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박사과정 특례입학 논란에 휘말린 가수 겸 배우 정용화. 사진=정용화 인스타그램
정용화는 2016년 10월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응용예술대학원 박사과정에 지원했으나 원서 기재 실수로 불합격처리 됐다. 이후 2017년 초 추가 모집에 재응시했는데 이번에는 면접에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담당 교수가 직접 정용화의 소속사인 FNC 사무실을 방문해 ‘출장 면접’을 진행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입시요강에 따르면 ‘면접에 결시하는 지원자는 불합격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결시할 가능성이 높은 지원자를 학교 측이 직접 ‘모시러 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실제 FNC 사무실에서 이뤄진 면접에 정용화가 참석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경희대 대학원 입시요강에는 ‘대리시험 및 부정행위자는 불합격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만일 소속사 사무실에서의 출장 면접에 정용화가 참석하지 않고 소속사 직원들을 통해서 진행됐다면 이 역시 불합격 처리돼야 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용화는 당당히 박사과정 합격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특례 입학’이 보도되자, 실명 공개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FNC 측이 부랴부랴 공식 입장을 냈다. FNC는 “해당 학과 박사과정 지원자가 부족, 계속 정원미달이라 학교 측이 지속적으로 소속사에 정용화가 추가모집에 응시할 것을 권유했다”라며 “정원미달로 실시된 2017년도 추가 모집 시 지원자는 모두 합격될 정도로 경쟁이 없었으므로 정용화가 들어가기 어려운 과정을 특혜를 받아 부정하게 입학한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응시 과정에는 정용화가 관여하지 않았고 모든 업무를 소속사가 맡아 처리했다고도 덧붙였다.
대학 관계자들은 “아무리 대학원이 학위 장사로 변질됐다지만 학생 편의를 봐줬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노골적인 특혜”라고 지적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이 TO가 남기 때문에 문턱이 낮다고는 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져야 할 단계조차 교수 임의대로 건너뛰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그것도 학생 모집을 위해 교수가 직접 소속사를 찾아가 읍소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경희대는 연예인 신입생을 상당수 유치하면서 ‘연예인 사관학교’라는 브랜드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이렇다 보니 학부 입시는 물론,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연예인들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면서 이 같은 사달이 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정용화의 자필 사과문. 사진=정용화 인스타그램
이미 경희대 내에서는 이와 같은 연예인들에 대한 특례 문제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경희대 입시를 담당했다는 한 관계자는 “경희대에는 ‘연예인 양성과’로 유명한 학과가 많다. 이런 과에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지원하면 일단 몇 명은 1차에서 일부러 떨어뜨려 연예인 특례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운다”라며 “그 다음 추가 모집에서 탈락했던 연예인이 다시 지원하면 선발하기도 한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실기를 주로 보는 학과가 많다보니 실기 시험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는 연예인도 상당수다. 그런데 1차 시험에서 굉장히 낮은 점수를 받으면 그다음 시험의 다른 과목에서 일부러 높은 점수를 줘서 합격시켰다는 의혹이 매년 불거져 왔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보다 앞서 경희대에 지원했던 걸그룹 멤버들의 입학 과정에 의혹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보에 따르면 당시 학부 입학 과정에서 이들 멤버들이 지원했으나 실력 미흡 등의 문제로 탈락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 지원에서 탈락했던 멤버들이 재응시했고, 앞선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던 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을 지원하도록 해 합격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당시 입학 전형을 진행했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연예인 입학생은) 한 번은 떨어뜨려야 뒷말이 덜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했다.
제보자는 “연예인이 많은 학교다 보니 쉬쉬하면서도 이런 특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정보가 나오는 것”이라며 “아마 이번 정용화 건도 학교의 폐단을 보다 못한 관계자들이 제보했을 것이다. 연예인 특례를 폭로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번 정용화 특례 입학 사건으로 경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경희대 대학원에는 그룹 블락비의 지코, 하이라이트 윤두준, 2PM 준케이, 2AM 조권 등이 석사로 재학 중이다. 지난해 5월 입대한 슈퍼주니어 규현도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석사과정을 거쳤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규현이다. 당초 익명으로 사건이 보도되고 나서부터 경희대 학·석사과정을 모두 거친 규현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를 문제의 연예인 A 씨로 오인한 대중들이 학위·학술 논문사이트인 리스(RISS)에 규현의 석사 논문을 앞다퉈 검색하면서 이 논문이 인기 논문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관심이 뜨거워지자 규현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해당 보도는 규현과는 무관하다. 규현은 확실히 아니다”라고 전례 없이 강경한 답변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실명 보도가 이뤄지고 난 뒤에야 정용화가 자필 사과문을 올리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또 다른 의혹이 불거졌다. 대입이 아니라 대학원 입학에까지 ‘특례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이들 남성 연예인들이 석·박사로 몰리는 데에 다른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 다름 아닌 병역 문제다.
경희대 일반대학원 모집요강에 적혀있는 유의사항. 면접에 결시하거나 대리시험, 부정행위자에 대해 불합격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경희대 대학원 홈페이지
앞서 거론됐던 이들이 학위 과정에 응시만 했을 뿐, 입학 직후부터 최소 2년 이상(5학기 이상) 휴학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입대를 미루기 위해 석·박사 과정에 이름만 올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정용화의 경우도 본인이 입시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소속사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기 때문에 지원 목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병역법상 석사 과정을 지원한 경우 만 27세까지, 박사 과정을 지원한 경우 만 28세까지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 정용화와 윤두준의 경우 만 28세여서 아슬아슬한 반면, 지코의 경우는 만 25세이기 때문에 석사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현재로서도 2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빠른 1988년생인 준케이는 지난해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무대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연기, 올해 초 신체검사를 다시 받은 뒤 입대할 예정을 밝혔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한때 공무원이나 자격시험 응시 등으로 입대를 미루는 방법도 유행했지만 그런 부분도 병역비리로 적발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가장 안전한 석·박사 과정에 지원한 뒤 휴학으로 최대한 입대를 연기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라며 “바쁜 연예 활동 중에 정말로 공부가 하고 싶다거나 학력을 세탁하고 싶어 대학원까지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에 하나 그런 경우가 있다면 적어도 정해진 기간 안에 학업을 마쳤거나 성실히 학위 과정에 임했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실제로 앞선 연예인들은 대부분 입학 직후부터 쭉 휴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정용화의 입학에 관여한 이 학교 학과장 이 아무개 교수를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용화에 대한 소환 조사도 마친 상태다. 또 이와 더불어 정용화와 같은 방식으로 경희대 석사과정에 입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조규만을 이달 26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희대 측은 18일 이 교수에 대해 직위해제를 취하는 한편, 정용화에 대한 입학 취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이 교수에 대한 징계와 정용화의 입학 취소 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