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 이병철 KTB투자증권 부회장. 사진=KTB투자증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그의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90년대 후반 30대의 권 회장은 이미 ‘기업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널리 알려졌다. M&A 중개기관인 한국M&A를 설립하고 IT, 벤처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올렸다. KTB를 인수한 것은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옥션과 잡코리아 등 지분매각으로 실탄을 쥔 권 회장은 1999년 기술개발 촉진을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 과학기술처 산하 국영기업인 한국과학기술금융을 인수한다.
이 회사의 이름을 KTB자산운용으로 바꿨다. 또한 민영화 후 구조조정회사 투자, 사모펀드 운용을 주로 맡다가 증권사 전환에 도전한다. 하지만 증권사 전환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원래 권 회장의 증권업 진출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권 회장은 키움증권 설립 준비를 마쳤지만 냉각캔 사건으로 인해 당국의 허가를 얻지 못했다.
98년 권 회장의 또 다른 회사인 미래와사람에서 따기만 하면 시원해져 냉장고가 필요 없는 냉각캔을 개발했고, 이를 외국업체와 1년에 1억 달러 수출로열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주가는 5000원에서 4만 원까지 급상승했다. 하지만 당초 회사가 발표한 내용과 달리 냉각캔은 상용화되지 않았고 1억 달러 로열티 계약도 없던 일이 됐다. 99년 금융감독원은 권 회장을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고발했지만 권 회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에 얽힌 권 회장은 설립 인가를 받지 못했고 키움증권은 다우기술에 양보해야 했다. 2008년에야 KTB투자증권은 뒤늦게 증권사로 전환했다. 이때부터 KTB는 업계 스타를 대표로 초빙하는 전통을 만든다. 하지만 스타들은 채 1년 남짓 만에 떠나 뒷말만 무성했다. 사실 이때부터 권 회장이 회사를 경영인에게 맡긴다는 추측은 계속돼 왔다.
먼저 증권사로 전환한 해인 호바트 엡스타인 전 KTB투자증권 대표가 영입됐다. 호버트 대표는 골드만삭스 아시아 이사, 골드만삭스 한국지사 대표 등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인물이다. 그는 60만 주가 넘는 스톡옵션이 부여됐고 선도적인 투자은행으로 KTB를 키우겠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엡스타인 전 대표의 사퇴 이유로는 권 회장과의 불화설이 가장 유력한 설로 꼽혔다.
2013년에는 ‘소로스의 남자’ 강찬수 전 KTB투자증권 대표가 영입됐다. 지난 1999년 조지 소로스가 강 전 대표를 깜짝 발탁해 서울증권 공동대표로 임명하면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KTB투자증권은 강 전 대표를 영입하며 KTB금융그룹 경영 총괄 부회장직과 자사주 155만 1040주 중 30만 주를 지급하는 등 파격적 대우를 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역시 1년 만에 그도 사의를 표하고 떠났다.
2016년에는 이병철 KTB투자증권 부회장이 영입됐다. 영입 석 달 전 권 회장과 이 부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주요 내용으로 한 주주 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 계약이 오늘날 권 회장의 퇴장을 만들어냈다.
이 부회장의 가장 큰 후원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이 부회장이 세운 최초의 민간 부동산신탁회사인 다올부동산신탁을 하나금융이 인수토록 했고, 이 거래로 이 부회장은 돈방석에 앉게 된다. 또한 이 부회장은 하나금융그룹에서 부동산그룹장을 맡게 됐다. 이후 이 회장은 ‘김승유 사단’의 일원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이 KTB에 취임한 이후 KTB투자증권에 영입된 사람 대부분이 김승유 사단이었다.
이 부회장과 권 회장의 갈등의 주요 사안으로 인사 문제가 꼽힌다. 이 부회장의 각종 인사 단행에 권 회장이 제동을 걸면서 갈등이 시작됐다는 설이다. 2016년 초 약 5% 지분을 보유한 이 부회장은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2017년 9월 16.39%까지 올렸다. 이에 권 회장도 주식을 매입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듯했다.
이때 세간에는 KTB투자증권 내부에 기존 KTB투자증권 인력 300여 명과 이 부회장이 영입한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권 회장과 이 부회장의 두 파벌이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KTB투자증권 관계자는 “한 쪽은 전략통(권 회장)이고 한 쪽은 영업통(이 부회장)이기 때문에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두 조직은 한 쪽은 전통 IB고 한 쪽은 구조화금융 쪽이다 보니 문화나 성향이 다른 게 많았다. 그런 다름을 맞춰가는 과정이었지 이 부회장이 영입된 지 1년 반밖에 안됐는데 파벌 이야기는 너무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9일 권 회장은 돌연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제3자에게 넘기는 계약을 체결하려고 시도했다. 일각에서는 권 회장의 지분 매각을 두고 최근의 검찰 조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권 회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선 검찰 조사에서 충실히 소명하려 한다. 그렇지만 검찰 조사와 언론 보도가 상당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준 건 사실이다. 실질적으로 여러 가지 아픔과 고통, 억울함 이런 것들을 만들어 냈다”고 답했다.
어쨌건 권 회장이 제3자에게 넘기려고 했던 계약은 이 부 회장에게 막혔다. 이 부회장이 계약 조건 중 하나인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다. 우선매수청구권은 권 회장이 제3자에게 주식을 팔 때 이 부회장이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이 부회장에게 팔아야 하는 조항이다. 하지만 당초 권 회장은 이 부회장의 우선매수청구권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제3자에게 매각할 때 까다로운 부대조건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갈등이 심화됐지만 결국 이 부회장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권 회장은 퇴장하게 됐다. KTB투자증권 관계자는 “권 회장은 사실상의 창업자나 다름 없다. 때문에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모회사와 자회사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의 신분을 3년간 보장하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이를 이 부회장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물론 권 회장의 퇴진이 당장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약 두 달 뒤 주식 매각 계약이 체결되어야 하고 넘겨 받는 이 부회장이 대주주 자격심사를 받고 승인이 나면 최종적으로 이 부회장이 회장직에 오르게 된다. 이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경영권 갈등 등으로 혼란이 있던 것에 대해 사과 드린다. 경영권 분쟁이 잘 마무리된 만큼 고객과 주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직원들이 단결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자. 좋은 KTB투자증권을 만들어 나가자’는 내용의 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은 회사를 떠나도 문제는 남아 있다. 배임·횡령, 직원 폭행 등 여러 구설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어려움에 빠져있던 한국종합기술금융을 인수해 굴곡도 많았지만 어찌됐건 19년째 중견 금융회사로 이끌었다. 그런 회장의 마지막 모습치고는 다소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