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기자회견 개최 여부를 두고 이 전 대통령 진영에선 찬반이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참모들은 “전직 대통령이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는 그림은 적절하지 않다”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멘트를 하자”는 등의 제안을 했다. 이 전 대통령 역시 직접 입장을 밝히는 부분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집사’로 통하는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구속영장이 청구(15일)된 이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참모들과 이 전 대통령은 수시로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고, 김 전 기획관이 17일 새벽 구속되자 이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 준비를 지시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이동관 김두우 전 홍보수석, 맹형규 전 행안부 장관, 정동기 전 민정수석, 장다사로 전 총무기획관 등이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성명서 문구 대부분을 참모들과 논의해 직접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한 친이 핵심 관계자는 “기자회견 막판까지 일부 단어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보다 강한 표현을 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자회견이 당초 5시보다 늦어졌다”면서 “문 대통령 분노를 일으킨 ‘노무현의 죽음’ 부분은 이 전 대통령 본인의 ‘워딩’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통령 행보에 대해 “보수 결집을 위한 여론전”이라며 다소 폄하하는 기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빠지자 한 보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과 비슷한 수순이라는 얘기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때 그랬던 것처럼 언론 플레이는 검찰 수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이 전 대통령 기자회견은 살아있는 권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동안 신중한 스탠스를 보였던 이 전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나선 것은 현 정권 사정 드라이브에 대해 그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실 이 전 대통령 측은 실소유 의혹 등 다스 문제에 대해선 내심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뒤숭숭한 여론과는 별개로 법적으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굳이 이 전 대통령이 정면대응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분위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나 현 정권 타깃은 다스에 국한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을 겨눴던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가 MB 인사들로 향했고,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김백준 전 기획관이 구속됐다. 검찰은 특수활동비를 받은 또 다른 인사가 있는지에 대한 부분과 함께 이 전 대통령도 여기에 관여했는지 수사 중이다.
여기에 몇몇 최측근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 전 대통령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김 전 기획관과 함께 이 전 대통령 집사로 통하는 김희중 전 부속실장의 ‘변심’이 결정타였다. 김 전 실장은 검찰에 출석해 특수활동비가 이 전 대통령 측으로까지 상납된 구체적인 경위와 과정 등을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스 ‘키맨’ 김성우 전 다스 사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도 이 전 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내용을 털어놓고 있다. 검찰 측은 김백준 김희중 두 ‘집사’를 통해 의혹투성이인 이 전 대통령 재산 내역의 실타래가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이 전 대통령 측에선 현 정권 칼날이 김윤옥 여사를 향할 가능성에 상당히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 전 대통령 성명서 발표 역시 이 때문이란 얘기가 뒤를 잇는다. 앞서의 친이계 핵심 관계자는 “김 여사의 도덕적 흠집을 낼 수 있는 자료들을 문재인 정부가 일부러 흘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를 듣고 이 전 대통령이 크게 동요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도 “현 정권이 ‘논두렁 시계’ 복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우리끼리 했다. 일단 이 전 대통령 부부를 망신 주겠다는 의도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실제 검찰에선 김윤옥 여사가 특수활동비를 받았는지에 대해 면밀히 확인 중이다. 김희중 전 부속실장 역시 비슷한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김 여사와 가까운 친인척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뿐 아니라 김윤옥 여사 역시 (수사선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권 사정당국 인사도 “적폐청산엔 김 여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전 대통령 측도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현 정권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이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있다. 벌써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이 전 대통령 차명 재산으로 의심되는 부동산들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 처남이자 재산 관리인 중 한 명으로 지목받는 고 김재정 씨의 재산 형성, 그리고 사후 상속 과정 등에서의 석연치 않은 부분도 그 대상이다.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일가 재산 전반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진영에선 격노하는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별다른 대책은 내놓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친이계 핵심 관계자들은 “사실상 반격할 카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원로급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 스타일상 기자회견을 나섰다는 것은 궁지에 몰렸다는 얘기다. 뭔가 무기가 있었다면 분명 ‘딜’을 하려 했을 것이고, 진작에 반격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나도는 ‘노무현 X파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기댈 곳은 여론뿐인 듯하다”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MB 정부, BBK 물타기에 ‘서태지-이지아 소송’ 활용 2011년 4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재산분할 청구소송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태지와 이지아가 1997년 결혼했고, 2006년 이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런데 당시 이명박 정부가 이 뉴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세간에 알려지기 전인 2011년 2월 초 청와대는 이미 관련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청와대 민정실 근무자도 “연예 소식이었지만 그 무렵(2011년 2월) 문서 형태로 올라왔었다”고 떠올렸다. 이지아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1년 1월이다. 최근 국정원 적폐 등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따르면 서태지-이지아 보도가 나간 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라는 지침을 몇몇 언론사에 내렸다고 한다. 한 방송사 간부에겐 “연예뿐 아니라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다룰 주제 아니냐”라며 노골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최근 여러 진술과 문서를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유를 불문하고 정권이 언론 보도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서태지-이지아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인터넷상엔 음모론이 돌기도 했었다. 정부 측이 무언가를 희석시키기 위해 대형 이슈를 터트렸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일부 네티즌들은 서태지 뉴스가 나오기 전 BBK 관련 재판 기사가 나왔었다는 것과 연결을 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청와대 민정실 근무자는 “음모론이 돌긴 했었지만 일부러 언론에 흘려줬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특종 보도한 매체가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를 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서도 “언론 보도 후엔 확실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기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는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