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신임사장에 그룹 ‘재무통’ 박동욱 사장이 선임되면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합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일요신문DB
건설업계 최장수 CEO인 정수현 전 사장은 2015년 업계 최초 연매출 1조 클럽 가입, 반포주공 1단지 수주 등 현대건설을 잘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정 전 사장을 교체할 만한 일이 딱히 없었다는 말이다. 재계에서 ‘세대교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설업계 임원이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임을 고려할 때 재무통인 박동욱 사장의 임명이 의아하다는 평도 적지 않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1988년 현대건설에 입사, 1999년 현대차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재경사업부장 전무를 역임했다. 박 사장은 2011년 4월 다시 현대건설로 복귀해 이번 인사 전까지 재경사업본부장을 맡아왔다. 비록 현대건설로 입사해 오래 일했지만 ‘재무전문가’라는 점 때문에 낯설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 임원과 CEO들은 대개 건축·토목 엔지니어, 영업 출신이 임명됐기 때문에 이번 인사가 이례적으로 비치는 건 사실”이라며 “재무전문가를 대표로 임명했다는 건 공격적인 영업보다 재무·리스크 관리 방향으로 경영을 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박동욱 사장은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부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선임이 향후 건설시장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출 규제와 주택시장 침체,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축소 등을 이유로 올해 건설경기가 악화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건설사 대표들에게 주택공급량, 인력 조절 등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올해 대형 건설사들이 재무전문가를 대표로 임명한 건 건설경기가 이미 악화되고 있고 해외 수주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라며 “현 정부 정책 역시 규제 방향으로 가고 있어 건설사들이 수익성 위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이번 인사에 특이점이 없다고 반박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대부분 대표가 엔지니어 출신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재무 출신 사장 선임이 이번이 최초는 아니다”라며 “정 전 사장님이 연임을 통해 오랜 기간 재직하신 데다 대내외 건설환경이 원활하지 못해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춘 점이 이번 인사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역시 지난 9일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건설부문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이영호 건설부문 사장을 임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영호 사장과 달리 박동욱 사장이 더 주목받는 까닭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 나아가 현대차그룹의 후계 승계 문제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일부에서는 박동욱 사장의 선임으로 수년째 설왕설래됐던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 기대감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꼽힌다. 증권가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를 소유한 개인 최대주주로서 합병을 통해 현대엔지니어링이 ‘우회상장’할 경우 투자금 공모를 통해 승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이 종종 나온 터다.
또 올해 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현대차그룹에 지배구조 개편 가이드라인 제시를 촉구한 만큼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한 자금 마련도 절실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모두 건설사지만 서로 사업영역이 워낙 달라 합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거의 없다”며 합병설을 부인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합병에 대한 결정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할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의 합병을 추진하더라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앞의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의 합병은 언젠가 반드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합병을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숨고르기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현대엔지니어링 노조가 과거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 합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출범한 만큼 두 회사의 합병이 빠른 시일 내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엔지니어링 노조는 지난해 12월 13일 출범식 기자회견을 통해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차그룹에 편입되고 현대엠코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사업부 통폐합에 따라 권고사직이 광범위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 합병이 현대차그룹 승계의 최종 단계이며 이에 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최순실 게이트 이후 삼성물산·제일모직 사례가 문제가 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지금 합병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데다 합병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 등이 따른다면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