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화폐 리플의 약진이 눈에 띈다. 사진은 한 투자자가 가상화폐거래소를 통해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이러한 변화는 지난 12월 13일 정부의 가상화폐 투기 근절을 위한 규제안 발표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규제안 발표 이후 비트코인을 포함해 대부분 가상화폐의 시세가 떨어진 반면 리플은 하루 사이에 1리플(XRP)당 300원대에서 600원대로 2배가량 올랐다. 지난 몇 달간 추세를 살펴보면 리플의 상승세는 뚜렷하다. 불과 6개월 전 1XRP 당 300원에 불과했던 리플 가격은 지난 4일 오전 11시 기준 4400원까지 폭등했다.
업계에서는 리플 가격의 폭등의 원인으로 저렴한 가격과 그 속성에 따른 긍정적인 전망을 꼽는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 우리은행은 지난 12월부터 일본 SBI은행과 블록체인 기술 기반 해외송금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송금을 위해서는 국제결제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망을 이용해야 했다. 기존 스위프트망을 통한 해외송금은 여러 중계은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많이 들고, 시간도 1~5일 정도 걸린다. 반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은 송금정보가 분산되기 때문에 보안이 뛰어나며 중계은행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리플은 다른 가상화폐와 비교해 수수료가 싼 데다 리플의 블록체인 자체가 해외송금을 목적으로 개발돼 실시간 해외송금이 가능하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처음엔 리플 가격의 급등이 몇몇 소문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가고 있다”며 “국제 간 송금에서 고객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수수료 절감이기 때문에 리플이 주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염두에 둔다기보다 송금 시 송금정보를 분산시키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일본 특화 송금 서비스를 테스트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며 “아직 정부에서는 가상화폐를 통화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정부의 규제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가상화폐 송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신한·우리은행이 진행하는 해외송금 서비스 실험 외에도 일본 SBI은행을 운영하는 SBI홀딩스가 일본 신용카드사들과 리플 블록체인 기술 활용을 위한 컨소시엄을 발족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리플 가격 자체가 다른 가상화폐에 비해 저렴하다는 점도 관심이 증대되는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우리은행과 송금 서비스를 테스트 중인 일본 SBI은행은 산하에 ‘SBI 리플 아시아’라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 송금 서비스 솔루션을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업체를 두고 있다. SBI 리플 아시아는 SBI홀딩스 주식회사와 리플사가 주요주주로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SBI은행과 리플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해외송금 테스트 중으로 상용화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 간 송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리플의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해외송금은 거의 실시간으로 가능해진다. 리플사에 따르면 리플의 블록체인을 통해 해외로 송금할 경우 4초 정도가 걸리며 이는 다른 가상화폐인 이더리움(2분 이상), 비트코인 (1시간 이상)에 비해 훨씬 빠르다.
하지만 리플을 통한 해외송금이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 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박녹선 연구원은 “국가마다 외환거래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리플을 통한 해외송금이 법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운영사인 리플랩스의 역량이 중요할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가상화폐의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국내 거래소의 리플 가격이 해외에 비해 평균적으로 33% 정도 비싸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리플, 가상화폐냐 시스템이냐…중앙집권적 방식으로 채굴 불가능, 참여자 제한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리플랩스’가 개발한 리플은 국제 간 송금을 위해 만든 가상화폐로, 시장에서는 ‘XRP’라는 명칭으로 거래되고 있다. 국제 간 송금이 리플의 주목적이기 때문에 가상화폐의 개념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송금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1센트도 되지 않던 리플 가격이 최근 급등하면서 지금은 시가총액 2위의 가상화폐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유망 가상화폐들과 비교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지난 4일 기준 비트코인 가격이 1BTC당 2000만 원이 넘으며 이더리움은 1ETH당 120여만 원에 달하지만 리플은 1XRP당 4000원대다. 리플은 채굴이 불가능하다. 리플은 발행주체인 리플랩스가 중앙 운영 주체로서 리플을 발행·유통한다. 이 때문에 리플은 거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굴되는 코인은 공급량이 알고리즘적으로 결정돼 있지만 리플은 초기에 리플랩스가 1000억 개를 발행한 뒤 유통 수량을 조절하는 중앙집권적인 방식”이라며 “리플랩스가 1년에 몇 개씩 풀겠다고 공언하긴 했지만 리플랩스의 의중이 중요한 만큼 다른 코인에 비해 가격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거래소 빗썸 관계자는 “현재 시중에서 거래되는 리플은 400억 개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다른 가상화폐와 차별화되는 리플의 또 다른 특징은 빠른 해외 송금 속도다. 리플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다른 화폐와 달리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한다. 누구나 거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과 달리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금융기관으로부터 권한을 받은 기업과 개인만 거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보 동기화에 걸리는 시간이 적어 속도는 빠르지만 결국은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가상화폐라 부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