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해수담수화 시설이 부산시에 ‘계륵’이 된 것은 주지하다시피 입지문제 때문이다. 취수구가 고리원전에서 가깝다는 게 불안요소로 작용하면서 주민들이 공급을 반대하자 논란이 시작됐다.
기장해수담수화 시설 전경. 사진=부산시
기장해수담수화 사업은 초기에는 별다른 논란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06년 6월 해외시장 개척 R&D 혁신과제에 뽑히고, 2008년 부산시가 우선협상 대상 기관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9년 4월 부산시·국토진흥원·광주과기원·두산중공업 등이 건설협약서를 체결하면서 사업 착수가 본격화됐다. 2013년 12월에는 다시 유관기관 간에 해수담수화시설 소유운영 협약이 체결되고, 만 1년 뒤인 2014년 12월에는 해수담수화시설의 시운전이 완료됐다.
바로 그 즈음에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급수 대상지역 주민들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물은 먹기 싫다면서 부산시 등의 계획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2015년 10월 준공검사와 수도사업 인가 고시가 났지만, 기장해수담수화 수돗물은 관로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갈등은 증폭되자 기장군의회가 나서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수질검증을 진행했지만, 이미 커져버린 불신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부산시는 2016년 12월 ‘수돗물 선택적 공급’ 방안을 발표했다. 식수로는 쓰지 않고 일부 공단지역에 용수로 공급한다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이 ‘선택적 공급’마저도 2017년 10월 국토교통부(국토부)의 요구로 일시정지에 들어갔다. 이후 해당 시설은 정상화의 가닥을 잡지 못한 채 해를 넘겼고, 새해가 되자마자 시설 운영책임을 맡은 두산중공업은 운영비 등의 이유로 직원을 철수시키기에 이르렀다.
두산중공업의 직원 철수 결정은 또 다른 파열음을 불러일으켰다. 기장해수담수화와 관련한 그동안의 논란이 주로 민과 관 사이에 빚어진 것에 비해, 새로운 갈등은 관끼리 서로 치고받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두산 측의 결정을 접한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서 시장은 “기장담수화사업의 운영 책임자는 정부”라고 규정한 뒤 운영비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해결방안을 정부가 나서 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서 시장은 “관리 직원이 철수한 것은 정부가 관련 예산 24억 원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담수화사업이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국책사업인 만큼, 소유와 운영권을 가진 중앙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지난 4일 기자회견을 갖고 기장담수화사업의 운영 책임자는 정부라고 주장했다.
서병수 시장은 새 정부 들어 확연히 달라진 태도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서 시장은 “최근 들어 정부의 해수담수화사업에 대한 시각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두산중공업이 철수한 것은 명분상으로는 유지관리에 대한 비용부담 등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중앙정부 내부에 해수담수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부산시가 이 같은 입장을 나타내자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정부와 부산시 간의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국토부는 서병수 시장이 기자회견을 가진 바로 다음 날인 5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부산시의 입장을 반박했다.
국토부는 이날 “기장해수담수화 시설은 부산시가 2015년 10월 지방상수도로 인가 고시한 것이므로 정부에서 운영비 예산을 지원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8년도 예산 정부안 편성 시에 운영비 반영에 대한 부산시의 공식 요구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부산시는 즉각 재반박에 들어갔다. ‘지방상수도로 인가 고시한 시설이므로 정부에서 운영비 예산을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국토부의 주장에 대해 부산시는 “일반수도사업 인가 고시는 물 공급을 위한 사전 행정절차 이행단계로 사업시행자, 사업목적, 급수구역, 급수인구 및 급수량 등을 고시하는 사항으로 물 공급을 위한 당연한 행정절차”라며 “정부의 예산편성 근거와는 관련 없는 사항”이라고 못을 박았다.
‘예산 정부안 편성 시에 운영비 반영에 대한 공식 요구가 없었다’는 국토부의 공격에 시는 “기장해수담수화시설은 ‘건설협약서’ 및 ‘소유·운영협약서’에 국토진흥원(국가)이 소유·운영권을 가지도록 명시돼 있다. 국토진흥원이 주관한 정부법무공단 법률자문 결과에도 기장해수담수화시설은 행정재산으로 국토진흥원(국가)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때문에 부산시가 유지관리비용을 국토부에 요구할 사항이 아니다. 국토진흥원과 국토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해 운영비 등을 놓고 불거진 기장해수담수화와 관련한 정부와 부산시 간의 갈등은 쉽사리 봉합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갈등 장기화 조짐이 나타남에 따라 벌써부터 시설노후화를 걱정하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2000억 원이나 가까이 든 시설이 가동도 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만큼, 애초 입지선정을 누가 주도했는지를 가려낸 후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