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담계곡의 맑은 물이 붉은 단풍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 ||
산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갈 것이다. 이내 단풍에 젖고 낙엽이 지고, 그리곤 하얀 눈에 덮이겠지. 단풍이 찾아드는 가을은 등산의 계절. 소문난 명산 내설악 백담계곡과 전북 진안의 마이산을 찾아갔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산이며 신비로운 가람들이다.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산사를 바라보며 나그네 또한 전설처럼 그곳에 발이 묶였다.
백담사를 찾는 이들의 설렘은 매표소에서부터 시작된다. 단풍 명소로 꼽히는 내설악, 그 중에서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백담사이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이 기거했던 곳으로, 그의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 백담사는 1988년 그 유명했던 5공 청문회 직후 전두환씨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찾아가 은둔하면서 다시 유명해진 곳이다. 목조아미타불좌상 등 보물급 문화재들이 소장된 유서깊은 절이다.
백담사는 내설악 방면(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2리) 매표소에서 7km를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매표소 앞에서부터 4km 정도는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걸으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왼쪽 좌석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굽이굽이 4km 구간에 펼쳐진 백담계곡을 바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수많은 물골과 기암을 자랑하는 백담계곡. 아래는 한용운 의 유물들을 모아 놓은 백담사 만해기념관. | ||
맑은 물이 흘러 흰살을 드러낸 암반 위를 구르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햇살을 만나 반짝거리는 모습은 가히 예술이 아닌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반짝이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발길을 계속하다 숲속에서 ‘내설악 백담사’라 현판이 붙은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이내 늘씬하게 뻗은 ‘수심교’를 만나 건너면 백담사로 들어가는 금강문이다.
신라시대(647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백담사는 본래 한계리 ‘한계사’로 지어졌다가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한 이후 몇 차례 이름이 바뀌어 1783년(정조7년)부터 백담사라 개칭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05년 우국청년 만해 한용운(1379-1944)이 이곳에 들어와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면서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백담사는 민족사에도 이름을 남기게 된다.
법당 법화실 화엄실 나한전 관음전 산신각 등 6개동의 전각이 있는데, 지금 백담사는 한창 중창공사를 진행중이다. 절밖 오른쪽에는 만해 한용운의 시비와 흉상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만해기념관이 지어졌다. 만해를 추념하는 시설만 해도 만해교육관, 연구관, 수련원, 만해당 등 여러 동이다.
▲ 위 사진부터 백담사에서 바라본 설악산. 백담사 풍경들. | ||
1997년 11월 9일에 개관한 만해기념관은 만해 한용운이 불교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저술한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 원전을 비롯, <세계지리> <영환지략> <음빙실문집> 등의 책과 유묵, 시집 <님의 침묵> 초간본, 그리고 1962년에 수여된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한용운 연구논문 등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만해기념관은 국내에 있는 여러 만해기념시설 가운데 가장 많은 문학적 정치적 종교적 유품과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만해에 관해 발표된 7백10점의 석박사 논문과 10여 판의 작품전집까지 고루 갖췄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 개관한다(오전 10시~오후 5시).
▲ 가는길: 서울-양평-홍천(44번 국도)-미시령 방면(46번 국도)-용대리-백담사 입구. 문의 설악산국립공원 백담사분소(033-462-2554) / 백담사 종무소(462-3224)
백담사=편경애 프리랜서