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놓고 여야는 연일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가운데 여권 내에선 임 실장과 관련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어 관심을 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레바논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중인 동명부대를 방문, 장병들의 노고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전하고 문 대통령의 서명이 있는 벽시계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청와대의 석연찮은 해명과 말 바꾸기, 과거 정권 때 이뤄진 UAE와의 군사협정, MB 뒷조사설 등 정치권은 여러 사안을 놓고 맞붙었다. 폭로가 이어졌고, 그때마다 새로운 내용들과 의혹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핵심 당사자 중 한 명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월 2일 “내가 이야기하면 폭로여서 이야기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수습한다고 하니 잘 정리될 것”이라며 애매모호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권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잘못된 일을 우리가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정치권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주가 바로 임 실장이라는 것이다. 이번 이슈로 임 실장의 정치적 무게감과 체급은 몇 단계 올랐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이를 노리고 임 실장을 특사로 보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UAE 방문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득실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특정 정치인이 한 달 넘도록 주요 뉴스를 차지하고 있다. 종편에선 하루 종일 나오더라.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임 실장으로선 전국구급 인지도를 얻게 됐다”면서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특사 방문을 했다는 것은 운동권 이미지를 벗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임 실장의 향후 정치행보에 득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
여권 인사들은 이러한 임 실장을 바라보면서 야권 공세에 대한 방어와는 별개로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우선 비문 진영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임 실장 개인은 정치적으로 위상이 높아졌을지 몰라도 정권 차원에서 봤을 때 이번 UAE 논란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 임기 첫해 외교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는데 이를 더 악화시킬까 우려스럽다. UAE 방문 후 청와대 말 바꾸기로 인해 지지율이 조금씩 빠졌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비문 진영의 우려는 6월 지방선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비문 의원은 “초기 대응에 실패해 일을 키웠고, 자꾸 감추려하니 오해가 생겼다. 야권에 괜한 빌미를 준 셈이다. 야권이 자기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것을 알면서 ‘UAE 게이트’라며 총공세를 펴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과 문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트릴 기회로 보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생각했더라면 좀 더 빠르고 구체적인 해법을 내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엔 ‘임종석 차출론’도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문계로 꼽히는 일부 광역단체장 측 관계자들은 몸값이 뛴 임 실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그동안 임 실장은 서울시장 등의 후보군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이에 대해 임 실장은 “대통령 국정운영을 돕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어 여지를 남겨둔 상황이다. 비문 내부에선 임 실장이 출마할 경우 이번 UAE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판알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주류인 친문 의원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청와대 2인자인 비서실장과 관련된 언급은 곧 문 대통령을 향하는 것과 다름없을 뿐 아니라 자칫 집안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친문 인사들 대부분 답변을 꺼렸고, 익명을 원했다. 그러나 임 실장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현 정권 주류 진영에서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 친문 의원은 “보안이 필요한 내용이긴 하지만 나를 비롯해 동료들 상당수가 이번 사태에 대해 모르고 있더라. 아예 정보가 차단됐다. 임 실장이 왜, 어떻게 해서 특사로 갔는지 모른다. 여권, 그것도 주류 의원들에게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물으면서 “임 실장에게로 과도하게 힘이 쏠리고 있는 부분에 대해 친문 내부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친문 진영에서 임 실장 독주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대선 캠프에서 문 대통령을 도왔던 한 친문 핵심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임 실장은 동지다. 문 대통령 성공이라는 목표 아래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비서실장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 자꾸 이런 식으로 정치권 논쟁에 휘말리면 문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 관계자는 “임 실장도 분명 정치적 목표가 있겠지만 지금은 본인을 드러낼 때가 아니지 않느냐. 출마설 역시 확실하게 선을 긋던가. 임 실장과 관련해 뒷말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임 실장은 현 정부 신주류로 급부상한 운동권 세력의 대표적인 인사다. 명실상부 청와대 2인자로 꼽히는 임 실장은 지난 대선 캠프에서 좌장 역할을 맡으며 문 대통령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여권 성골인 ‘친문’과는 거리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운동권 신주류와 문 대통령 참모 출신들이 주를 이루는 친문 간 불협화음 가능성이 끊이질 않았다. 친문 진영이 임 실장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의 독주를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 때문이었다.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양정철 전 비서관의 복귀설 역시 이런 배경과 맞물리며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문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양 전 비서관이 복귀를 검토 중인데, 그 이유가 임 실장과의 갈등설 때문이라는 게 골자였다. 이에 대해 양 전 비서관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면서 가라앉았지만 임 실장을 향한 친문 내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장면으로 꼽힌다.
앞서의 친문 핵심 관계자는 “(임 실장과의 갈등설은) 너무 앞서 나간 소설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 또 임 실장도 친문 아니냐. 친문 인사들 대부분이 운동권인데 굳이 편을 가르는 게 우습다”면서 “임 실장을 향한 불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는 힘겨루기 차원이라기보다는 국정을 대하는 철학의 차이일 것으로 믿는다. 향후 조율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