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타워’에 트럼프는 없지만 건물 앞에서는 연일 트럼프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제임스 코미 FBI 국장 해고에 항의하는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맨해튼 중심가인 5번가에 위치한 ‘트럼프 타워’는 68층 주상복합건물이다. 높이는 202m로, 뉴욕에서 54번째로 높은 건물이지만 지난 1983년 처음 건설됐을 때만 해도 뉴욕에서 가장 높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트럼프와 친분이 깊은 건축가인 더 스컷이 설계한 이 건물은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는 공공 장소인 아트리움을 비롯해 상점, 사무실, 아파트 등으로 이뤄져 있다.
5층 높이인 아트리움을 제외한 1~6층의 쇼핑몰에는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으며, 14~26층에는 사무실이, 그리고 30~68층에는 총 263채의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 트럼프는 최고층인 68층의 펜트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무실은 26층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에는 대선운동캠프도 꾸려졌고, 현재 2020년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본부도 마련되어 있다.
공공 장소인 아트리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인공 폭포다. 5층 높이인 이 폭포는 높이 18m로 규모가 제법 큰 편이다. 또한 건물 내부의 벽면은 분홍색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곳곳에는 황금색 장식이 더해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입주자들이 이용하는 네 대의 엘리베이터 역시 황금색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트럼프의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는 따로 운행되고 있다. 실내 인테리어에 대해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타워의 대리석은 브루클린에 있는 내 건물 가운데 하나의 전체 임대료보다 더 비쌀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뉴욕의 랜드마크를 짓는 것이 목표였던 트럼프는 위치 선정 단계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었었다. 그가 눈여겨 봤던 현재의 부지는 과거 ‘본위트 텔러’ 백화점의 본점이 위치해있던 자리였다. 바로 옆인 57번가에는 그 유명한 티파니 본점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트럼프는 이 위치를 가리켜 “뉴욕 최고의 입지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트럼프는 1년에 두 번씩 ‘본위트 텔러’의 모회사인 ‘제네스코’사에 연락을 해서 백화점을 매각할 의사가 없는지를 물었다. 그때마다 ‘제네스코’ 측은 헛웃음을 치면서 트럼프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트럼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77년 존 해니건이 ‘제네스코’의 새 회장으로 부임했고, 당시 부채를 갚기 위해 몇몇 부동산을 매각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해니건이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에 1979년 트럼프는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입지의 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시 트럼프는 티파니 본점 주변의 ‘공중권’까지 함께 매입했다. ‘공중권’이란 토지 또는 건물 상공의 사용권으로, 트럼프는 다른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행여 건물을 철거하고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을 막고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했었다.
맨해튼 중심가인 5번가에 위치한 ‘트럼프 타워’는 68층 주상복합건물이다. 1983년 처음 건설됐을 때만 해도 뉴욕에서 가장 높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트럼프 타워’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뉴욕에서 가장 호화로운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목표에 따라 실내 인테리어에는 가능한 최고급 자재를 사용했고, 전층에서 센트럴파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을 확보했다.
이런 트럼프의 바람대로 ‘트럼프 타워’는 곧 부의 상징이 됐다. 아파트의 경우, 분양을 시작하자마자 부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이를테면 분양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63채 가운데 95%가 판매됐을 정도였다. 당시 아파트의 분양 가격은 60만 달러(약 6억 원)에서 1200만 달러(약 128억 원) 사이였으며, 펜트하우스의 경우에는 1500만 달러(약 160억 원) 정도였다. 오픈 당시 ‘트럼프 타워’를 사들였던 유명인사 가운데는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자니 카슨, 배우 소피아 로렌,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있었다. 트럼프는 이로써 3억 달러(약 3200억 원)의 수익을 거뒀으며, 이는 2억 달러(약 2140억 원)의 건설비를 상쇄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반면 트럼프는 상가 판매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100개가 넘는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을 원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말과 달리 초기 저층부에 입점했던 찰스주르당, 필라 등 유명 브랜드 가운데 15~20%는 얼마 안 가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문제는 비싼 임대료였다. 당시 5번가에서 임대료가 가장 높았던 ‘트럼프 타워’는 아트리움에 위치한 매장의 경우, 1㎡당 연 450달러(약 48만 원)의 시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렇게 고급 브랜드들이 철수한 자리에는 훗날 코치 등 중상류층 브랜드들이 들어왔다.
심지어 프랑스의 유명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역시 ‘트럼프 타워’에 25년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입점했지만 3년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철수했다. 1991년 개장 첫 해부터 360만 달러(약 3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갤러리 라파예트’는 1994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계약을 파기한 채 문을 닫았다. 당시 ‘갤러리 라파예트’의 임대료는 연 800만 달러(약 85억 7000만 원)였다.
그후 이 자리에는 나이키가 들어왔으며, 현재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이키는 이곳에 2022년까지 임대 계약을 체결한 상태지만, 지난해 대선 때부터 매장 이전을 요구하는 반트럼프 단체들의 청원이 쇄도하고 있어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5년이 지난 현재 ‘트럼프 타워’의 모습은 오픈 초기와는 사뭇 다른 듯하다. 우선 입주민들부터가 그렇다. 과거와 달리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는 물론이요, 뉴욕의 부호들도 더 이상 ‘트럼프 타워’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때문에 공실률은 10%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뉴욕 전체 평균에 비해 확실히 높은 수치다. 현재 부동산전문사이트인 ‘스트리트이지닷컴(Streeteasy.com)’에만 19채의 매물과 3채의 임대 매물이 나와있는 상태다.
사정이 이러니 시세도 하락했다. 부동산사이트인 ‘시티리얼리티’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트럼프 타워’의 1㎡당 평균 가격은 19% 하락했다. 2015년 이후로 따지면 무려 47%나 하락한 셈이 된다. 반면, 같은 기간 뉴욕의 다른 고급 아파트들의 경우에는 소폭 상승했다. 한편, ‘포브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타워’의 가치는 2015년 6억 달러(약 6400억 원)에서 2016년 4억 7000만 달러(약 5000억 원)로 떨어졌다.
‘트럼프 타워’의 30~68층에는 총 263채의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트럼프 타워’의 시세가 이렇게 하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포쿠스’는 먼저 세월과 함께 자연히 부동산 시장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점을 꼽았다. 1980년대 지어진 건물은 더 이상 현대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상대적으로 평범하거나 구식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근래 들어 뉴욕에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초호화 아파트들은 첨단 시설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세련된 인테리어로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가령 최근 뉴욕에 건설된 ‘원57’의 가격은 한 채당 1000억 원이 넘는 가격을 자랑한다. 뉴욕의 부동산 전문가인 앨리슨 로저스는 “‘트럼프 타워’는 잘 지어진 건물이다. 입주민들에 대한 서비스도 좋다. 하지만 그동안 더 고급스럽고 더 호화로운 아파트들이 많이 건설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타워’의 가치 하락을 단순히 시장의 변화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고 ‘포쿠스’는 말했다. 바로 트럼프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선 때부터 계속되어 온 막말이 그렇다. 무분별하고 거친 웅변술 때문에 트럼프에 대한 이미지가 깎였기 때문에 덩달아 트럼프를 상징하는 건물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 안팎의 삼엄한 경비 역시 시세 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요소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트럼프 타워’ 주변에는 철저한 경호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입주민들은 물론이요 방문객들에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타워’ 앞 도로에는 늘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고, 입구에는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상시 경비를 서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 검색대보다 더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지어 공공장소인 아트리움 2층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방문하는 사람들 역시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 코넬대학의 얀 드루스 교수는 “이 절차는 ‘트럼프 타워’에 근무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입주민들에게도 귀찮은 일이다. 몇몇은 화를 내면서 아예 다른 건물로 옮기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엄한 경비로 불편을 겪고 있기는 인근 상점들도 마찬가지다. 허구헌 날 열리는 반트럼프 시위와 삼엄한 경비 탓에 고객들이 줄어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입주민들의 면면이 꺼림칙하다는 점도 ‘트럼프 타워’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인사들 가운데는 범죄 행위에 연루된 인사들이 적지 않으며, 이 가운데는 유죄를 선고받고 가택 연금 중인 경우도 있다. 가령 월드 포커대회 우승자인 러시아의 바딤 트린셔가 바로 그런 경우다. 2013년 돈세탁 및 국제 도박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던 그는 지난해부터 ‘트럼프 타워’의 63층에 위치한 아파트에 수감되어 있다. 또한 17년에 걸쳐 51층 전체를 총 1800만 달러(약 193억 원)에 사들인 힐렐 나마드는 2014년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징역 5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선대본부장을 지냈던 트럼프의 측근인 폴 매너포트는 지난해 10월 돈세탁 및 불법 해외 로비 혐의로 기소됐으며, 현재 ‘트럼프 타워’ 43층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러니 뉴요커들이 ‘트럼프 타워’로의 입주를 꺼리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 그런가 하면 이런 현상은 비단 ‘트럼프 타워’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명의를 빌려 세워진 다른 건물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트럼프 소호 뉴욕’과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 토론토’의 입주민들은 건물 이름에서 ‘트럼프’ 석자를 제거하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트럼프 그룹과의 관리 계약도 모두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올해 안에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 파나마’ 역시 같은 절차를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더 이상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드루스 교수는 “트럼프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자연스럽게 트럼프나 그의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휴가차 방문하든, 사업차 방문하든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반면, 부동산 중개인인 보아즈 마시악은 “‘트럼프 타워’에 거주하길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트럼프 타워’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대통령의 건물에 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트럼프 타워’ 안에서도 분열된 미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트럼프 타워’의 펜트하우스에 머물렀던 적은 단 하루뿐이었다. ‘트럼프 타워’에 트럼프는 없지만 건물 앞에서는 연일 트럼프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물론 건물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저 건물주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트럼프 본인이 아니라 ‘트럼프 타워’ 입주민들과 주변 사무실, 상점, 그리고 대다수 뉴욕 시민들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한때 잭슨의 비밀 신혼집으로 화제 마이클 잭슨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트럼프 타워’의 아파트를 임대해 거주한 바 있다. 과거 ‘트럼프 타워’를 선택했던 유명인사들로는 마이클 잭슨, 스티븐 스필버그, 브루스 윌리스, 앤드류 로이드 웨버 등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850만 달러(약 197억 원)에 아파트를 한 채 매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밖에 ‘베이비 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아이티공화국의 세습 독재자였던 장 클로드 뒤발리에, 피아니스트 겸 가수인 브와지로 발렌티노 리버라치도 한때 ‘트럼프 타워’에 거주했었다. 이 가운데 잭슨의 경우에는 비밀리에 이곳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1984년 여름, 비밀리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동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식을 올렸던 잭슨은 세간의 눈을 피해 ‘트럼프 타워’의 아파트를 임대해 거주했었다. 당시 임대료는 월 11만 달러(약 1억 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잭슨이 ‘트럼프 타워’를 택했던 이유는 사생활 보호 때문이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점을 특히 마음에 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과거 ‘CNN’과의 인터뷰에서 “잭슨은 실제 ‘트럼프 타워’에 거주했었다. 그밖에도 여러 채의 다른 내 건물에서도 머물렀었다”며 자랑스럽게 친분을 과시했었다. 그런가 하면 잭슨이 거주했던 이 아파트는 1980년대~1900년대까지는 트럼프의 부모가 거주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전면 통유리를 통해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보이며, 창문만 모두 28개로 동쪽을 제외한 맨해튼의 모든 곳을 조망할 수 있다. 이 아파트는 2016년 2월, 2300만 달러(약 246억 원)에 매물로 나온 바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