴장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채굴장에게 ‘전기세’는 매우 중요하다. 무인으로 돌아가고, 고장 난 CPU를 가끔 돌아가며 손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운영 비용 중 전기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실제 300~400여 대의 채굴 PC를 돌리는 곳의 한 달 전기료는 3000만 원에 육박한다. 한국전력은 이들 개별 채굴장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한 뒤, 이들에게 적용하던 전기세 기준을 산업용에서 일반용으로 변경해 채굴장 확대를 막는다는 방침이다.
채굴업체들을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산업용에서 일반용으로 세금을 변경하면 전기세가 최소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오른다. ‘꼼수’로 농업용 전기를 쓰던 곳은 최대 2배 가까운 세금을 내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재가 약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용 전기세 역시 기준 가격이 높긴 하지만 사용량에 따라 세금 폭도 늘어나는 누진세가 아니기 때문. 때문에 채굴장에 산업용이 아닌 일반용 전기세를 매겨도, 가정용보다는 현격히 저렴하다. 누진세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요금이 일반용 대비 20%, 산업용 대비 40% 가까이 비싸다.
일부 채굴업자들은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까지 저지르고 있다. 불법으로 국가산업단지까지 들어가 작업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지난달 14일 입주계약 없이 전북 군산 국가산업공단에서 비트코인 채굴 작업을 한 업자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공단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업자 A 씨는 지난 10월 군산 국가산업공단 한 제조업 공장에 비트코인 채굴장을 만들었는데, A 씨는 채굴 작업용 컴퓨터 200여 대를 몰래 들여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공장 일부 공간을 사용하는 대가로 해당 공장 대표에게 한 달 동안 전기세 명목으로 300만 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점. 국가산단 사업 목적에 맞게 입주계약을 한 뒤 단지에 들어가야 하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산단에 사업 목적 외 생산 시설이 들여놓는 것은 명백히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게 공단 측의 입장이다.
문제는 정부 규제가 구체화되더라도 이 같은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앞선 채굴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정부에서 가상화폐 거래에 세금을 부과할 경우, 세금 부과 기준이 모호한 직접 채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며 “정부에서 단순히 전기세를 올리는 정도로는 채굴장 확대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검찰 칼 빼들었지만…‘수박 겉만 노리나’ 법무부에 가상화폐TF가 꾸려진 이후, 검찰도 칼을 꺼내 들었다. 가상화폐 관련 범죄에 대한 전면전에 나선 것. 수사력을 집중하기 위해 정부는 인천지검 외사부를 ‘가상화폐 전담 수사부서’로 정했다. 그리고 관련된 사건도 모두 인천지검 외사부로 몰아주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2월 20일, 인천지검 외사부는 가상화폐 붐에 편승한 2700억 원대 국제적 사기 조직을 일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내국인과 공모한 미국과 캐나다 국적의 외국인들은 무등록 다단계 방식으로 피해자 1만 8000여 명으로부터 2700억 원을 받아 챙겼는데, 이 과정에서 유명 가수 박정운 씨가 관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박정운 씨 등 36명을 입건했다고 밝히며, ‘국내 처음 밝혀진 채굴 사기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비판이 쏟아진다. 가상화폐 범죄의 본질인 ‘환치기’나 ‘자금세탁’ 부분은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단순 형사부가 아니라 인천지검 외사부로 가상화폐 관련 사건을 다 집중시켰다는 것은 중국 등 외국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검은돈과 가상화폐를 단속하라는 것인데, 전담부서 답게 가상화폐 범죄의 본질인 자금 세탁 부분을 수사해도 부족할 판에 정작 단순 가상화폐 관련 사기 사건이나 하고 있다”며 “단순 사기 사건은 어느 검찰 형사부에서도 다 할 수 있는데 이런 사건을 가지고 수사 성과 홍보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결국 사건 본질을 건드리기에는 법적인 기준도 모호하고, 수사 방법도 모르다 보니 ‘수천억, 유명 가수’와 같은 단순 성과 보여주기에 급급한 것 아니겠냐“며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법이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발생하는 ‘빈틈’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