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박은숙 기자
안 대표의 첫 번째 고비는 통합 전대 개최다. 당 안팎에선 전대 소집부터 불가능할 것이라며 ‘전대 무용론’이 나오지만, 개최까지의 법적 걸림돌은 없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당헌·당규에는 정기 전대는 전대 의장이 소집하지만, 임시 전대는 당무위에서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전대 의장인 이상돈 의원은 반통합파의 기대와는 달리, 관련 입장을 직접 밝히지 않은 채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안 대표의 통합 가속페달은 신년 들어 한층 빨라졌다. 재신임 승부수로 한 고비를 넘긴 안 대표는 국민의당 중재파가 제안한 ‘당 대표직 조기 사퇴 및 중립지대 원외 대표를 통한 공정한 전당대회 관리’ 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안 대표는 1월 10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원래 계획했던 통합 일정은 늦추기 힘든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승민 대표도 같은 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 대표 조기 사퇴는 통합 중지안”이라고 비판했다.
친안계 내부에선 중재파 및 반통합파(개혁신당)의 블로킹으로 애초 계획한 ‘1월 8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구성→1월 10일 당무위원회 의결’ 등은 늦춰졌지만, 통합 전대 데드라인(1월 28일)은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데드라인은 평창동계올림픽 전인 2월 9일이다. 통합 전대준비위원장에는 김중로 의원을 내정했다. 통합이 지지부진할 경우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오르는 현상)가 반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곳곳이 암초다. 우선 ‘대표직 사퇴’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반통합파 내부에선 전대 때 ‘안철수 사퇴안’을 의결하자는 얘기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 통합 전대에서 안 대표가 사퇴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박지원 의원은 1월 7일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여수 마라톤대회’에 참석, 취재진과 만나 안 대표를 향해 “통합을 밀어붙이면 개혁신당을 확실히 창당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김동철 원내대표, 주승용 의원 등 중재파 안의 핵심도 ‘안철수 즉각 사퇴’다. 이른바 ‘선 안철수-후 전대’다. 반통합파는 안 대표 사퇴 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대를 치르면 바른정당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고 본다. 안 대표가 통합을 전제로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음에도 반통합파·중재파 모두 “물러나라”고 압박하는 셈이다. 친안계와 반통합파가 합의 이혼에 실패할 경우 이 시나리오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반통합파 관계자는 “안 대표가 중재안을 받아들이겠나”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친안계 속내는 복잡하다. 안 대표 사퇴로 통합신당 주도권을 실기할 수 있다는 쪽과 분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쪽이 혼재해 있다. 통합신당파 관계자는 “이 부분은 아직 정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합 전대 후 국민의당이 두 동강 나고 안 대표가 사퇴할 경우 통합신당 내부 구도는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친안계는 안 대표가 사퇴하면, 구심점을 사실상 잃는다. 안 대표는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외부 시민단체 인사 등과 함께 통합신당 3인 공동대표 하마평에 올랐다. 하지만 손 고문이나 김 전 대표 등도 안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통합신당 최대 수혜자는 유 대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발 정계개편에서 주도권은 유 대표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유승민 2선 후퇴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도 유 대표의 사퇴를 주장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바른정당은 이미 유 대표 사퇴를 놓고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하태경 의원이 1월 2일 한 라디오에서 유 대표의 사퇴를 기정사실로 한 뒤 “손(손학규) 씨와 하(하태경) 씨가 주도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지상욱 의원은 다음 날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유 대표의 발언 제지에도 하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통합 교섭창구인 오신환 의원도 “(하 의원) 혼자 상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통합을 둘러싼 안철수·유승민 대표의 미묘한 갈등도 문제다. 유 대표는 1월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합을 결심했다고 한 적이 없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안 대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협상의 주도권 차원이지만, 그간 국민의당 내부에선 “유 대표가 통합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국민의당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안철수 백의종군’은 유 대표의 제안을 안 대표가 수용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논란이 일자 안 대표와 유 대표는 1월 9일 서울 모처에서 배석자 없이 비공개 회동하고 통합의지를 다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의당 통합 추인 전대에 ‘케이보팅’(K-voting) 방식을 도입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도 악재다. ‘케이보팅’은 투표자의 생년월일을 온라인투표 시스템에 등록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정당법은 ‘공인인증서’ 등 공인전자서명을 통한 투표만 인정한다. 국민의당은 전대 ‘플랜B’로 권역별 투표 카드를 만지작거리지만, 반통합파는 “당헌 위반”이라고 맞서고 있다.
가까스로 통합 전대 벽을 넘으면 양당 통합의 마지막 퍼즐인 지분싸움이 기다린다. 그 이전까지가 지분싸움을 위한 전초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대혈투다. 새로운 당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흡수하는 ‘신설 합당’에 뜻을 모은 만큼, 형식적 지분은 5 대 5 통합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 대 5 지분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당장 지방선거 공천권만 해도 전 권역을 50%씩 공평하게 나눌지, 국민의당은 호남, 바른정당은 영남에 공천을 가중하는 방식을 택할지 산 넘어 산이다. 현역 의원 수나 당원 수에서 바른정당보다 우위에 선 국민의당에서도 ‘5 대 5’ 지분에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포스트 지방선거’ 주도권의 핵인 수도권 공천권은 난제 중 난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전대에서 통합안이 통과해도 막판 통합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관문은 한국당과의 선거연대다. 유 대표의 한국당 선거연대 스탠스는 ‘양쪽 발 걸치기’다. 유 대표는 그간 한국당 등을 향해 “지방선거 연대를 위해 매달릴 생각은 없다”면서도 “타 야당과 선거연대는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수도권 여야 1 대 1 구도의 필요성에 대해선 양당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이 지점은 안 대표의 최대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한국당과 통합신당이 선거연대에 나설 경우 홍준표 대표 측의 1차 목표는 ‘유승민 제어’가 될 수밖에 없다. 통합신당의 최대 수혜자인 유 대표의 기세를 꺾지 않고선 보수진영 주도권을 잃을 수 있어서다. 양측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국당과 국민의당이 손잡고 ‘유승민 죽이기’를 전개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거침없는 유 대표의 행보에 대한 브레이크 걸기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다.
그간 반통합파는 안 대표의 통합 플랜 2단계가 ‘보수대통합’이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백의종군하더라도 친안계의 막후 조력자다. 안 대표가 이 과정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할 경우 호남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 한국당의 손을 잡으면 보수대통합 논란에, 손을 뿌리치면 선거 패배 책임론에 각각 휩싸인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