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사건사고로 구설수에 오른 tvN 드라마 <화유기>. 사진=tvN 제공
tvN측은 CG작업 지연으로 인한 방송사고였다고 밝혔다. 앞선 방송 동안 2화 편집을 마무리해서 방영 시간에 맞춰 송출하려다 결국 이런 사달을 내게 됐다는 것.
이미 5년 전에도 tvN은 비슷한 방송사고를 낸 적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18화 방송 도중, 대체 영상 클립을 내보냈던 것. 본 방송이 시작하기 전 아직 전체 편집을 다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편집이 완료된 앞부분 테이프를 먼저 보내고, 후속 작업을 진행하다 시간을 맞추지 못한 탓이었다.
한국 드라마는 제작 여건상 방영 전날 또는 당일에서야 촬영과 편집을 완료해 넘기는 이른바 ‘생방(생방송) 드라마’가 많다. 이런 생방 드라마 제작으로 발생하는 방송 사고는 대부분 쪽대본으로 분량이 늘어났거나 추가적인 편집이 요구되는 방영 중후반부에 발생한다. <응답하라 1994>의 경우도 종영을 3회 앞둔 후반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화유기>는 방영을 일주일 앞둔 지난해 12월 중순, 고작 4화 가량의 분량만을 촬영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퇴마 판타지’를 다루고 있어 다량의 CG작업이 필수적인 드라마를 일반 드라마의 촬영 비축 분량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 하게 제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초반부터 방송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게다가 2화 방송 전날인 지난해 12월 23일에는 미술 스태프의 추락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더 큰 논란을 낳았다. 이처럼 시간에 쫓기는 열악한 제작 환경이 결국 중대한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
MBC아트 소속 미술 스태프 A 씨는 이날 새벽 1시경 <화유기>의 제작사인 JS픽처스 소속 미술감독의 지시에 따라 촬영세트장 천장에 추가로 샹들리에를 달다가 3m 아래로 추락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스태프 추락 사고가 발생한 경기 안성시 <화유기> 촬영 세트장 중 ‘비밀의 방’. 사진=언론노조 제공
지난 4일 전국언론노조는 <화유기>의 제작 현장 추락사고 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노조는 “A 씨의 작업은 당초 계획에 없던 조명 설치”라고 지적하며 “제작 현장을 조사한 결과 세트장은 배우들도 각종 자재에 걸려 넘어질 뻔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으나 현장 책임자들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당시 A 씨에게 샹들리에 설치를 지시한 JS픽처스 미술 감독은 “설치를 하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조명등을 달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고지’했을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샹들리에 설치는 용역 계약에 포함되지도 않은 일이었으며 당사자가 야간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돼 있어 다음 날 설치하겠다고 부탁했음에도 설치를 강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이 지난해 12월 28일과 지난 1일, 3일 세 차례에 걸쳐 <화유기>의 세트장 현장 근로 감독을 실시했다. 현장 조사 결과 촬영 중지 명령까지는 내려지지 않았지만, 천장 위로 올라가야 하는 모든 작업의 중지, 목재 사다리 사용도 금지됐다. 이와 더불어 고용노동부는 JS픽처스와 CJ E&M 측에 용역 계약서 상 업무의 범위와 책임, 이행 주체를 명확히 할 것도 주문했다.
JS픽처스는 CJ E&M이 7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다. CJ E&M은 이미 지난 2016년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 이한빛 씨 사망 사건에 휘말렸던 바 있다. 이 씨가 상급자의 폭언과 과도한 업무로 사망에 까지 이르자, CJ E&M 측은 도리어 그 모친에게 이 씨의 근태가 불성실했다며 다그치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고자세를 보였던 CJ E&M은 보도를 통해 사건이 일파만파 퍼진 뒤에야 유족에게 사과했다. 사건 발생 후 8개월 만의 일이다. CJ E&M은 간담회를 열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며 방송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과제를 직접 설정하고 실천할 것을 공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화유기> 사태로 CJ E&M의 사과와 공약이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가장 먼저 재발 방지와 사과의 뜻을 밝혀야 할 제작사 측이 tvN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사건을 무마하려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 더 큰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JS픽처스 고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화유기> 사건사고와 관련한 질의에 “무슨 사건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사건 같은 것은 없었다”라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관련 입장 표명이나 앞으로의 촬영 방향에 대해서도 “더 이상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화유기>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우리가 답할 사안이 아니다. 제작사가 아니라 tvN에 물어라”고 말기도 했다. 이들은 <화유기>의 제작과 언론 응대 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임직원들이다. 이들의 발언은 사건을 둘러싼 JS픽처스 내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내부의 고위 관계자들의 반응이 무성의와 면피로 일관되고 있는 가운데 JS픽처스는 5일 돌연 공식입장을 내놓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안전사고의 위중함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 “외부업체 및 비정규직 제작인력을 포함한 제작 스탭의 근무환경과 안전사고 방지 노력 등 국내 드라마 제작구조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tvN과 JS픽처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공식입장 발표가 6일 방송 재개를 앞두고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돌리기 위한 행보로 풀이하는 시선도 많다.
그러나 연이은 CJ E&M의 ‘드라마 제작 잔혹사’를 눈여겨 본 시청자들이 이들의 사과를 표면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미 앞선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씨 사망 사건에서도 CJ E&M은 ▲제작인력의 적정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 수립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및 권고 등 9개의 드라마 제작구조 개선 실천 사항을 늘어놨던 바 있다. 이에 더해 이번 <화유기> 사건 이후로는 ‘전체 방송 스탭의 최소 주 1일 이상 휴식을 보장(최대 주 2일)’이라는 파격적인(?) 개선 사항을 내놨다. 결국 CJ E&M은 앞선 <혼술남녀> 사건으로 마련했던 실천 사항조차 전혀 지키지 못했고, 같은 사건사고와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제작팀 관계자는 “지난해 6월 CJ E&M은 이한빛 씨 사망 이후 방송 제작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고작 6개월 만에 또 다시 사건이 발생했다”라며 “허울뿐인 주장이나 면피용 사과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언론노조는 지난 4일 JS픽처스, 촬영 세트제작업체 라온, 추락사고 피해자가 소속된 MBC 아트의 대표와 책임자들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고, <화유기>의 박홍균 감독과 미술감독을 진정했다. 혐의는 근로기준법 위반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