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낸시랭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듯 합니다. 연예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그 선을 넘은 이는 바로 스티브 유, 유승준입니다. 국내 연예계 컴백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입국조차 못하는 상황의 그 역시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그런데 낸시랭은 스티브 유보다 더 멀리 가버린 모양세입니다.
애초 기자는 그의 남편 전준주 씨에 대한 기사와 칼럼 등을 작성하며 낸시랭에 대해서는 깊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낸시랭은 남편을 100% 신뢰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매체들도 비슷한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논란 초기에는 전 씨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과 과거 등을 행여 낸시랭은 모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의 매체들은 있었습니다. 이런 사안을 모르고 혼인신고를 한 것이라면 분명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기자회견에서 낸시랭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남편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지만 낸시랭이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도널드 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문 내지는 편지를 쓰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 한국의 인권 상황을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글은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한국인들도 충분히 열린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가 한국을 ‘인권도 없는 나라’라고 얘기한 것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가 있고 정당한 지적이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집니다. 정당한 지적이 아니라면 미국인의 한국 비하일 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편지에서 낸시랭은 크게 일곱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요약해서 전달하자면 첫째는 대한민국이 인권보호에 대해서 기본상식도 없는 나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멍하니 사태를 구경만 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둘째는 이 같은 일이 미국 사회에서 벌어졌을 경우에 대한 가정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은 공인이지만 남편은 비공인 신분인 일반인인데 매스컴이 두 사람의 인격과 행복추구권을 조금도 따지지 않고 오직 클릭수 올리기와 가십기사 생산만 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네 번째는 이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악플러와 가십 기사 쓰기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입니다. 다섯 번째는 장자연 편지 관련 내용으로 힘 가진 자에 말은 진실이 되었고 남편은 힘이 없기에 거짓이 됐다는 주장입니다. 여섯 번째는 ‘의심스러운 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소송법의 법언을 중심으로 남편의 과거 강도강간 사건과 장자연 편지 관련 판결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사실혼으로 주장하는 황 모 씨를 공격하는 내용입니다.
크게 정리하자면 자신과 남편에 대한 부당한 보도 행태를 보인 언론, 오랜 수형생활을 해야 했던 남편에게 잘못된 유죄 판결을 내린 사법부, 그리고 사실혼 관계 주장 여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이 ‘인권보호에 대해서 기본상식도 없는 나라’라는 호소입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낸시랭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명으로서, 또한 가십성 기사나 쓰는 대한민국 기자의 한 명으로서 몇 가지 답변, 내지는 충고, 또는 지적을 해볼까 합니다.
우선 ‘대한민국이 인권보호에 대해서 기본상식도 없는 나라’라는 부분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라면 충분히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정말 낸시랭과 전 씨가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지 여부인데, 일단은 주관인 판단일 수도 있어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멍하니 사태를 구경만 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먼저 국가인권위에 도움을 요청하긴 했나요? 대한민국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을 미국인이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공인과 비공인, 그리고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먼저 두 분 다 공인은 아닙니다. 다만 낸시랭은 방송 활동 등을 통해 유명인의 신분이며 전 씨는 일반인일 수 있지만 왕진진, 또는 왕첸첸은 장자연 편지 위조 공개한 사건으로 역시 유명인입니다.
물론 연예계 활동을 하며 전혀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은 일부 연예인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려면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게다가 낸시랭은 <용감한 기자들>이라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기자들이 출연해 각종 취재 후일담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출연료를 받고 수익활동을 했던 그가 지금에 와서 자신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만 ‘인권과 행복추구권리를 조금도 따지지 않는 클릭수 올리기와 가십 기사 생산’이라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사법부의 판단까지 문제 삼은 대목은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남편의 수감생활을 ‘억울하고 처참한 감옥철창 생활’이라 표현하며 “과거 강도강간 사건 두 건은 여러 변호사와 상담을 해본결과 이해가 안 되는 판결”이라는 주장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완벽하게 뒤흔드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낸시랭은 “유죄 판결이 내려질 수 없는 정황 증거로만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말로만 발전된 대한민국에 사법부에 행정처분 절차인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이어집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인권도 없는 나라’에 ‘말로만 발전된 나라’이며 ‘사법부 행정처분 절차까지 문제가 있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입니다. 강도강간의 경우 피해자에겐 두고두고 정신적인 고통과 트라우마가 남기 마련입니다. 남편을 믿고 사랑하는 것과 두 피해자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파헤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말 잘못된 판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재심을 청구해보길 권합니다. 낸시랭으로 인해 ‘사법부 행정처분 절차까지 문제가 있는 나라’가 돼 버린 대한민국에는 재심이라는 제도가 있고 이를 통해 억울한 사법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판결’이라고 말한 변호사가 여려 명 있다고 하니 그분들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뒤 두 사건의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무작정 무죄를 주장하면 두 피해자의 인권을 훼손하는 것이 됩니다. 미국 사회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선 재심 등의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사안을 처리합니다.
장자연의 편지에 대해서도 “두 번째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힘 가진 자에 말은 진실이 되었고, 힘을 확보하지 못한 제 남편은 힘이 없기에 거짓이 됐습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장자연의 편지와 관련해 직접 전 씨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말만 돌리는 행태를 보였고 오히려 낸시랭 씨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단순히 이게 미공개 편지라고 꺼내서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2011년에 국과수 필적감정까지 받고 위조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에서 던진 질문인데 최소한 둘이 언제 처음 만나서 그런 깊은 인연의 관계가 됐는지 정도만이라고 명확히 대답해주면 될 일입니다. <관련 기사 ‘모순된 자기 논리에 빠진 왕진진, 독이 된 낸시랭의 무한 신뢰’>
마지막으로 사실혼 관계 주장 여성과의 논란에 대해선 사법부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재판 중인 사건과 고소 사건 등은 현재진행형이며 분명 대한민국 사법당국은 낸시랭 씨가 언급한 것처럼 ‘의심스러운 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다룰 것이라 믿습니다. 당연히 의심스럽지 않은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라면 무혐의 또는 무죄라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낸시랭의 편지 마지막 부분에선 “역사상 보릿고개라는 아픈 DNA가 있는 만큼 배고픈 것은 나름 잘 참는데 남이 잘되는 것은 보는 것은 참기 힘들고 배 아파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인의 한국 비하가 클라이막스에 오른 대목으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낸시랭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명확한 사과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낸시랭이 미국인이라는 부분은 과거에도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바로 강용석 전 의원과의 SNS 설전 때문인데 그 즈음 낸시랭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시 기사를 그대로 소개합니다.
[강용석 의원이 트위터에 “국적도 미국인이면서 내정간섭 하지마라”이렇게 트윗하셨더라구요. 그 분 뿐만이 아니라 몇몇 누리꾼들의 비판의 핵심이란 게 그것 밖에 없어요. 근데 우리는 세계인이잖아요. 심지어 저는 피와 살이 한국인이에요.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을 위해 투표독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우리나라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왜 표현 못해요? 또 우리가 외국의 어느 나라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 나라의 무언가가 잘 못되어 갈 때 혹은 잘 되어 가게 하기 위해 왜 표현할 수 없나요?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당시만 해도 여론은 좋았습니다. 투표독려는 분명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이지만 피와 살이 한국인인 그는 한국 사회에서 팝아티스트와 방송인 등으로 활동하며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활동해왔습니다. 몇 차례의 SNS 설전을 거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병역 기피로 한국 입국조차 불허된 미국인 스티브유와 달리 내시랭은 한국 사회에서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대중의 사랑과 존중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부분은 최근 공개된 낸시랭 인터뷰 기사입니다. 해당 인터뷰는 혼인신고 사실을 공개하며 논란이 야기되기 전에 이뤄졌습니다. 여기서 낸시랭은 2018년에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그 인터뷰 기사의 일부입니다.
[10여 년간 한국에서 할 만큼 다 해봤음에도 자신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인 것 같다며 2018년 중 한국을 떠날 거라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어느덧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인생 2막을 앞두고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다”며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 어디로든 떠나 그곳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무래도 해외에는 낸시랭이 혼자 가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 그는 남편 전 씨의 과거 범죄행위에 대해 ‘과거 강도강간 사건 두 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정확히 ‘특수강간’이죠. 이는 미국의 입국 심사 과정에서 비도덕적범죄(Crime Involving Moral Turpitud)에 해당됩니다. 모든 전과자가 외국 비자를 못 받아 해외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비도적적범죄 전과자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국가가 비도덕적범죄의 기록이 있으면 입국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대한민국이지만 적어도 ‘피와 살이 한국인’인 한 미국인이 미국 대통령에게 ‘인권도 없는 나라’라고 비하해도 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과 해결 방법 등을 확보해 놓은 국가입니다.
남편과 함께 한국을 떠날 생각이라면 먼저 재심을 통해 과거 판결이 잘못됐음을 입증하길 권합니다. 현재 상황이라면 낸시랭의 고국인 미국에서도 남편 전 씨의 입국을 금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인권도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인 남편을 통해 멍하니 사태를 구경만 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에 도움을 요청하기 바랍니다.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언론중재위를 통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혼 주장 여성을 비롯해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고소 사건은 사법기관이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이니 공판과 수사에 성실히 임하면 됩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