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폐교가 확정된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원을 전북대와 원광대 등에 한시 배정하기로 하자 8일 오후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구정문 앞에서 서남대 재학생 특별편입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13일 서남대에 대해 2018년도 학생 모집 정지와 함께 대학 폐쇄 명령을 내리고 학교법인 서남학원에 대해서는 올해 2월까지 해산을 통보했다. 이로써 지난 2012년 대학 설립자의 수백억대 교비횡령이 감사원 감사에 적발되며 불거진 서남대 사태가 5년여 만에 대학 폐교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됐다.
교육부 결정에 따라 기존 서남대 재적생들은 전북, 충청 지역 소재 인근 대학의 동일·유사학과로 특별 편입이 추진된다. 의대생들은 지역별 의료 인력 수급 등을 고려해 전북대, 원광대 등 전북지역 대학으로 분산 편입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이번 서남대 특별편입학 시행 대학은 총 32개 대학이다. 특별편입학 대상은 재학생 1305명, 휴학생 588명 등 총 1893명에 달한다.
하지만 원광대와 전북대, 단국대 천안캠퍼스 등 일부 대학에서는 간호학과와 의학과를 중심으로 재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서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이들은 현재 소셜 미디어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을 통해 서남대 특별편입학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각기 사안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존 대학의 교육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재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대학 측이 편입을 결정했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가장 많은 1425명을 수용하기로 한 원광대는 간호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광대가 발표한 서남대 특별편입학 모집요강에 따르면 간호학과 305명, 의학과 225명, 의예과 120명, 경찰행정학과 160명, 복지·보건학부 105명을 수용한다.
간호학과 학생들에 따르면 기존 학생들조차 충분히 수용되지 못하는 교육환경에서 학교 측이 대책 없이 인원을 대폭 늘렸다. 이 학교 간호학과 재학생 김 아무개 씨는 “실습 시에도 인원이 많아 한 번 실습한 병동을 다시 가는 경우도 있고 공간 또한 협소해 학교에 실습실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기존 학생들의 학습권도 열악한 상황에서 타 학생들의 편입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남대 학생들이 편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원광대 편입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교 간 입시 성적과 커리큘럼 차이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원광대 경찰행정학과 한 재학생 박 아무개 씨는 “입시성적도 다르고 그간 학교에서 배운 커리큘럼도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서 분반이 실시되면 이질감이 형성될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학점과 등수로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편입 이전에 취득했던 학점으로 취업하는 것은 기존 재학생이 취업 시 받는 불이익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학과, 운동처방재활학과 등 14개 학과에 총 203명을 모집하겠다고 밝힌 단국대 천안캠퍼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모집공고 발표 이후 단국대 총학생회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학생들은 ‘입학시험의 형평성 문제’, ‘입시 결과의 차이’, ‘기숙사, 강의실 등 현재 포화상태인 학교시설 이용 불이익’ 등을 꼬집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예술대학 한 학생은 “지금도 (기숙사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데 기존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며 “그런데도 학교 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는 듯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강의실이나 도서관 또한 현재 포화상태로 학생들이 늘어날 경우 수용가능성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며 “실질적인 고민과 대응은 학생들의 몫이고 학교 측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단국대학교 총학생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학교 측의 의견을 듣겠다며 지난 8일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교무처장을 비롯한 학교 측 관계자들과 학생 200여 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학생들과 학교 측의 이견만 확인됐을 뿐 별다른 해답은 찾지 못했다. 이날 공청회를 지켜본 한 재학생은 “학교 측은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노력하겠다’, ‘추후 검토해보겠다’라는 책임회피형 답변만 했다”며 “학교의 적절한 대응을 기대했는데 바뀐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남대 특별편입학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게시글.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의대생을 수용하기로 밝힌 전북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대학 의과대학 학생들은 지난 8일 서남대 특별편입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실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날 학생들은 “서남대는 2010년 초반부터 부실대학으로 끊임없이 선정됐고 이러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온 서남대 의대 학생들이 같은 학년의 전북대 의대 학생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평가받아야 한다”며 “편입에 앞서 편입생들에 대해 객관적 지표에 의한 학습 자격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생들은 이 같은 조치가 동의 없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원광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폐교명령 뜬 지 열흘 만에 모집요강을 발표했다”며 “그 전에 학생, 교수들과는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들은 1년 전 학과통폐합 과정에서 학교 측의 ‘불통’ 행정이 또 다시 벌어졌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앞서의 단국대 재학생은 “지난해 학과통폐합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학생들과 어떤 대화도 없이 일방적인 결정을 해서 학생들의 항의를 받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런 중요 문제를 학생들 의견은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두고 제2, 제3의 서남대 사태가 나오지 않도록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명숙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교육 위원장(배재대 교수)는 “학교가 폐교되면 재단 재산이 교직원의 임금 지불이나 다른 학교 편입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으로 쓰여야 하는데 현행법상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처럼 대학구성원들이 떠안게 될 위험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책임지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교육부 전 고위 관계자도 “폐교 대학이 늘고 있는 추세에서 이 같은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돼 온 사안”이라며 “이번 계기를 토대로 왜 폐교조치까지 갔는지 원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서남대 학생들도 ‘혼란’…일괄 유급 위기 서남대 학생들도 갑작스런 폐교소식에 혼란스런 상태다. 대학 폐쇄 명령을 받은 직후부터 서남대 교직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학사 업무도 중단됐다. 이에 따라 기말고사 성적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재학생들은 일괄 유급될 상황에 몰리고 예비 졸업생들도 졸업을 못할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수록 서남대 학생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명신대·벽성대학 등 3곳 폐교대학 학생 2116명 가운데 44%인 920명만이 다른 대학에 편입학했다. 같은 해 한국사학진흥재단이 건동대, 경북외대 등 5개 폐교대학 학생 18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편입학 비율은 60.4%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서남대 한 재학생은 “학생들이 무슨 죄냐. 우리는 쫓겨나는 입장이고 받아줄 대학들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른 학교에 들어간다 해도 학점관리, 학과 커리큘럼 등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 많다. (반대하는 학생들과) 똑같이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안정적인 대학생활을 고민했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대학으로 편입학을 빨리 했으면 한다”는 학생들도 일부 찾아볼 수 있었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