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장맛비가 잠시 멎을라치면 하늘은 쨍하다. 따가운 햇살과 습기찬 대기에 답답증이 나는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전북으로 달려가보자. 전북 지역은 아직까지 내로라하는 관광지가 손꼽을 정도로 적다. 그중에서도 임실군은 외부에 알려진 여행지가 거의 없는 곳. 임실관할인 사선대-성수산 자연휴양림, 그리고 진안의 마이산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아직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연의 계곡이 많다.
백운동 계곡이 그런 곳이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누구라도 반갑게 맞이한다. 여행은 전주에서 시작된다.
전주에서 남원방면으로 내려오면 사선대(전북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라는 팻말을 만나게 된다. 해마다 소리 경연대회인 ‘사선제’가 열리는 곳이지만 쌩쌩 달리는 찻길 가까이여서 선뜻 발길이 멈추어지지 않는 곳이다. 오며가며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입장료를 받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는 잘 지어놓은 사선루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러가지로 꾸며놓은 모습이 역력하다. 섬진강 상류인 오원강변. 이곳에는 네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3천여 년 전, 하늘에서 네 선녀가 내려와 놀면 곧이어 까마귀 무리까지 어울려 즐기다가 신선과 선녀들이 승천했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이곳을 사선대라고 불렀고 강 이름을 오원강(烏院江)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신록 가득한 야트막한 야산이 싱그럽고 자그마한 호수위에 피어난 노란색 연꽃이 아름답게 수를 놓는다. 호수 주변으로 정리정돈 잘해놓은 음식점 단지가 들어서 있다. 그중 매운탕 전문인 호수정(063-643-7339)은 호수변을 바라볼 수 있어 풍치가 그만이다. 깔끔하며 각종 꽃으로 주변을 잘 가꿔놓아 음식맛이 한층 좋아진다. 민물 새우와 즉석에서 산채로 잡아 넣은 메기, 쏘가리 등을 뚝배기에 시래기와 함께 끓여내는 전라도식 매운탕 맛이 걸쭉하면서도 맛있다.
이곳을 벗어나 남원방면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성수산 자연휴양림(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063-642-9456~7) 들어가는 길이 있다. 6~7km 정도 시골길을 달려가면 단풍나무 가로수가 단정하게 늘어선 휴양림이 나선다. 개인이 수십년간 가꿔온 터다. 이곳은 고려와 조선조의 건국 관련 사적이 있는 곳.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을 수 있는 조용하고 청정한 명소로 휴양에 아주 괜찮다. 평일인데도 단체 관광객들이 찾아들어 숲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성수산휴양림은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청정한 휴양의 명소다. | ||
길가에 나타나는 팻말을 따라 계곡을 찾아 들어가는 길. 띄엄띄엄 민가가 이어진다. 길은 내리막 없이 한없이 정상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뿜어내는 열기로 한층 숨이 가쁘다. 가파른 산능선을 깎고 닦아 만든 천수답들이 층층이 나타난다. 비탈진 논에는 봄에 심어 놓은 벼가 이미 한 자 이상 자라있다.
백운동이라는 지명은 흰 구름이 자주 덮인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 무더운 여름날에는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탁족을 즐기는 곳. 포장길이 끝난 뒤에도 비포장길은 정상까지 이어진다. 밑에서부터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던 계곡은 조금씩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백운동관광농원(063-432-4589)을 끝으로 민가는 끝이 난다.
널따란 산속에 식당, 민박동을 만들어 놓은 농원안. 울창한 소나무와 활엽수가 가득한 중간에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백운계곡이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검고 큰 바위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비가 내려 수량이 불어나면 더욱 장관이다.
농원을 지나서도 한없이 산자락을 따라 계곡이 이어진다. 인근의 덕유산 무주구천동 계곡보다 골은 작지만 모습 하나는 뒤지지 않는다. 골골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울창한 수림 속에서는 따가운 햇살마저도 느낄 수 없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널찍한 암반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백운동계곡의 백미는 점진폭포 주변이다. 폭포는 웅장하지도 우렁차지도 않다. 넓은 바위 사이에 자그마한 골짜기 하나를 만들어 놓았을 뿐, 그 사이로 하얀 물줄기를 쏟아 내릴 뿐, 폭포 밑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낮은 소여서 두려움을 주지도 않는다.
아직 계곡은 끝나지 않았다.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곳곳에 숨겨진 비경들이 이어진다. 숲 사이로 들려오는 세찬 물소리와 숲 그늘 아래 미끄러지듯 흘러내려가는 암반계류.
백운동은 진안고원의 남쪽 경계에 병풍처럼 겹쳐져 동으로는 장수군과 남으로는 임실군과 경계를 긋는 고원의 울타리. 웅장한 산세가 교차되는 곳에 덕태산(1,113m) 성수산(1,059) 팔공산(1,150) 선각산(1,034)과 삿갓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아름다운 계류를 쏟아내고 있다. 덕태산 능선의 동쪽은 장수 와룡휴양림으로 넘어가는 원시림 지대며, 팔공산과 함께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덕태산은 선각산과 더불어 웅장한 백운동 계곡을 이루며 여기서 모아진 물은 섬진강으로 흐른다.
여하튼 비포장길은 정상까지 이어지고 중간중간 여러 가지 갈래길을 만들어 두었다. 계곡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한없이 푸르른 신록의 향내를 맡아보면 신선이라도 된 듯 마음이 가볍다. 길이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 하기에는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 백운동 계곡은 곳곳에 비경을 숨기고 있다. 골 골이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와 울창한 수림 속에 선 따가운 햇살마저 느낄 수 없다.사선대 근처 에 연꽃이 수를 놓은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 ||
풍혈은 한여름에도 에어컨바람처럼 찬바람이 나오는 바위구멍이고, 냉천은 사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샘. 풍혈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현상은 바깥공기가 틈새가 많은 너덜(돌이 많이 깔린 비탈)의 돌틈 사이로 들어가 돌아다니다가 대기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단열 팽창하면서 급격히 열기를 빼앗김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풍혈 부근의 냉천도 삼복더위에도 손을 담그면 1분을 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차갑다. 이 냉천에서 목욕하면 웬만한 위장병과 피부병 정도는 쉽게 낫고, 무좀에도 특효가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곳 냉천의 물은 ‘한국의 명수(名水)’라 불릴 정도로 맛이 좋다. 특히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약 짓던 물이라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 지역에 있는 만수산은 원불교 성지. 그래선지 주변은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게다가 냉천과 풍혈 관리인은 식당과 휴게소를 하고 있다. 개발이 안된 것을 좋다고 하기에는 주변이 어수선한 편.
임실 진안까지 왔다면 마이산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 연계코스다. 작은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린 것이 1백년이 넘도록 흐트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신비의 돌탑으로 유명한 마이산 탑사. 몇 년 지나 다시 찾아가보아도 돌탑은 달라진 게 없다. 마이산 암벽에 매달려 여름꽃 능소화가 피어나고 산 북쪽 저수지는 오리배를 탈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무너지지 않는 돌탑 뒤로 쫑긋 서 있는 두 귀(봉우리) 사이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이 벌써 가을처럼 눈에 시리다.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전주IC에서 17번 국도, 남원 방면-전주-관촌 사선대(49번 지방도, 좌회전)-남원 방면으로 가다가 성수산 자연휴양림 팻말따라 7km지점. 이곳에서 진안으로 넘어서면 성수면 소재지-외궁 삼거리(좌회전)-좌포리-풍혈.
대중교통은 전주 공용터미널(063-270-1700)에서 사선대, 진안, 성수(임실 성수면도 있음)행 직행버스 이용. 진안-백운-백운동행 ‘무진장버스’가 하루 2회 운행. 1시간 소요. 또는 진안에서 1일 10회 운행하는 백운행 버스 이용, 백운면 소재지 하차후 백운동 계곡까지 3km, 도보 40분 또는 택시 이용.
▲별미 & 숙박 : 전주를 거쳐 가게 된다. 전주는 음식의 고장. 콩나물해장국과 모주가 일미인 삼백집(063-284-2227, 284-1017), 한정식 전문인 전라회관(228-3033), 오모가리탕 원조 한벽집(284-2736), 석쇠 더덕구이가 반찬으로 나오는 반야돌솥밥(288-3174) 등이 있다. 숙박은 성수자연휴양림이나 양화마을 민박 가능(김기술 063-433-5828), 중길리 황토방(양성원 063-432-1590). 죽림온천 단지를 이용해도 좋다.
진안읍내 진안관(433-2629)은 애저찜으로 전국에 소문난 집이다. 죽산정가든(433-3542)은 쏘가리 매운탕이 일미다. 곁들여지는 반찬도 맛깔스럽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마이산 북부 지구 가는 길 황토음식점(432-3307)는 흑염소를 잘하는 곳. 숙박은 백운관광농원이나 마이산모텔(063-432-4201) 등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