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이젠 기사에서 본명인 전준주를 사용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를 전준주가 아닌 왕첸첸이나 왕진진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그의 주장에 일부라도 동조해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의 아들이며 실제 나이는 몇 살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정말 고 장자연의 지인(친한 오빠)인지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 모두 왕첸첸, 내지는 왕진진이라 불리며 벌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이젠 그를 전준주, 아니 일반인이니 전준주 씨라 쓰는 게 옳은 용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7년 12월 30일 기자회견 중인 낸시랭 전준주 부부. 이종현 기자
지난 해 12월 30일 낸시랭과 그 남편 전준주 씨는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불거진 논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전 씨가 과거 장자연의 편지를 공개했던 왕첸첸과 동일 인물인지 여부, 그리고 최근 재판 중인 사건과 고소장이 제출된 사건 등 현재 진행형인 사건들의 실체입니다. 조금 확장하면 현재 진행형인 사건들과 함께 불거진 사실혼 관계였다는 여성도 포함됩니다.
이 부분에서 전 씨는 나름 명쾌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우선 재판중인 사건에 대해선 “사법기관에서 판단할 부분인 만큼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결 이전까지 그는 무죄로 추정됩니다. 강남경찰서 고소 사건에 대해서도 “강남서 고소건은 근거 없는 사실은 아닌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아직 고소장을 보지 못해 그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부분 역시 그의 발언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 수사가 이뤄지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정하고 기소될 경우 법원이 유무죄를 가리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강남서 고소 사건과 관련해 사실혼 관계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전 씨는 “비즈니스 관계로 부부로 보인다는 오해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과거 장자연 편지를 공개했던 왕첸첸이 본인이라고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실 이 자리는 낸시랭과의 결혼으로 인해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그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밝혔습니다. 기자회견 막바지에 그는 “전과자는 떳떳하게 연애하고 결혼하지 말란 법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낸시랭과 전 씨의 결혼을 축하드리며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관건은 ‘장자연의 편지’입니다. 이상하게 기자회견에서 전 씨는 확신에 찬 태도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우 단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 장자연 얘기만 나오면 즉답을 피하고 말을 돌리기만 했습니다. 답변을 대신한 이는 전 씨의 말을 100%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낸시랭이었습니다.
2017년 12월 30일 기자회견 중인 낸시랭 전준주 부부. 이종현 기자
모두발언에서 전 씨는 장자연 편지에 대해 “장자연 사건은 증거위조 사건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8개월로 사건이 종지부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 발언으로 마무리했다면 이부분 역시 명쾌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장자연 편지를 공개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로 인해 사법처벌을 받아 사건이 종지부됐다며 편지 위조까지 깨끗하게 인정했다면 이 사안 역시 이미 지나간 게 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 씨는 이어 “그로 인해 억울하다 뭐가 뭐다는 이 자리에서 다 열거할 수 없다”라며 기자의 관련 질문을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전 씨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잠시 그날 이뤄진 기자와 전 씨의 질의응답 내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기자 : 고 장자연 씨를 만난 적 있고 직접 편지를 받았다면 2011년 당시 사법부가 잘못 판단했다는 얘기인가요?
낸시랭 : 사실만 대답하세요. 진실만 얘기하세요.
전준주 씨 :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 희생이 치러졌으니 이런 부분이 다시 대두되길 원하진 않습니다. 왜 내 와이프가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결정적인 치명타가 된 이 사안 때문에 기자회견이 필요하다고 그랬습니다.
기자 : 장자연에게 받은 편지가 맞냐는 질문을 한 겁니다. 그 부분을 대답해주세요.
전준주 씨 : 필요하다면 기관에 제출하겠습니다.
기자 : 미공개 편지가 있다는 얘기도 사실인가요?
낸시랭 : 있습니다.
기자 : 장자연에게 받은 편지가 맞습니까?
낸시랭 : 맞습니다
다른 기자 : 저기요, 잠시만요. 고인에게 받은 편지가 맞고 만난 적 있냐고요? 본인 입으로 얘기해주세요?
전준주 씨 : 교도소 내부를 잘 아십니까? (이후 전 씨는 교도소 얘기를 이어가며 본인이 어떻게 감시를 강했고 미공개 편지를 어떻게 지켰는지를 한참 동안 얘기함)
다른 기자 : 질문에 대답만 해주세요.
사회자 : 오늘 기자회견은 간단히 팩트만 얘기하리고 돼 있었습니다. 그런 취지에 맞춰 답변해주세요.
전준주 씨 : 편지 창작? 그런 사실 없습니다.
낸시랭 : 이게 진실이에요
기자 : 정확한 나이가 궁금합니다.
전준주 씨 : 서류상으로는 80년생입니다. 그러나 실제 나이는 71년생입니다. 여기서 나이가 왜 중요합니까?
기자 : 80년생이라면 고 장자연 씨와 동갑인데 둘이 언제 만났으며 어떻게 오빠 동생 사이가 됐냐가 나이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고인과 만나 오빠 동생 사이가 된 겁니까?
전주주 씨 : (그 부분은) 과거 많은 언론사에서 다뤄졌던 기사에 담겨져 있다고 숙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을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어봐도 전 씨는 고 장자연 관련 질문을 대부분 회피했습니다. 사전에 그에게 관련 설명을 들은 것으로 보이는 낸시랭이 오히려 주도적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그만큼 남편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 씨는 “편지 창작? 그런 사실 없습니다” 정도의 발언을 한 게 전부로 보입니다.
이 부분 외에도 몇 차례 고 장자연 관련 언급이 있었는데 중요한 대목은 그가 언제 고 장자연을 만났는지 여부입니다. 이 질문에 전 씨는 “10대 시절에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81생인 전 씨는 20대 초반부터 수감 생활을 했기 때문에 20대 이후에는 만나기 힘들었을 겁니다. 10대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에 고 장자연은 전라북도 정읍에 살고 있었고 전 씨는 전라남도 강진에 살았습니다. 정읍과 강진이라는 물리적인 거리에 대해 물었지만 전 씨는 “전라남도 강진과 전북의 차이는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다시 또 다른 얘기를 이어가며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에 공개돼 화제가 됐던 ‘장자연의 편지’ 일부.
어떻게 만나 오빠 동생 사이가 됐는지에 대해선 “과거 많은 언론사에서 다뤄졌던 기사에 담겨져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럼 과거 기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09년 왕첸첸이 공개한 장자연의 편지를 보도했던 한 스포츠 신문의 기자가 쓴 기사에는 그가 편지를 통해 밝힌 두 사람의 인연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은 해당 기사의 일부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2003년 초에 자연이와 인연을 맺게 된 오빠입니다. 저는 자연이에게 만나고 연락할 때면 거의 들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자연이는 저에게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예민한 것까지도 스스럼없이 말하는 동생이었습니다. 자연이는 정말 마음이 여리고 착한 동생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해당 기사에는 또 다른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해당 매체 기자가 수감 중인 전 씨를 면회 신청을 통해 만났을 당시 들은 얘기입니다. 이어지는 당시 기사의 일부입니다.
[경찰 발표 후 사실 확인을 위해 당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전 씨를 면회 신청해 직접 만났다. 전씨는 “나는 2002년 성상납 수사 때부터 자연이를 알고 지낸 사람”이라고 말을 바꿨다. 만난 시기는 바뀌었으나 “자연이가 어려운 일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털어놨다”는 등 친밀도에 대해서는 편지와 동일하게 말했다.]
그런데 2011년 한 방송국을 통해 또 다시 왕첸첸이 공개한 장자연의 편지가 화제가 됩니다. 이 즈음 얘기는 또 달라집니다. 그 당시 기사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때 처음 공개된 편지 사본 내용에 따르면 장씨와 전씨는 1995년 겨울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처음 만나 알고 지낸 사이다. 편지에는 “오빠랑 처음 인연이 됐던 1995년 겨울, 기억나? 기억나지. 광주 조선대병원 설마! 오빠가 휠체어 뱅뱅이 돌다 내달린, 오빠하구 재미난 추억”이라고 적혀 있다.]
2017년 12월 30일 기자회견 중인 낸시랭 전준주 부부. 이종현 기자
전 씨는 지난 1999년부터 수감생활을 시작해 2003년 2월에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2003년 5월에 다시 수감생활을 시작해 장자연의 편지를 연이어 공개한 2009년과 2011년에도 계속 수감생활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2003년 초에 자연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는 첫 번째 주장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2013년 2월부터 5월까지는 사회에 있었고 짧은 기간이지만 그 즈음 처음 만나 친분을 쌓았을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주장인 ‘2002년 성상납 수사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주장은 성립이 어렵습니다. 그가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 수사가 실제 있었고 당시 검찰이 성상납까지 수사를 확대하려다 실패한 적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연관성을 대입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만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전 씨가 고인과 친분을 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1995년 겨울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만났다는 세 번째 주장입니다. 10대 시절에 만났다는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과도 일치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알았다는 2009년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주장과도 일치합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 역시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1995년이면 고 장자연이 16살 때입니다. 그리고 전 씨 역시 16살입니다. 그런데 전 씨는 자신이 71년생 왕진진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95년 그는 25살입니다. 전 씨는 10대 시절에 고 장자연을 만났다고 밝혔는데 71년생이라면 그의 10대는 1980년대이고 당시 고 장자연은 채 10살이 되기 전입니다.
전 씨가 80년생이라면 10대인 청소년기인 1995년 겨울에 고인을 처음 만났다는 얘기가 성립합니다. 반면 동갑인 두 사람이 오빠 동생 관계가 되긴 힘듭니다. 고인이 80년 1월생임을 감안하면 동갑일 지라도 고인이 한 학년 빠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고인이 누나 내지는 선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전 씨가 71년생이라면 1995년 그가 10대나 청소년이 아닌 20대 시절입니다.
그가 언급한 과거 기사에선 고 장자연과 처음 만나 친한 오빠 동생이 된 과정에 무려 세 가지나 됩니다. 결국 두 번 말을 바꾼 셈이죠. 게다가 서류상으로는 80년, 실제 나이는 71년 생이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얘기가 더욱 꼬여 버립니다. 실제 나이와 서류상 나이가 무려 9살이나 된다는 주장 역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고요.
결과적으로 전 씨의 주장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꼬여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말처럼 상식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출생의 비밀이 있고 이로 인해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 숨겨진 진실은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사기관은 일관되게 전 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09년 당시 최초로 그가 장자연의 편지를 공개했을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언론브리핑에서 “신원을 확인했고 어제 만났다. 고인과 일면식도 통화도 없다. 신문을 보고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다고 추측한 내용이라고 본인이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80년생 국내인으로 2003년부터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라며 “유족 의사에 따라 사자명예훼손으로 처벌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에 또 다시 장자연의 편지를 공개해 국과수 필적감정까지 이뤄졌지만 위조로 판명났고 이로 인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8개월의 사법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기자회견에서도 전 씨는 유독 고 장자연 관련 대목에선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말 돌리기에 집중했습니다. 심지어 낸시랭 측 지인인 사회자가 “이번 기자회견선 팩트만 얘기하기로 하지 않았냐?”고 전 씨의 답변 태도를 지적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와중에 전 씨의 말을 모두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낸시랭이 “사실만 대답하고 진실만 얘기하라”고 전 씨를 채근하고 대신 확신에 찬 대답을 했습니다.
왕진진은 2012년 ‘일요신문’에 편지를 보내 ‘장자연의 편지’는 사실이라며 추가로 공개할 편지가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최준필 기자
거듭되는 전 씨의 말 돌리기로 결국 기자회견은 10분여의 쉬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전 씨는 마침내 미공개 장자연의 편지를 공개했습니다.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고 테이블 위에 미공개 편지를 꺼내 놓고 몇 장 들고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기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필요로 하는 수사기관이 있을 지 여부는 모호합니다. 다만 고인의 유족이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에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낸시랭의 측근 지인들이 사회와 진행 등을 도왔습니다. 쉬는 시간 이후 사회자는 낸시랭이 고 장자연 관련 언급을 전혀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미공개 편지를 꺼냈을 때에는 만지지도 못하도록 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낸시랭은 전 씨의 말을 모두 믿고 이로 인해 확신에 찬 모습이었지만 사회자는 더 이상 낸시랭이 장자연의 편지와 얽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기자회견은 끝이 났습니다. 모순된 자기 논린에 빠져 즉답을 피하며 말 돌리기로 일관한 전 씨에겐 무한 신뢰를 보내는 부인 낸시랭이 있었지만, 이날 기자회견만 놓고 보면 그 무조건적인 믿음이 오히려 전 씨에게 독이 돼 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