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한 가상화폐 거래소 앞에서 시민이 가상화폐 시세 전광판을 보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5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가상통화 취급업자 관련 은행계좌 수 및 예치금액’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12일 기준 농협은행 잔고가 은행 중 가장 많았다.
농협의 가상계좌 발급은 단 2개였지만, 계좌 잔액이 7865억 원에 달해 국내은행 중 단연 1위였다. 농협은 자산 등 규모 면에서 국내 은행 중 5위 수준이다.
가상계좌는 대량의 집금·이체가 필요한 기업이나 대학 등이 은행으로부터 부여받아, 개별고객의 거래를 식별하는 데 활용하는 법인계좌의 자 계좌다. 1개의 법인계좌 아래 거미줄같이 많은 가상계좌가 존재한다.
농협은 가상계좌 발급 건수는 2개로 가장 작지만, 그 2개가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과 3~4위권 대형사인 코인원이다. 이들의 주거래은행이다 보니 계좌 잔고가 가장 많은 것이다. 가상계좌 수는 수백만 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상화폐 가상계좌 잔액 기준 2위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다. 잔고는 4920억 원이고, 계좌 수는 30개에 달한다.
기업은행은 최근 두 달간 급부상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주거래은행이라는 점이 잔고 급증의 배경으로 꼽힌다.
마찬가지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역시 가상화폐 가상계좌 잔액이 455억 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은 코인원에 가상계좌를 터주고 있다.
시중은행 중에선 국민은행이 계좌 잔고 3879억 원으로 가장 많다. 계좌 수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18개를 내주고 있다. 이어 신한은행이 잔고 2909억 원(24개), 우리은행 잔고 642억 원(34개)로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12일 기준 은행권의 가상화폐 가상계좌 잔고는 2조 670억 원에 달한다. 이는 1년 전 322억 원 대비 64배 늘어난 규모다.
은행들은 가상계좌를 발급해주고 거래에 따른 예금 유치 및 수수료 수입 등을 벌어들이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가상계좌 운영에 따른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이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 투기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와중에 기업은행, 산업은행과 같은 공적 은행들까지도 이 부분에서 많은 이익을 취한 것으로 추정돼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박용진 의원은 “가상화폐의 투기과열, 불법자금거래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도 은행들이 이에 편승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것은 사실상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과 다름없다”며 “은행 자체적인 보호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은행들은 지난해 말 정부 대책에 따라 가상계좌 신규 발급과 기존 가상계좌의 신규 회원 추가를 차단했으며, 기존 거래자는 실명 전환할 계획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