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섭 아마7단은 매주 수요일 서울 응암동 아마바둑사랑회 회관에서 성인대상 바둑강의를 진행한다.
[일요신문] 심우섭 아마7단은 ‘바둑계의 신사’라 불린다. 185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군살도 없고 얼굴도 잘생겼다. 바둑계에서 내로라하는 주당이지만(첫손에 꼽는 사람도 많다) 흔한 그 구설에 올라본 적도 없다. 그렇다보니 따르는 후배와 선배들도 많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바둑계의 마당발로 불린다.
그런데 전국대회 5회 이상의 우승 경력에 바둑방송 진행자, (사)대한바둑협회 이사, 내셔널바둑리그 2연패를 달성한 서울 푸른돌의 최고참 선수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가 소리 소문 없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바둑을 강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거 어린이바둑교실을 운영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바둑강의는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따라가 봤다.
응암동에 위치한 아마바둑사랑회(이하 아바사) 회관은 응암동 언덕 꼭대기 충암고에서 새절역 쪽으로 300여m 내려오다 오면 왼쪽 보습학원 건물에 위치해 있다.
지은 지 제법 되어 보이는 건물은 신식은 아니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게 된다. 바라다 보이는 왼쪽, 가운데, 오른쪽 벽면이 모두 오래된 바둑책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사카다 9단의 묘(妙) 시리즈를 비롯해 구하기 힘든 1950~60년대 옛날 서적까지, 바둑팬이라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지는 그야말로 ‘바둑 던전’이다.
소문난 애주가 심우섭 사범은 일단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후 강의를 시작한다.
“샘이(홍맑은샘 프로)가 어릴 때부터 보던 바둑책들이 대부분이에요.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아뒀죠”. ‘클럽A7’과 아마바둑사랑회의 대표 홍시범 씨는 우리나라 바둑대회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 아들 맑은샘 덕분에 바둑을 알게 됐지만 이젠 아들만큼 유명해졌다.
심우섭 사범의 아바사 수요강좌 ‘야화’(부제-유단자로 가는 길)는 그와 홍시범 대표의 컬래버레이션이다. 강좌는 심 사범이 맡았지만 후원은 홍시범 대표가 한다.
“바둑행사를 많이 맡으면서 한편으로는 바둑계에 많은 빚을 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갚을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심우섭 사범님을 앞에 내세워 시작하게 됐습니다.”
‘야화’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부터 아바사회관에서 열린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기자가 찾은 12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2017년을 마감하는 종강 날. 2018년 ‘야화’는 3월 첫째 주에 개강한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이 강좌를 좀 더 소개하면 80명 정도가 동시에 대국을 벌일 수 있는 장소여서 80명까지는 인원 제한이 없을 듯싶다. 수강료는 1회에 1만 원. 바빠서 오지 못 하는 날은 당연히 내지 않아도 된다. 1만 원을 지불하지만 강의 전 6시부터 간단한 식사와 주류가 준비되기 때문에 뭐, 남는 것도 없을 듯 보였다. 음식은 아바사의 박연숙 실장이 직접 제공한다. 소문난 애주가 심우섭 사범은 일단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후 강의를 시작한다. 이날 역시 마찬가지. 먼저 온 회원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그동안의 성취를 물으며 수업에 들어갔다. 단 술이 있는 장소이므로 미성년자의 출입은 제한된다.
심우섭 아마7단은 내셔널바둑리그 서울푸른돌 소속으로 팀의 2년 연속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12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참가한 회원은 12명 정도. 강의 시간 8시에 맞춰 오는 회원도 있었지만 대개는 오후 6시 무렵 나타나 일단 회원 간 자유대국으로 몸을 풀고 시작한다. 남녀 성비는 반반 정도. 대국이 끝나면 심우섭 사범과 함께 복기를 한다. 오랜 내공이 묻어나오는 그의 강평은 효과 만점. 듣고 있는 표정들만 봐서는 다들 한 급쯤은 는 듯한 얼굴이다.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의는 별다른 주제 없이 회원들의 질문을 받아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주력한다. 기력 분포는 다양하지만 인터넷 급수로 초단 정도면 무리 없이 강의를 듣고 어울릴 수 있을 듯싶었다.
2년째 강의를 듣고 있다는 장수연 씨는 “대국은 인터넷을 통해 즐길 수 있다 해도 막상 성인이 바둑을 배울 만한 곳은 없어 아쉬웠는데 명강사 심우섭 사범님이 바둑교실을 열었다고 해 빠짐없이 듣고 있다. 인터넷 대국 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을 모아 질문을 드리면 대번에 해결책이 나오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또 컴퓨터가 아닌 사람과 직접 수담을 나눌 수 있으니 더 좋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으니 바둑 못지않게 술도 함께 느는 것”이라며 웃었다.
바둑과 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다면 한번 들러봐도 좋을 곳 같았다. 거기 아마바둑사랑회.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