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는 애환이 묻어나는 도시다. 항구는 1백50년 전의 모습 그대로 이고, 강점기의 일본식 가옥도 2백여 채나 남아 있다. | ||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이왕이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문화교류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긴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조화로운 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종의 과정인 것이다.
낯선 이들, 그러나 여행으로 묶여진 이들과 함께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까지 달려보았다.
여행길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기후에 따른 변화가 있을 수 있고 뜻하지 않게 좋은 장소를 발견하고 유익한 만남이 이뤄지기도 하는 것이다.
방향을 목포로 정했지만 정작 마음을 끄는 것은 속까지 뻥 뚫리는 시원한 서해안 고속도로, 웅장한 서해대교, 아름다운 대천휴게소, 도로 위에서 즐기는 간식처럼 아주 사소한 경유지들일 때가 많다. 목포에 닿기 전에 도착한 무안이 그 사소함 가운데 하나이다.
▲ 유달산 5개 정자 중 하나인 유선각. | ||
목포에 도착하기 전 폭풍이 몰아치는 악천후 덕분(?)에 무안군 현경면 양학리 어느 폐교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은 오히려 행운이었다. 양학리에 있는 구 현경남초등학교는 폐교를 활용해 ‘봅데강’이라는 전통염색학교로 바뀐 곳이다.
‘봅데강’이 더 흥미로운 것은 그곳의 주인 때문이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와 둘이서 손잡고 다정히 거닐던 그 오솔길’이라는 1970년대 히트곡 ‘꽃반지 끼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가요다.
이 노래를 부른 고운 목소리의 ‘은희’라는 가수가 바로 전통 염색학교 ‘봅데강’의 주인으로 변신했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10년 동안 제주 갈옷을 연구해오다 두어달 전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것이다.
갈옷이란 풋감의 떫은 물을 짜내어 염색한 제주도 지역의 전통의상을 말한다.
은희씨는 ‘자연 염색이라 건강에도 좋고 입을수록 빛깔이 달라진다’며 갈옷 예찬론을 펼친다. 제주도말 ‘봅데강’은 ‘보셨습니까’라는 뜻이란다. “이런 옷 보셨어요?”라고 묻는 은희씨의 마음인 것 같다.
‘봅데강’에서는 날씨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흰색 면 티셔츠로 염색체험을 해 볼 수도 있고 조금 불편하지만 숙박도 허락해준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굳이 사양했지만, 아직까지 꽃반지를 부르던 열아홉 살의 고운 목소리는 그대로였고 취입 준비중인 음반을 대신 들려주었다.
오지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모임 트렉코리아에서 ‘봅데강’으로 견학하는 코스도 생겼으니 제주도 갈옷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게 됐다.
이곳 현경면에서 해제면으로 약 10분을 가면 95년부터 고려청자 6백39점이 발굴되는 등 인근해역이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도리포 유원지나 백로와 왜가리의 서식지를 보고 가도 좋다.
도리포는 일출과 일몰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서 유명해졌다. 연꽃으로 유명한 무안의 회산방죽이 약 20분 거리다. (염색체험 문의 www.trekkorea.com 02-5400-840)
서울에서는 5시간, 인천에서 4시간이면 서해고속도로 끝지점, 목포문화원 앞에 도착한다. 항구도시 목포는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제 3의 항구이자 6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로 대표될 만큼 일제시대 때 일본의 근거지로 이용되면서 많은 애환을 겪었던 곳이다.
아직도 목포에는 일본식 가옥이 2백여 채나 남아있다. 목포 관광은 보통 영산호를 끼고 있는 갓바위권과 유달산을 중심으로 한 유달산권으로 나뉘어진다. 각각의 권역에서 한두 곳의 포인트를 잡는다면 하루만으로 충분히 목포를 둘러볼 수 있다.
영산호 끄트머리에 삿갓을 쓴 한 쌍의 바위는 목포팔경의 하나인 갓바위다. 영락없이 갓 쓴 사람의 모습으로 거리를 두고 보면 더 정확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도사가 놓아둔 삿갓과 지팡이 자리에 지금의 갓바위가 생겼다고 하며 해안 끝에 위치해 있어서 영산강에서 바라봐야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해변가를 따라 이어지는 곳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신안과 완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선박과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물선 이야기가 이곳에서 쏟아진다.
1975년 한 어부가 중국 청자유물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신안 앞바다 해저에서 보물선이 발견됐고 본격적인 해저 유물 발굴이 시작했다. 완도에서 발견한 중국 청자, 백자, 진도 해안의 중국통나무배와 무안 도리포 해저에서 발굴한 상감청자 등이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어 바다 속 보물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해양체험관에서는 파도소리, 뱃고동소리, 갈매기소리 등을 들어볼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노젓기 체험도 마련돼 있다. 유물전시관 맞은편으로는 ‘남농기념관’이 있다. 중국회화의 한 줄기인 남종화(南宗畵)의 거장 남농 허건 선생이 1985년 건립한 곳이다.
한바퀴 돌아보면 그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기념관이지만 이곳을 지키는 노인으로부터 설명을 듣다보면 잊을 수 없는 기념관이 되고 만다. “바보가 무슨 뜻이여? 그것은 말여 바로 볼 줄 안다는 뜻이여.” 세상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며 막힘없이 쏟아내는 설명이 이어진다.
“낙관이 맞나? 전각이 맞나?”하며 불호령을 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내 말을 따라 해봐”라며 그림 속의 글의 해석을 따라하게 한다. 수업시간처럼 한 명이 지적을 당하기도 하고 야단을 맞기도 하는 시간이 모두의 흥미를 끌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산수화를 보는 법에서부터 명화의 기준까지 내려주며 “여러분들이 이거 안보고 가면 여기 헛 온 것이여”하며 그림의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야단은 맞을지 몰라도 이런 박물관이라면 관광객들에게 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여주고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어줄 것이다.
▲ 목포해양유물전시관. 중국 조선 고려의 도자기가 전시돼 있고 해양 체험도 할 수 있다 | ||
해발 228m라면 ‘에걔~’하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산은 높이로만 그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달산 일등바위에 올라보면 더욱 그렇다. 노령산맥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끝이 유달산이다.
예로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리웠고 목포시내를 지나 삼학도와 목포항이 내려다보이고 이충무공 유적지가 있는 고하도를 비롯한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차는 산이다.
유달산 공원에서 시작해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등 5개의 정자가 있는가하면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기념비와 이충무공 기념비 등이 산 입구에 세워져 있다.
등산로는 온통 울퉁불퉁한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산이지만 걸을 때마다 향나무며 솔잎향기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끈다. 여러 개의 정자가 있지만 조금씩 다른 위치이므로 전망 또한 저마다 다르다. 정자에서는 주말마다 자원봉사하는 문화해설사를 만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목포 시가지를 가리키며 “저기 삼학도가 있고 목포 항구가 있죠. 바로 저것이 1백50년 전의 목포항 그대로입니다. 1백50년 동안 이렇게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죠.
” 명랑한 목소리로 설명하는데도 목포의 애환이 진하게 전해지는 듯하다. 지금은 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조선총독부 관청 건물이며 일본식 학교 건물, 목포 최대의 일본식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훈동 정원이며, 한국문단 최초의 여류소설가 고 박화성 여사의 문학기념관까지 설명을 듣고 나니 목포시내 전경이 갑자기 내 고장인 것처럼 훤히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일본식 가옥이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이며 조선시대에 생긴 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도 있다. 유달산 입구에서는 일등바위, 이등바위의 위용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산으로도 느껴지지 않지만 끝까지 올라 땅끝 절벽에 병풍처럼 나란히 서 있는 일등바위와 마주치는 것은 놀라운 감동이다.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을 지나면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로 갈라지고 이등바위로 넘어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조각공원으로 하산할 수 있다. 일등바위는 여기가 228m밖에 되지 않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장관을 보여준다.
해넘이를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고 서 있으면 설악산도, 태백산도 부럽지 않다는 목포사람 얘기가 하나 과장 없이 느껴진다. 바다 위의 산이니 시야가 막힘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문화해설사 : 061-283-8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