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봉준령을 배경으로 피어난 붉은 철쭉군락. 마치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 ||
철쭉은 5월을 넘어 6월까지 이어진다. 이제 중반을 넘어섰으니 이번 주는 막바지. 한껏 열기를 뿜고 있는 덕유산 철쭉을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정상에서 바라보면 선계가 따로 없다.
덕유산이 철쭉시즌에는 가족산행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노약자나 긴 산행의 시간을 따로 낼 수 없는 사람들도 무주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곤돌라를 이용해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 무주리조트에서 향적봉 바로 아래까지 20분 정도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후 15분 정도 걸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까지는 평이한 능선이고 오르막이라도 잘 만든 계단이 놓여있어 특별한 장비 없이도 등반이 가능하다.
[심은 철쭉은 빨강 산철쭉은 분홍]
덕유산 능선에는 지금 철쭉이 지천이다. 정상 향적봉(1,614m)까지 오르는 등산길 주변이 붉은색 천지다. 산 아래쪽은 이미 시들기 시작했지만 정상을 잇는 주능선의 꽃들은 요즘이 한창이다. 아직 터지지 않은 꽃봉오리 많은 정상쪽은 이번 주말이 절정일 듯싶다.
제대로 된 철쭉 구경은 역시 정상쪽이 제격이다. 산아래서부터 불붙기 시작한 철쭉이 산허리를 지나 정상에 옮겨 붙기까지 모양이나 색은 변함이 없지만 철쭉의 제맛은 아무래도 정상쪽에서 느껴진다. 산길 바위틈에 수줍게 피어난 철쭉의 소박함도 아름답지만 정상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탁트인 산야를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철쭉을 바라보는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덕유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 하나로 향적봉이 주봉. 삼봉산(1,254m)에서 시작해 수령봉(933m) 대봉(1,300m) 지봉(1,302m) 거봉(1,390m) 덕유평전(1,480m) 중봉(1,594m) 향적봉을 거쳐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1,508m)까지 줄기차게 달린 봉우리들은 장장 1백 리에 걸쳐 펼쳐지며 영호남을 가른다.
▲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찰이었다. | ||
덕유산 철쭉의 백미는 향적봉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덕유평전에서 느낄 수 있다. 정상 부근에 이처럼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도 의외지만, 하늘과 맞닿은 평평한 땅에 멀리 고봉들을 배경으로 핀 붉은 꽃들이 주는 묘한 감동은 좀처럼 잊기 어렵다.
덕유산에는 산철쭉과 일반철쭉이 함께 피어있어 각기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정상까지 개화한 일반철쭉은 인공 식재한 것으로 빨간색을 띠나, 자생식물인 산철쭉은 키가 크고 꽃이 진달래처럼 연분홍을 띤다. 현재 8부 능선까지 개화된 상태.
덕유산 산행은 무주구천동에서 시작해 백련사를 거쳐 정상인 향적봉을 오른 뒤 중봉, 덕유평전을 거쳐 안성 방향인 칠연폭포로 내려오는 6시간 코스와 무주구천동∼백련사∼향적봉∼중봉∼오수자굴∼무주구천동 8시간 코스가 일반적이다. 모두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하는 장거리 산행이다.
[향적봉 부근 주목 구상나무 군락]
향적봉 부근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지가 기이하게 굽은 짙은 주목들이 붉고 푸른 철쭉이나 신록과 어우러져 진풍경을 연출한다.
향적봉과 중봉 사이에 있는 세계적 희귀목 구상나무 군락지도 덕유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 구상나무는 빙하기 때 한반도 끝인 제주도까지 그 세력이 분포됐으나 2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온이 상승하자 대부분 자연도태됐다. 그러나 고산지대인 한라산과 덕유산 정상부에만 자생종이 살아남아 전해오고 있는 세계적 희귀목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구상나무는 모두 덕유산 한라산 등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 한다.
덕유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수령 1백30∼1백80년의 덕유산 구상나무는 빙하기 역사를 간직한 희귀한 화석나무”라며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평균 수령이 줄고 노목에서 고사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보존대책이 시급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 덕유산 정상 향적봉. 근처에 희귀한 구상나무 군락이 있다. | ||
[라제통문부터 36km 구천동계곡]
덕유산 산행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구천동 계곡이다. 구천동 계곡은 라제통문을 지나 36km에 걸친 덕유산 정상 향적봉까지 기암괴석과 태고의 원시림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이 만드는 소(沼) 담(潭) 폭포 등으로 우리나라 절경 중 손꼽히는 구천동 33경을 이룬다.
제1경 라제통문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마주한 곳이다. 석모산의 기암절벽을 뚫어 동서로 통하는 길을 냈는데 지금도 양쪽 지역의 언어와 풍습이 다르다. 제3경 청금대는 흐르는 개울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치 탄금소리와 같은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제6경 일사대는 조선말기 학자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정각을 짓고 후진을 양성한 곳으로 전해진다.
제11경 파회에서는 맑은 물이 굽이진 암반을 타고 구르다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물보라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제13경 세심대는 맑은 물에 오가는 행인의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제15경 월하탄은 여울진 기암을 타고 쏟아지는 달빛에 비친 폭포수가 장관이며, 제19경 비파담은 옛날 선녀들이 내려와 비파를 타며 놀았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제21경 구월담은 월음령 계곡과 백련사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합류하고 쏟아내는 폭포수가 담을 이루며, 제24경 청류계는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비경을 이룬다. 제26경 신양담은 숲터널로 이어진 구천동계곡 중 유일하게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길 아래 기암과 맑은 담이 아름답다. 제31경 이속대는 기암과 좁은 홈을 타고 미끄러지듯 쏟아지는 한줄기 폭포수가 신비롭고, 제33경 향적봉은 철쭉과 일출, 운해 등 정상의 경관을 이른다.
[무주 길라잡이]
▲가는길: 경부, 호남고속도로 대전 또는 서대전 JC에서 무주 방면 표지판을 따라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이용. 무주 나들목으로 진입하면 무주리조트까지 20분. 서울부터 2시간30분 소요. 기차는 경부선 영동역에 내린 후 무주까지는 시외버스 이용. 무주읍에서 구천동 계곡까지 40분 정도, 무주읍에서 칠연계곡이 있는 안성까지는 30분 정도가 각각 소요된다.
▲숙박:무주리조트(063-322-9000) 안에 특2급 티롤호텔과 콘도 형태의 기족호텔과 국민호텔이 있다.
▲별미집:무주리조트내 식당들이 많으므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리조트 내 선녀마을의 시골소반(063-320-6956)이 맛있다. 우거지해장국, 사골 갈비탕 각 6천원, 버섯전골 1만원. 무주리조트 입구 덕유산회관(063-322-3780)의 삶은 콩나물과 버무린 돼지불백(1인분 6000원)도 일품이다. 무주댐 입구 휴게소식당(063-324-0425)은 토종 된장찌개가 맛있다.
조승열 국토문화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