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를 졸업한 후 저널리스트가 된 그는 ‘에스콰이어’ 같은 남성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였는데, 이때 짐 브라운을 만난다. NFL의 레전드 중 한 명인인 풋볼 선수 짐 브라운은 토백에게 환락의 세계를 소개했다. 토백은 인터뷰를 계기로 브라운의 절친이 되어 1년 가까이 그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냈는데, 이때 브라운은 종종 매춘부들을 집에 불러 난교 파티를 즐겼다. 수시로 이어지는 섹스의 향연은 토백에게 충격적이었는데, 이후 그는 이 경험을 책으로 쓰기도 했다.
이후 토백은 저널리스트 활동을 접고 영화계로 진출한다. 첫 직업은 시나리오 작가. ‘핑거스’(1978)로 감독 데뷔를 하며 연출을 겸업했다. 몇 편의 그저 그런 영화가 이어졌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을 맡은 ‘환상의 발라드’(1987)로 각광 받았다. 그리고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벅시’(1991)로 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할리우드에서 주가를 높였고, ‘폭로’(1994) ‘크림슨 타이드’(1995) ‘나쁜 녀석들’(1995) 등의 시나리오도 그의 손을 거쳤다.
정확히 말하면 1980년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다. 그는 길거리 캐스팅을 한답시고 헌팅을 시작했다. 수법은 한결 같았다. 거리에서 맘에 드는 젊은 여성을 발견하면 다가간다.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고 다음 영화에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성이 믿지 않은 눈치면, 감독협회 카드를 보여준다. 이후 미팅이 이뤄지면, 은밀한 공간에서 성추행을 한다. 그는 이 수업으로 수많은 여성에게 접근했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1989년에 ‘스파이’라는 잡지에 그에 대한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픽업 아티스트’라는 제목의 기사는 제임스 토백에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당한 여성의 경험 사례들을 모은 것이었다. 토백은 기사를 전면 부정했고, 놀랍게도 이후 30년 가까이 토백의 행동은 제대로 공론화된 적이 없었다. ‘LA타임스’의 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7년 10월 ‘LA타임스’를 필두로 여러 매체에서 제임스 토백이 38명의 여성에게 성 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내용은 과거 ‘스파이’에 실린 것과 거의 똑같았다. 접근 멘트는 항상 똑같았다. “내 이름은 제임스 토백이고 영화감독이다. 혹시 ‘투 걸스’(1997)나 ‘블랙 앤 화이트’(1999)를 본 적이 있나?” 대부분의 여성은 본 적 없다고 대답했고, 다음 단계는 자신이 ‘벅시’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 그리고 신인 시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세 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으며 그를 키운 건 실질적으로 토백 자신이라는 자랑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무리로 감독협회 카드와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들을 보여주었다.
사리 카민은 2003년에 토백을 만났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못하면 스태프들 앞에서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는 말과 함께 누드를 요구 받았다. 테리 콘은 센트럴 파크에서 토백을 만났는데, 그는 으슥한 곳으로 그녀를 데려간 뒤 “누군가에 대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서로 눈을 바라보며 오르가슴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자위를 시작했다. 캐스팅이 되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도 토백은 끊임없이 지분거렸다.
토백에 대한 첫 보도가 나간 뒤, 각 언론사엔 제보 전화가 쏟아졌다. 무려 395명에 달했는데, 토백은 그들에게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다가가 자신의 배설 욕구를 채웠다. 40년에 걸친 더러운 행동이었고, 한 달에 한 명꼴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 너무나 수치스러운 기억이기에 피해자 대부분은 평생 묻고 살아가려 했지만, 와인스틴에 대한 폭로 이후 용기를 냈던 것. 이에 토백은 심장질환이 있어 그런 격한 행동은 자신에게 불가능하다는 옹색한 변명을 했지만, 결국 그는 할리우드에서 퇴출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