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 17일 특수활동비 수사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삼성동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언론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도 5년 집권하지 않았나. 집권하면 모든 사정기관의 정보를 다 들여다볼 수 있다. 저희라고 아는 것이 없겠나”라며 문재인 정부를 위협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진 자료 중에는) 심각한 내용도 있다”면서 “노무현 정부는 모든 회의기록을 영상으로 남겨놨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정치보복 수사를 계속할 경우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성 발언들이다. 이에 대해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노무현 파일’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파일이 있었다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친노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진작에 밝혔을 것이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고 본다”면서 “뭔가 가진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당장 공개하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법적 절차는 절차대로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지금은 국민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얄팍한 궁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 실장으로 근무했던 전재수 민주당 의원도 “가지고 있는 자료가 있다면 자꾸 말로만 하지 마시고 공개하면 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 의원은 “설사 그런 파일이 있다고 해도 검찰 수사는 청와대와 별개다. 그런 게 있어도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할 수도 없다”면서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검찰을 하수인 부리듯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정부는 다르다. 민주당에선 그런 걱정(노무현 파일 공개)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이 전 대통령 측의 폭로 위협에 위축되기는커녕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강도 높은 성명으로 맞대응했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보좌진은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돌아가셨는데 그런 파일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냐. 그쪽이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에 치명적인 것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자신들도 아는 게 많다면서도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폭로한다면 시기는 언제쯤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도 아는 게 많다고 했지 폭로한다고는 안했다”고 답했다. 아는 게 많다는 발언이 사실상 폭로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라고 묻자 “다른 이야기”라면서 그렇다면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도 않겠다”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에선 노무현 파일이 있으면 공개해도 상관없다고 한다고 묻자 “그쪽 의견에 우리가 뭐라 할 말이 없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측 이재오 전 의원도 노무현 파일의 실체가 있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답할 문제가 아닌 거 같다”면서 답변을 회피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전직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은 “저는 친이계지만 회의(이 전 대통령 측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면서도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은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자리다. 노무현 파일이 없을 수 있겠나”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파일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무엇을 쥐고 있느냐가 쟁점이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도 “이 전 대통령 측이 가진 카드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특히 외교 분야의 경우 어느 정권이든 캐면 무사하지 못하다. 최근 박근혜 정부 위안부 합의나 이명박 정부 UAE 군사협정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의 경우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문제, 노무현 NLL 포기 발언 등이 이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됐는데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비리 관련 자료도 이 전 대통령 측이 내놓을 수 있는 자료로 예측된다. 이 전 대통령 측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많은 부분을 덮은 걸로 알고 있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에서는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예산이 50% 가까이 증가했다면서 노무현 정부의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도 확인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이 실제로 폭로에 나선다면 그 시기가 언제일지도 관전 포인트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통령 소환 조사 직후나 구속 이후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리면 공개하긴 할 것이란 예측이 중론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다스 수사와 특활비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거의 매주 대책회의를 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검찰 수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내부적으로 강경대응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구속돼도 형량 조정을 위해 ‘노무현 파일’을 끝까지 협상용으로 남겨 놓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공개 시점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긴 하느냐는 질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미묘한 시기에 관련 자료들이 언론을 통해 나오기 시작하면 누구나 자료의 출처로 이 전 대통령 측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 피의사실 공표나 대통령 기록법 위반 등의 논란으로 이 전 대통령 측이 더 불리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폭로를 한다고 해도 검찰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일례로 한국당 측은 노무현 일가의 640만 달러 의혹을 밝히라고 여러 차례 요구하고 고발까지 했지만 검찰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이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선 당시 논란이 됐던 북한인권결의안 논란도 검찰은 무혐의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