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은 검찰 조사에 앞서 각기 다른 입장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조사에 임하는 입장을 밝히는 장소도 골목, 검찰 포토라인, 서재 등 다양했다. 사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는 모습. 박정훈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구속되자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이 보수를 궤멸시키는 정치공작으로 보고 있다”며 현 검찰 수사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일방적인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0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단 4명의 기자만 대표로 뽑아 사무실로 입장시켰다. 그는 입장 발표를 3분으로 짧게 끝낸 후 기자들의 질문을 차단했다. 이에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취재진들이 ‘백브리핑’을 준비했고 사진기자들도 포토라인을 임시적으로 만들었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도 이 전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거의 두 시간이 지난 뒤 이 전 대통령은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나에게 물으라’는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뜻인가” “특활비 보고를 받았나”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차량에 탑승했다. 이날의 ‘서재성명’에 앞서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2일 ‘공항성명’을 내놨다.
그는 바레인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정풀이나 정치 보복이라는 의심이 든다”며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규정지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주변의 최순실 씨와 이화여대 관계자들이 구속된 뒤에도 오랜 시간 동안 검찰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다. 대통령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을 든 국민들의 퇴진 요구와 국회에서 통과된 탄핵안으로 박 전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국회에서 제출한 탄핵안을 인용하며 파면됐고 그제서야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그해 3월 30일 새벽,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의 집 앞은 친박계 인사들과 지지자들, 그리고 언론인들이 벌떼처럼 몰려 있었다. 검찰수사를 받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집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타자 지지자들은 흥분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집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검찰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앞서 3월 21일 검찰 수사를 받을 때와는 다르게 포토라인에 서지도 않았고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8시간이 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13개의 범죄 혐의로 다음날인 31일 새벽 3시에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유치시설에서 대기하다가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화장실로 가서 직접 올림머리에 꽂혀 있던 핀을 풀고 화장을 지웠다. 그렇게 자신의 상징이던 올림머리를 풀고 서울구치소 503호에 수감됐다.
2009년 4월 30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 버스가 서울로 향하고 있다. 버스 앞 마을길에는 노사모와 마을 주민들이 노란 장미를 뿌려 놓았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에 정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김해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검찰 수사를 받으러 왔다. 당시 언론은 이 과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취재했다. 이날 새벽 5시부터 봉하마을 주차장은 취재진들로 만원 상태였고, 사저 앞에는 방송사들의 지미집 카메라가 동원되며 노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생중계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측에 헬리콥터나 KTX를 이용해달라는 제안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나오면서 무슨 헬기까지 타느냐”며 이를 정중하게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버스에는 문재인 당시 변호사와 전해철 변호사, 김경수 비서관 등이 탑승했고, 노 전 대통령은 점심을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해결했다.
당시 검찰 청사 주변은 소란스러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버스가 도착할 때쯤부터 마치 ‘007 작전’처럼 취재 헬기가 상공에 나타나 소음을 내기 시작했고, 이에 정문 앞에 있던 시위대의 목소리도 점점 거세졌다. 청사 앞에는 노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시민들과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충돌하며 몸싸움도 벌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서서 “면목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취재 기자가 “왜 면목이 없다고 했냐”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면목이 없는 일이죠”라고 답했다. 걸음을 옮기자 또 다른 기자가 “심경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다음에 하시죠”라고 말했고, 또 다른 기자가 “검찰 수사에 섭섭한 부분이 있나”라고 물었지만 “다음에 합시다”라고 말한 뒤 청사로 들어갔다.
그는 9시간 30분이 넘는 검찰 조사를 마치고 다음날 오전 2시가 돼서야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최선을 다해 (조사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한 뒤 같은 버스를 타고 봉하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마치고 한 달 정도 지난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 노태우·전두환 씨
노태우 씨는 검찰에 소환되고 구속된 첫 대통령이다. 그는 1995년 11월 1일 비자금 조성 의혹에 연루돼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 가슴에 안고 있는 불신 그리고 갈등, 모두 내가 안고 가겠다”고 짧은 말을 남기고 17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내내 “말할 수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와 같은 답변으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후 노 씨는 조사 뒤 귀가했으나, 같은 해 11월 16일 구속됐다.
그해 12월 2일 검찰 소환을 통보받은 전두환 씨는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자택 앞에서 일명 ‘골목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대통령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5공과 6공에 대해서 과거사 청산이라는 근거도 없는 술책을 통해서 왜곡하려고 하였고, 나는 검찰소환에 절대 응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했듯, 23년 전 전 씨도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제5공화국의 책임자였던 저에게 물어달라”고 당부했다. 전 씨는 이 발표를 한 뒤 국립서울현충원으로 가서 자신 때문에 희생된 순국선열들 앞에서 짧게 참배를 해 국민으로부터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곧바로 자신의 고향인 경상남도 합천으로 내려갔다. 구속을 피하기 위해 도주한 셈이다. 하지만 성명 발표 10시간 뒤인 다음날 새벽 그를 이송하러 온 대검찰청 검사들과 합천경찰서장, 합천군수가 전두환의 고향집을 방문해 소환을 종용했고, 결국 그는 안양교도소로 전격 압송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틴팅(선팅)이 되지 않은 호송차량을 이용했는데, 이때문에 그의 이송 과정은 언론 취재진과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