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 사진=FC 서울
[일요신문] 새해를 앞둔 지난 12월 31일, K리그 이적시장을 뒤흔드는 대형 이적설이 흘러나왔다.
이적설의 주인공은 FC 서울의 ‘레전드’ 데얀이었다. 그는 서울에서만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다. 한 시즌 최다골, 3년 연속 리그 득점왕 등 숱한 기록을 세웠다.
큰돈을 받고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했지만 이내 친정팀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온 서울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팬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그런 그가 서울의 최대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후속보도가 이어졌지만 데얀과 서울의 결별, 수원과 접촉이라는 큰 틀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가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는 모습은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데얀. 사진=FC 서울
이에 팬들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팬들은 구단의 레전드 대우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고 데얀의 선택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데얀을 좋아해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했던 한 소녀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서울과 수원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양 팀은 K리그 내 가장 큰 라이벌로 꼽힌다. 이들의 관계는 FIFA 홈페이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라이벌 관계로 올라선 계기 또한 스타 선수의 이적이었다는 것이다. 서울과 수원의 관계에 불을 지핀 인물은 다름 아닌 현재 수원 지휘봉을 잡고 있는 서정원 감독이다.
안양 시절, 수원을 상대하는 서정원(왼쪽 붉은 유니폼). 연합뉴스
서정원 감독은 지난 1999년 프랑스 리그에서 국내로 복귀하며 친정팀 안양(서울의 전신)이 아닌 수원을 선택했다. 이 이적은 안양 팬들의 큰 분노를 자아냈다. 해외 토픽에서나 볼 수 있었던 ‘유니폼 화형식’이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이후로 치열한 라이벌 관계가 지속됐다.
공교롭게도 서울과 수원은 불과 1년 전 선수 이적을 성사시킨 바 있다. 수원에서 미드필더 이상호가 서울로 적을 옮겼다. 이적료가 지불된 구단 간 합의로 진행된 이적이었다. 역시나 팬들 사이에서는 이상호의 이적을 놓고 불이 붙었다.
이상호의 과거 서울 비하발언이 문제가 되며 양 팀 팬 모두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수원에서는 충성심을 보이던 선수가 라이벌로 이적한다며 비난했고 서울 팬들도 구단을 욕했던 선수의 이적은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어진 리그 개막전이 서울-수원의 슈퍼매치였다. 이상호는 선발 출전했고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서울 이적 이후 첫 수원전에서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펼치지 않은 이상호(가운데 8번). 연합뉴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경기가 이어졌다. 경기 내내 야유를 듣던 이상호가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친정팀에 대한 예우로 세리머니는 생략했다. 이후로도 헌신적인 활약으로 이제는 서울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선수가 됐다.
이 같은 라이벌 팀 간 이적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존재한다.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사례는 포르투갈 레전드 루이스 피구다. 피구의 이적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은 이유는 당시 그가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유명한 라이벌전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레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친정팀을 배신했다는 의미에서 이적 이후 벌어진 현상이 ‘유다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르사에서 피구의 존재감도 서울의 데얀 못지않았다.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바르사에서도 상징적 존재였던 그를 레알이 역대 최고 금액으로 데려갔다. 이적 허용 조항에 있던 금액을 모두 지불됐다.
피구 이적 이후 바르사-레알의 첫 맞대결은 전설적인 경기로 지금도 회자된다. 야유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전담 키커인 피구가 킥을 위해 코너 플래그로 다가가자 관중석에서 수많은 오물이 날아들었다. 당시 경기를 함께 뛰던 동료들은 “동전, 위스키 병 등 관중들이 던질 수 있는 모든 물건은 다 던졌다”고 회상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돼지머리. 이에 피구의 이적 후 첫 경기는 ‘돼지머리 투척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피구에 대한 바르사 팬들의 감정을 보여준 이 돼지머리는 한 박물관에 보존·전시되고 있다.
‘유다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루이스 피구의 이적. 사진=영국 주간지 ‘더선’ 홈페이지
각종 프로 스포츠에서 이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기는 정규 시즌 못지않은 눈길이 쏠린다. 때로는 스타들의 이적 소식에 팬들은 웃음을 짓기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지난겨울 프로야구에서도 데얀의 이적설만큼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한지붕(같은 구장을 쓰는) 잠실 라이벌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현수가 LG로 이적하는 사건이다. 마치 생물과 같이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이적시장을 지켜보는 일도 스포츠를 즐기는 또 한 가지의 방법이 아닐까.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