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중공업의 부채비율은 144.2%로 양호한 수준이다. 부채액도 18조 4906억 원으로 2016년 말 31조 3594억 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마당에 무차입 경영을 선언한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사들의 실적이 당분간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나중에 업황이 좋아지면 다른 조선사들과 분명히 차별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상증자와 관련, 눈에 띄는 부분은 현대로보틱스가 초과 청약을 한 것이다.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 지분 27.84%를 가진 최대주주로 이번 유상증자에서 278만 6446주를 배정받았다. 여기에 55만 7289주를 추가로 청약했다. 현대로보틱스는 “취득 가능한 최대주식 수로 청약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초과 청약에 대한 배정 결과와 확정발행가액 결정 후 총 출자 주식 수와 출자금액을 확정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작업소 전경. 연합뉴스
현대로보틱스의 이러한 움직임은 경영권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은 사업을 분할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선언했다.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보유 지분 25.8%)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박근태) 관계자는 “현대로보틱스가 초과 청약을 하는 이유는 지주사의 지분율을 높여 경영권 승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유상증자에서 신주 1250만 주를 발행한다. 여기서 20%에 해당하는 250만 주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한다. 현행법상 상장사가 유상증자를 하면 의무적으로 신주의 20%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1000만 주는 지분율에 맞춰 현대중공업 주주들이 배정받는다.
우리사주조합이 20%를 배정받음에 따라 현대로보틱스가 초과 청약을 하지 않으면 유상증자 후 현대로보틱스의 지분은 27.84%에서 26.84%로 줄어든다. 반면 초과 청약을 하면 지분은 27.64%가 된다. 초과 청약을 통해 경영권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실권주(유상증자를 할 때 주주가 배당받은 신주인수권을 포기한 주식)가 발생하면 현대로보틱스가 책임진다는 책임경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1~2%의 지분율은) 현대중공업 지분을 충분히 가진 현대로보틱스에 큰 의미가 담긴 수치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실권주가 발생하지 않으면 현대로보틱스의 초과 청약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주식 272만 558주(4.8%)를 보유한 현대미포조선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를 강화하면 발생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늘어난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미포조선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현대중공업 측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은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1조 원이 넘는 자본을 확충하면서도 경영권에 큰 영향이 없게 됐다. 주가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27일, 현대중공업 주가는 전날 13만 6000원에서 9만 6900원으로 급락했지만 금방 회복해 현재는 발표 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으로선 자본력과 안정적 경영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경영승계 쾌속 지난해 11월 14일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가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정기선 부사장은 안광헌 대표와 함께 현대글로벌서비스 공동 대표이사로 활동하면서 현대중공업 기획실 부실장도 겸하고 있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후계자로서 행보를 본격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1982년생인 정 부사장은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 그해 6월 퇴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석사(MBA)를 마쳤으며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한국지사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정 부사장은 2013년 6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복귀하면서 본격적인 경영 승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 상무로, 2015년 11월에는 전무로 승진했다. 정몽준 이사장 일가 중에서 현대중공업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정기선 부사장뿐이기에 재계에서는 예전부터 정 부사장이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고 점쳐왔다. 정몽준 이사장이 최대주주지만 현대중공업 내에서 직책을 갖고 있지는 않다. 정 이사장의 장녀 정남이 씨 역시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로 근무 중이지만 현대중공업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 차녀 정선이 씨도 현대중공업에 적을 두고 있지 않으며 차남 정예선 씨는 현재 대학생이다. 정 부사장은 동년배에 비해 빠르게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1980년대 생인 구동휘 LS산전 상무,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1982년생),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이규호 코오롱 상무보(1983년생) 등은 대부분 전무나 상무 직급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생인 구광모 LG전자 상무(1978년생), 허윤홍 GS건설 전무(1979년생)보다 빠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 부사장에 대해 “나이로 따지면 빠른 편이지만 2년의 전무 기간을 거쳐 승진했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