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이면계약(합의) 공방이 군사협정을 넘어 정권 공방으로 정치권에서 초강수를 두고 있다. 편집=백소연 디자이너.
[일요신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다. 당초 야권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부재를 거론하며, UAE 특사방문 진실을 밝히라고 공세를 펼쳤다. 이에 청와대와 여권은 MB 정부의 이면계약을 문제 삼으며, 전 여권인 자유한국당을 압박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임을 지적하고 나섰고, 여권은 다시 박근혜 정부의 비밀협약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논란의 책임을 두고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급기야 노무현 정부까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에 논란의 핵심은 과거 우리 정부와 UAE 간의 원전수주계약 당시 체결한 것으로 보이는 군사협정 등을 담은 이면합의, 즉 이면계약 의혹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이슈를 몰고 온 이면계약 논란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 특히, 국가 간 합의는 국가 간 입장차와 신뢰도 등 비밀스런 외교안보 특성상 국제분쟁 소지가 있어 숨겨진 비화들을 많이 담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완전히 속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만큼 필요에 따라 찌라시 수준의 가짜뉴스나 일부만 논쟁 소재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치권에겐 이보다 더 좋은 정쟁 소재가 있을까.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이면계약 논란을 되짚어봤다.
# UAE 특사 방문 의혹에서 비밀 군사협정 책임 공방으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UAE 특사 방문 관련 의혹이 한 달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9~12일 임 실장의 특사 파견 직후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에선 UAE가 한국과 국교단절까지 엄포한 사항이라며 특사 방문 목적을 밝히라고 공세를 펼쳤다.
청와대는 처음 파견 장병 위로 차원이었다고 했다가 야권의 공세에 UAE 측과 긴밀한 협력 등을 논의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어 여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UAE 측에 이면 합의한 내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순식간에 전-현 정부 간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당사자로 지명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면 계약은 없었다”며 “말 안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말을 아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UAE 방문 관련 사진들. 연합뉴스
이에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UAE와 200억 달러 규모의 원전 건설 수주과정에서 UAE에게 이면으로 군사협정을 맺었다가 국내외 파장을 우려해 한 발 물러서던 것을 박근혜 정부가 양해협약 등으로 진전시켰다고 주장했다. 임 실장의 특사파견은 UAE가 전 정부에서 합의된 군사관련 협정 이행 마찰과 관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외교 마찰이라는 의미인데 자유한국당은 노무현 정부시절 이미 UAE와 군사협정이 있었다고 불을 다시 지폈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방위원장은 “UAE와의 군사협정은 이명박 정부가 아닌 노무현 정부 시절 체결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MOU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체결한 협정을 강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여권은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T-50 등 군수지원 협약에 불과 하던 것이 이명박 정부 때는 대대적인 군사협정을, 박근혜 정부는 군사지원 약속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같은 의혹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지난 정부 시절에 UAE와 채결한 군사협정 공방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이면계약 공방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합의 TF팀을 구성해 박근혜 정부 때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절차와 내용이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동안 의혹으로 제기되어온 이면합의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발표된 합의 외에 비공개된 합의문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7일 확인된 이면합의에는 위안부 관련 단체 설득과 해외 소녀상 건립 지원 방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머무는 나눔집은 윤 전 장관을 위증죄로 고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병기 전 비서실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모습(왼쪽)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이 소식을 듣고 우는 모습(오른쪽). 연합뉴스
# ‘IMF외환위기-쇠고기협상’ 등 굴욕외교 책임 공방에서 대선 정국 히든카드 역할도
더 먼 과거로 돌아가 보자.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불공정계약 논란도 이면계약 문제였다. 당시 대선을 바로 앞둔 1997년 12월 3일 여권이었던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은 IMF와 이면합의를 한 사실이 여론에 일부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른바 국부유출 이면합의서란 이름으로 불러진 이면계약 내용은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국민 신용불량 사태, 주식시장을 통한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해외 매각 단행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면계약 책임은 한나라당의 침묵 속에 후보시절 이면계약 내용에 대해 반대를 표명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IMF와 이면계약에서 특별한 건 없다고 강조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쇠고기 수입 관련 이면합의를 해 놓아 후임 대통령인 자신으로선 개방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해 한미 FTA 쇠고기 협상 논란을 다시 지피기도 했다. 쇠고기 협상 파동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중 최대 위기로 손꼽힌 사건으로 한미 간 협상 전면 무효와 이면합의 공개를 요구하는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면합의 논란 당사자가 전 대통령의 책임으로 전가한다는 비판과 함께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종훈 전 의원(당시 새누리당)은 “이면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없었다”고 반박하며, 일단락되기도 했다.
이면합의 논란은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12년 18대 대선정국을 휘몰아쳤던 NLL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대선 두 달 전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정문헌 의원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과 이면합의를 김정일에게 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었고, 이로 인해 여야 간 NLL 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NLL 수호 결의문 제창” 2015년 6월 29일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이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서 NLL 수호 결의문을 제창하고 있다.(위=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12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의사진행 발언 때 일정 협의 없이 자유한국당에서 일방적으로 회의를 개회했다며 항의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자유한국당측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UAE특사에 대한 문제를 질의하기 위해 열었다고 주장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일체의 안건 협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아래=연합뉴스)
대선 무렵 박근혜 후보는 NLL 논란을 야당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정쟁으로 비화된 것은 대선 직전이었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터진 직후 수위가 한층 높아지게 된다. 선거 3일 전에는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단상에 올라 NLL 대화록 발췌본 일부를 그대로 낭독함으로써 대화록 불법유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결국 남북 갈등 위험을 감수하고도 이면합의 등 NLL 대화록 공개 여부에 정치권의 초점이 맞춰지자 ‘대화록이 실종됐다’는 여당의 주장으로 ‘대화록 폐기’ 책임 공방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여야가 9개월간의 공방을 뒤로 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과 논란은 존재한다. 현재 이 논란은 검찰에서 국정원을 상대로 NLL 대화록 유출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김대중 정부시절에도 한일 어업협정과 대북송금 사건 등 이면 합의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였다.
한편, UAE 공방은 야3당 공조 하에 국정조사를 포함해 국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명확한 사실확인과 책임 소재가 중요하지만 지방선거 등 정치적 노림수를 위해 정쟁이 심화되거나 의혹이 더 확산될 조짐도 크다. 결국 국익과 국민에게 상처만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